Credit
글. 송후령, 임수연(‘씨네21’ 기자),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김겨울(작가)
디자인. 전유림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 EP.13’

송후령: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냅다 맞절부터 하더니 이영지의 “방가방가!”라는 인사말에 방탄소년단 진은 “하이루!” 하고 능청스럽게 맞받아친다. 첫 만남부터 무언가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서서히 술기운이 오르고 서로를 “당신”이라 칭하기 시작하면서 ‘차린건 쥐뿔도 없지만’의 진행자 이영지와 이번 시즌 마지막 게스트로 출연한 진은 명절에 게임을 하며 티격태격하는 사촌오빠와 동생 혹은 과 대표 선배와 신입생 후배를 연상케 하는 케미스트리를 선보인다. 할리갈리 게임이 시작되자 진의 목소리 볼륨이 이영지만큼이나 높아진다거나, ‘슈퍼 참치’를 “많은 사람들이 몰라줬으면 좋겠”다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손가락으로는 신나게 리듬을 타는 진을 따라 덩달아 흥겹게 몸을 들썩이는 이영지의 모습이 그렇다. 그리고 이어지는 둘의 취중 진담에서 진은 “대한민국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이영지의 말에 “제가 했습니까, 저희 멤버들이 했지.”라며 멤버들에게 공을 돌리고, “서로가 멤버들한테 양보를 해줘서 팀이 유지가 된다.”며 방탄소년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아미에게는 스스로도 좋아하는 감정에 이입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들은 최대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넌지시 토로하기도 한다. 이 ‘슈퍼스타’의 매력을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알고 있더라도 꼭 보기를 권하는 흥미진진한 토크쇼. 마지막에는 ‘역대급’이라 할 만한 ‘진(의) 엔딩’도 기다리고 있다.

‘리멤버’

임수연(‘씨네21’ 기자): 결국 친일 청산은 실패했다. ‘리멤버’는 뼈아픈 현대사를 뒤집기 위해 80대 노인의 복수극을 상상한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80대 노인 한필주(이성민)는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몸에 타투로 새기고 60여 년간 준비했던 복수를 시작한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자신이 일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친분을 쌓은 20대 청년 인규(남주혁)에게 운전을 부탁하는데, 첫 살인부터 인규가 유력 용의자로 오인받으면서 필주의 계획은 조금씩 꼬여 간다. 기본적으로 대중 상업영화를 겨냥한 ‘리멤버’는 전형적인 복수극 서사에 80대 노인과 20대 청년의 버디 무비를 결합시킴으로써 적절한 코미디와 다양한 액션을 함께 녹여낸다. 흥미로운 것은, 세대를 초월한 우정과 인규의 감화가 단순한 오락 요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일 청산은 단지 과거사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 필주와 인규로 대표되는 범 세대적 공감대는 계급과 대물림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함께 녹여내며 복수극의 카타르시스 너머의 메시지를 전한다. 필주가 단죄하는 가상의 캐릭터들에게서 현실의 몇몇 이름이 스치는 것 또한 ‘리멤버’와 실제 한국을 분리할 수 없는 지점 중 하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공작’의 윤종빈 감독이 제작하고, ‘검사외전’의 이일형 감독이 연출했다.

‘Not My Job’ - FLO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풍부한 보컬 화성과 몸을 들썩이게 하는 R&B 리듬, 못난 네 기분을 북돋아주는 건 내 소관이 아니라는 단호한 가사. 영국의 3인조 걸그룹 플로(FLO)의 신곡 ‘Not My Job’은 TLC 혹은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팝 컬처를 비롯해 전방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Y2K 리바이벌이지만 플로의 작업물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그 시절 추억만 애매하게 재연했다면 촌스럽거나 기믹스러워 금세 질렸을 것이다. 그때의 에센스는 간직하되 현대적인 프로덕션으로 다시 쓰였기에, 익숙하면서도 기꺼이 시간을 내 들을 가치가 있다. 영국의 걸출한 프로듀서 MNEK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들 음악은 프로듀서의 장기답게 드라이하면서 변칙적인 리듬을 자랑한다. 미국의 세기말과 밀레니엄 R&B 걸그룹을 주의 깊게 관찰한 영국인 음악가들의 시선과 해석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 듀나

김겨울(작가): 예정보다 겨울이 빠르게 다가온 지금, 벌써부터 멜랑콜리한 연말 기운이 코앞이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장단을 맞추려다보니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리포터’ 시리즈나 ‘캐롤’ 같은, 눈발이 날리는 낭만적인 풍경이 있는가 하면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전통의 살인 사건도 있다. 듀나의 신작,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추리 소설의 전통을 이으면서 살짝 비트는 재치가 돋보이는 단편집으로, 연말을 바라보며 한 편씩 읽어나가기 좋다. 고전적인 밀실 트릭 살인사건부터 살인자의 자백까지 착실히 담겨 있어 추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와 추리 소설을 별로 읽지 않은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하다. 우리나라의 장르 소설을 이끌어온 대가답게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능숙함과 연륜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