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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예진
사진 출처. 하이브 레이블즈 유튜브
00:0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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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8일, 하이브와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산하 게펜 레코드와의 합작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이하 ‘드림아카데미’)’가 위버스와 유튜브 HYBELABELS+ 채널 등으로 생중계된 ‘라이브 피날레(Live Finale)’를 끝으로 3개월여의 대장정을 마쳤다. 오디션 참가자 중 소피아, 라라, 윤채, 메간, 다니엘라, 마농이 걸그룹 ‘KATSEYE’의 멤버로 선발, 데뷔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미국에서 활동할 K-팝 걸그룹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20명의 출연자들이 오디션을 본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였다. “오래전부터 K-팝의 방법론에 기반해서 다양한 출신의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들과 함께 K-팝 스타일의 글로벌 그룹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말대로, ‘드림아카데미’는 K-팝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K-팝 제작 시스템의 세계화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자 검증이기도 했다.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오디션 참가자들이 블랙핑크, 르세라핌 등 K-팝 걸그룹의 곡을 소화하고, 마지막에는 ‘드림아카데미’를 위해 만든 ‘Girls Don’t Like’, ‘Dirty Water’, ‘All the Same’ 등 세 곡을 선보이는 과정은 ‘드림아카데미’를 지켜본 시청자들과 참가자는 물론 T&D(Training & Development)를 담당한 하이브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미국 팝 시장에서는 재능이 어느 정도 발현된 아티스트를 발굴하여 곧바로 데뷔할 수 있도록 매니지먼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개개인이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다방면의 역량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한국의 ‘T&D’ 개념이 희박하다. 그래서 프로젝트 진행 초기 단계부터 전략 수립을 담당한 인정현 수석 크레이티브 프로듀서(Head of Creative Production)는 하이브 T&D사업실에서 정리한 T&D 시스템의 A to Z에 대한 문서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현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현지 T&D팀에게 하이브 T&D 시스템의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시키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한국 T&D사업실과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구체적인 실행 경로와 애로사항 등을 공유하며 우리의 시스템을 세워 갔죠. 결과적으로 지금의 시스템 자체는 기존 하이브의 것과 결을 같이합니다. 다른 건 방향성이었어요.” ‘드림아카데미’ 참가자 모집을 위해 진행한 글로벌 오디션 및 캐스팅에서의 연습생 선발 기준은 그 방향성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이를테면 아이돌 캐스팅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지는 비주얼의 경우 오디션 심사위원들은 기존 K-팝 시장의 특성을 일정 부분을 고려하면서도 기준을 한정하지 않은 채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응시자를 평가했다. 반면에 보컬은 이지리스닝 성격의 업비트 팝을 얼마만큼 잘 살리면서 소화할 수 있을지를 평가하는 등 분명한 기준점을 뒀다. 인정현 프로듀서에 따르면 “음악은 미국 현지 리스너들이 폭넓게 소비하는 팝에 가깝고, 퍼포먼스는 K-팝에 가깝게” 진행할 걸그룹이라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알맞은 인재를 선별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다. 춤의 경우 향후 K-팝에서 요구하는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소화할 수 있을지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위해 춤을 전혀 추지 못하는 응시자들에게도 간단한 튜토리얼을 따라 해보게 하며 기본적인 센스를 확인하기도 했다. K-팝 아티스트 캐스팅에서 중시하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포착하는 방법이다. 인정현 프로듀서는 이런 과정들을 “하이브 시스템을 커스터마이즈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쇼케이스(SHOWCASE)’, ‘팀(TEAM)’, ‘예술성(ARTISTRY)’, 총 세 개의 미션으로 구성된 ‘드림아카데미’는 참가자들의 스타일링부터 무대 세트, 카메라 구도까지 정성 들여 제작한 영상을 심사위원에게 선보여 평가받는다. “시청자가 퍼포먼스 하나만 봤을 때도 만족할 만큼 시각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질’로 승부를 봐야 했어요. 무엇보다 미션을 거듭하면서 매 퍼포먼스 비디오마다 더 발전된 퀄리티를 보여주고, 결국엔 그 퀄리티가 독립적인 콘텐츠 수준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정현 프로듀서의 말은 오디션 단계에서 춤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참가자도 ‘드림아카데미’ 출연을 위해 상당 기간의 트레이닝이 필요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드림아카데미’의 T&D를 총괄하는 미씨 파라모(Missy Paramo) 시니어 T&D 프로그램 매니저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초기에 동작의 통일성, 디테일, 끼, 에너지 컨트롤 등을 포함한 K-팝 퍼포먼스의 원리와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많은 시간 투자와 연구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훈련 시스템을 개별화하여 참가자의 부족한 점에 집중해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도한 결과, 빠른 성장을 체감할 수 있었다. 드림아카데미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하이브의 T&D 시스템 전수를 담당한 하이브 T&D사업실 신선정 Head of T&D는 “개개인의 스타일을 잠시 내려놓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리듬, 박자, 선의 정확한 표현을 위해 기본기를 닦는 과정”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룹으로 동시에 여러 명이 춤을 추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팔을 뻗을 때도 어떤 각도와 뉘앙스로 뻗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며 동작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동작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퍼포먼스 트레이닝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인정현 프로듀서는 “종국에는 완전한 칼군무보다는 어느 정도 멤버별 자율성을 부여한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동작을 디테일하게 컨트롤하고 깔끔하게 출 수 있는 기량이 있어야 결과적으로 팀과 각자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식으로 트레이닝을 해야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기 때문에 그 토양을 닦아주는 거죠.”라고 말했다. 반면 보컬 트레이닝 방식은 HxG(하이브 x 게펜)의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보컬 프로듀서와 트레이너가 지도하는 등 참가자들이 팝 시장에 소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서는 기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트레이닝 또한 필요했다. 국적부터 음악에 대한 경험까지 모든 게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닝을 하려면 기존 K-팝 트레이닝과는 또 다르면서도 체계적인 교육과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정신 건강 케어는 그들이 이 트레이닝을 견뎌내야 하는 과정에도 필요하고, 참가자들의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더 나아가 이들이 글로벌 스타가 된 후에도 극한까지 몰릴 수 있는 환경에서 장기적인 커리어를 유지하는 데 대비할 수 있길 원했어요.” 미씨 파라모 매니저의 말대로 참가자들에게는 교육, 라이프 코칭, 상담 분야의 전문가가 배정되고 밀접한 소통을 통해 정서적 지원이 주어졌다. 이는 기존 하이브 T&D 시스템 내 연습생 상담 프로세스를 미성년자 위주로 구성된 참가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특히 중시하는 미국의 문화적 특성에 맞춰 강화한 경우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처음 경험하는 엄격한 스케줄과 높은 수준의 연습에도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가라테, 댄싱, 스포츠와 같은 다양한 분야 안에서 규율과 고강도 트레이닝을 몸에 이미 익혀온 경험이 있는 참가자들은 이 모든 과정들이 정말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 준비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이해했어요. 그들의 마인드가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죠.” 미씨 파라모 매니저에 따르면 참가자들의 다양성이 오히려 새로운 트레이닝 시스템에 적응하고 융화하는 데 도움이 됐고, 트레이닝에 대한 기대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컨대 연기 경험이 있는 참가자는 자신을 카메라 앞에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것처럼 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과 경험, 개성은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있는 바탕이 됐다. 인정현 프로듀서는 평소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 주저 없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던 참가자들의 모습이 노래와 춤에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자기를 표현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웠고, 그 개성을 음악적으로도 표현할 줄 안다고 느꼈어요. 자유로운 표현을 독려하는 동시에 그룹에도 잘 녹아들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트레이닝 방법을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인정현 프로듀서는 프로젝트 초기에 아시아 문화권 위주로 진행되었던 K-팝 스타일의 T&D가 좀 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시간과 단계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현지에도 작동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미씨 파라모 매니저는 ‘드림아카데미’의 모든 과정을 거치며 정립한 HxG의 철학을 설명했다. “우리의 T&D 철학은 참가자들이 절대 자기가 아닌 사람이 되게 하지 않는 것이에요. 우리는 그들을 가이드하며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것은 참가자 스스로의 욕망과 목표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레이블 대 참가자의 구도가 아닌, 최고의 글로벌 걸그룹을 만든다는 것, 오직 하나의 목표에 모두가 함께 집중해왔어요.” 인정현 프로듀서의 말처럼 “매 순간이 가시밭길” 같았던 과정을 지나 새로운 K-팝 시스템이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