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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연주, 김겨울(작가),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뽐뽐뽐 유튜브
‘아이돌보미’ (뽐뽐뽐)
최연주:
나를 편하게 해주고, 나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고, 내 솔직한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 ‘아이돌보미’에서 13년 차 그룹 에이핑크 멤버 윤보미는 ‘아이돌 돌보는 아이돌’이 된다. 그는 침대와 러그가 있는 포근한 공간으로 “바쁜 스케줄로 힘들어서 지쳐 있는 아이돌”을 초대하고,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으며 게스트를 “좀 더 편하게” 해주기 위해 “시작하자마자 반말 모드로” 토크를 진행한다. 윤보미는 ‘파워 ENFP’인 츄가 말을 쉬지 않아 계속 웃다 얼굴에 경련이 나기도 하고, 직속 후배였던 위클리의 수진과 지한 앞에서 “아샷추(“아이스티에 샷 추가”)”를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로 확신하는 ‘허당미’를 뽐낸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빌리의 츠키와 하루나에게는 무려 오사카 사투리로 애교를 선보인다. 반려묘 ‘꼬모’의 집사인 휘인과는 반려동물 간식을, 츠키와 하루나와는 오사카의 명물인 타코야키를 함께 만들며 메뉴 선정에도 게스트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 하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그래서 ‘돌보미’의 대상이 되는 후배 아이돌들은 첫 정극 연기에 도전하거나, 그룹 활동에서 솔로로 새롭게 홀로서기를 시작하거나, 긴 공백기 끝에 컴백을 앞둔 자신들의 고민과 걱정을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중에 커서 꿈이 있는지”를 묻는 짧지만 어쩌면 심오할 수 있는 질문에도, “완전 쩌는 연예인”, “월드와이드”와 같은 당찬 포부를 자신감 넘치게 밝힐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윤보미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따뜻한 돌봄의 마음이, 화면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와닿게 만드는 사람. 그는 이미 자신의 꿈을 이룬 것 같다. 

‘화성과 나’ - 배명훈

김겨울(작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F 작가 중 한 명인 배명훈 작가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외교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딴 SF 작가인 덕에, 외교부의 연구 의뢰를 받아 ‘화성의 행성정치: 인류 정착 시기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 전략 연구’를 수행한 것이다. 말 그대로 인류가 화성에 정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연구다. 대개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과정을 상상할 때 생물학자나 물리학자와 같은 과학자를 떠올릴 테지만, 사람이 살기 시작하는 때부터 그곳은 행정과 정치, 외교의 영역이 된다. 그곳에 국가가 생기게끔 둘 것인가?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구의 법을 적용할 것인가? 더 구체적인 상상을 해보자. 거기서 간장게장을 먹을 수 있을까? 예술가가 이주하면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배명훈은 외교학자의 눈과 소설가의 마음으로 화성에 이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 후에 돌아보는 지구의 모습은 그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리라.

도재명 - ‘21st Century Odyssey’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온 세상이 자극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 가운데 대부분은 자극이 자극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부표처럼 자극의 바다를 둥둥 떠다닌다. 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숫자는 많지 않다. 세상의 가장자리로 떠밀려 갔다며 누군가는 안타까워할지도 모를 그들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묘한 표정으로 내내 바다를 바라본다. 만약 그곳을 배경으로 음악이 울리고 있다면, 그건 아마 도재명의 음악일 것이다. 밴드 잠과 로로스를 거쳐 2015년부터 솔로 작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음악을 두고 주류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위치와 상관없이 자극 끝에 놓인 피로에 지쳐 우리가 잊고 살던 것들을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밀물처럼 다시 우리 눈앞에 데려다주는 그런 음악을, 도재명은 한다. 세계 곳곳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납득할 수 없는 사건들,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까 고뇌하는 예술가의 자아 그리고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늘 함께였던 가장 가까운 사람 – 아버지의 죽음. 얼핏 낯설어 보이는 음악과 메시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밖에 없는 혹독한 이별을 기점으로 큰 순환의 원을 그린다. 도재명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촬영한 영상에서 추출한 음성을 삽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듣고 눈가가 시큰해지지 않기는 힘들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귀한, 정말 귀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