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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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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마샤 앰브로시어스(Marsha Ambrosius)는 오늘날 가장 과소평가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물론 R&B/소울 씬에서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음악적 능력과 개성을 고려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찬사 속에 있어야 한다. 위조할 수 없는 인장과도 같은 음색을 지녔고 R&B와 힙합 어떤 스타일의 프로덕션에서든 탁월한 보컬을 구사하며, 좋은 멜로디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곡가이자 여러 주제를 시적으로 풀어내는 리리시스트(Lyricist)다. 라이브 실력? 두말하면 잔소리다. 스튜디오와 무대 어디에서나 그녀의 노래는 한결같이 마음을 움직인다. 가히 ‘완성형’이라고 부를 만하다. 

듀오 플로에트리(Floetry)로 데뷔했을 때부터 남달랐다. 그들의 대표 곡 ‘Say Yes’를 들어보라. 관능적인 템포와 무드 안에서 무심한 듯 내려앉으며 섬세하게 감정선을 쌓아가는 보컬이 긴 여운을 남긴다. 단 두 장의 정규작과 한 장의 라이브 앨범만을 남긴 채 플로에트리의 활동이 끝난 뒤에도 앰브로시어스는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자신의 앨범과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때론 래퍼들의 곡에 소울풀한 생명력을 더하는 피처링으로, 때론 누군가의 음악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백킹 보컬로, 때론 다른 R&B 아티스트의 창의적인 작곡가로. 그런 가운데 본인의 앨범과 싱글로 수차례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비록 수상까지 이어지진 못했으나 연속된 후보 지명은 그녀의 커리어에 무게감을 더했다. 

하지만 앰브로시어스는 어느 순간 R&B 스타로서 맞닥뜨려야 하는 것들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이를테면 투어에서 오는 고단함과 음악 산업계에서 행해지는 변덕스러운 정치 같은 것들 말이다. 더구나 그녀는 음악인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거의 다 해본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나서기보다 뒤에서 다른 이를 위해 곡을 만들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우린 이 눈부신 재능의 소유자가 만들어내는 앨범을 오랫동안, 어쩌면 앞으로 영영 듣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앰브로시어스의 곁엔 다시금 그녀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거장이 있었다. 바로 닥터 드레(Dr. Dre)다. 그는 앰브로시어스에게 일단 음악을 같이 만들어보자며 설득했다.

둘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앰브로시어스는 드레로부터 애프터매스 엔터테인먼트(Aftermath Entertainment)에 솔로 뮤지션/작곡가/프로듀서로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2009년 초에 그녀의 합류는 공식적으로 무산된다. 그럼에도 두 아티스트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닥터 드레가 ‘2001’ 이후 무려 16년 만에 발표했던 새 앨범 ‘Compton’(2015)에선 앰브로시어스가 4곡에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두 아티스트의 음악 여정은 합작 앨범으로 이어진다. 드레가 전곡을 프로듀싱하는 앰브로시어스의 새 솔로 앨범이었다. 

제목은 ‘CASABLANCO’. 녹음은 일찌감치 마무리됐다. 지난 2021년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드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녹음 작업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 앨범을 만나기 위해선 3년에 가까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2023년 2월, 앰브로시어스와 드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리스닝 세션을 가졌고 12월이 되어서야 첫 싱글을 공개했다. 그리고 2024년, 마침내 ‘CASABLANCO’가 완전히 베일을 벗었다. 오랜 기다림을 보상할 만큼 중후한 프로덕션과 보컬로 충만한 작품이다. 11곡 전부 재생 시간이 4분 이상이며, 그 안을 비선형적인 벌스(Verse)와 코러스 그리고 황홀한 연주 브레이크로 채웠다. 특히 힙합과 R&B 역사를 통틀어 손꼽을 정도로 눈부신 샘플링의 미학과 보컬 퍼포먼스를 느낄 수 있다. 

우선 ‘Tunisian Nights’를 예로 들어보자. 재즈풍의 건반과 보컬이 수놓은 매혹적인 도입부에 이어 진취적인 트럼펫 사운드가 울려퍼지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재즈 트럼펫 거장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A Night in Tunisia’(1949)를 샘플링한 것이다. 원곡의 1분 13초경부터 흐르는 연주 부분을 좀 더 빠르게 바꾼 다음 전면에 부각했다. 그리고 전환된 무드에 적응하기도 전에 묵직한 힙합 비트가 차오르며 포개진다. 1990년대 뉴욕 힙합을 대표하는 명곡 나스(Nas)의 ‘N.Y. State of Mind’(1994)다. 또 한 번의 절묘한 샘플링을 통해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첫 싱글로 공개했던 ‘The Greatest’도 비슷한 방식과 전개를 보인다. 전반부는 ‘Park Avenue Beat’라는 곡을 샘플링했다(*주: ‘Perry Mason Theme’으로도 알려져 있다.). 1957년부터 1966년까지 CBS에서 방영된 법정 드라마 ‘페리 메이슨(Perry Mason’)의 주제곡이다. 극의 오프닝 타이틀에서 흘러나오는 ‘Park Avenue Beat’의 엄숙하고 긴장감 도는 무드를 극대화한 호른 부분을 마치 포티셰드(Portishead)를 소환한 것만 같은 트립합 사운드에 융합했다. 그리고 중반부에 이르렀을 때쯤 아마드 자말 트리오(Ahmad Jamal Trio)의 ‘I Love Music’을 샘플링한 나스의 ‘The World Is Yours’가 삽입된다. 현악 연주로 편곡되었으며, 이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서 ‘The Greatest’는 앨범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을 연출한다. 

그런가 하면 ‘Wet’은 너무나도 익숙한 샘플을 재료로 한 차원 높은 감흥을 이끌어낸다. 이미 많은 힙합, R&B 곡에서 샘플링된 드라마틱스(The Dramatics)의 고전 ‘In the Rain’(1971)에 기반을 두고 미려한 오케스트라 편곡과 드레 사단 특유의 점잖고 무게 있는 비트를 결합했다. 특히 앰브로시어스의 놀라운 퍼포먼스가 제일 빛을 발했다. 제임스 무디(James Moody)의 ‘Moody’s Mood for Love (Vocal Version)’(1956), 미니 리퍼튼(Minnie Riperton)의 ‘Inside My Love’(1975), 우탱 클랜(Wu-Tang Clan)의 ‘Method Man’(1993)의 일부를 가져와 재조합하여 감탄스러운 보컬 라인을 창조했다. ‘Wet’에서의 그녀는 노래로 플로우를 구사하는 래퍼 같다. 

이외에도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In a Sentimental Mood’(1963), 우탱 클랜의 ‘C.R.E.A.M.’(1993),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Smooth Criminal’(1987)을 샘플링하여 비교적 전통적인 재즈 힙합과 힙합 소울 사운드를 들려준 ‘Thrill Her’, 메리 제인 걸스(Mary Jane Girls)의 ‘All Night Long’(1983)과 패트리스 러셴(Patrice Rushen)의 ‘Remind Me’(1982)를 샘플링한 소울 재즈 넘버 ‘One Night Stand’ 등등 대표적인 몇 곡을 예로 들었지만 앨범의 모든 곡이 훌륭하다. 끝까지 단 한 순간도 귀를 떼기 어렵다. 그러니까 ‘CASABLANCO’는 스킵(skip) 감상이 만연한 시대에 스킵 버튼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그런 작품이다. 

마샤 앰브로시어스와 닥터 드레가 이 앨범을 작업하던 시기는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과 직면한 때였다. 앰브로시어스는 생각했다. ‘팬데믹에 처해 있고 세상이 묵시록적이며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한 일에 대한 음악적 인상을 남겨야 한다면 마지막 앨범은 무엇이 될까?’ 그녀의 발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당시 그들이 겪고 있던 모든 상황과 감정이 특정 공간에 담기게 되었고, 그것은 마치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와 같았다고 한다. 그러자 드레는 마지막 철자 ‘-ca’를 ‘-co’로 바꾸어 갱스터 같은 느낌을 더하자고 제안했다. 그 결과, 제목만큼이나 독특하고 창의적인 앨범이 나왔다. 너무나도 우울했던 시기가 한편으론 이렇게 뛰어난 작품을 마주하게 하니 참으로 잔인하면서도 짜릿한 아이러니다. 

앨범의 마지막 곡 ‘Music of My Mind’에서 앰브로시어스는 냇 킹 콜(Nat King Cole), 에타 제임스(Etta James), 제이 딜라(J. Dilla),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 듀란 듀란(Duran Duran), 토킹 헤즈(Talking Heads) 등 본인에게 영감을 주고 좋아했던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음악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마샤 앰브로시어스와 드레 사단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굉장한 감상의 희열과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R&B/소울 걸작을 선사해주어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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