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윤해인
사진 출처넷플릭스 유튜브

“경쟁과 자매애는 종이 한 장 차이예요.” 

지난 8월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 KATSEYE(이하 ‘팝스타 아카데미’)는 하이브 아메리카와 게펜 레코드(이하, ‘HXG’)의 협업으로 데뷔한 걸그룹 KATSEYE(캣츠아이)의 캐스팅을 비롯해 트레이닝, 최종 멤버를 선발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이하 ‘드림 아카데미’)’에 참여한 연습생들의 여정을 담았다. 1화 초반, ‘경쟁’과 ‘자매애’라는 한 연습생의 표현은 약 2년 동안 K-팝 트레이닝을 경험한 HXG 연습생들의 혼란스러운 삶을 축약한다. 누가 데뷔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의 발전과 존재를 증명해야 하지만, 때로는 팀 안에서 나보다 다른 사람이 돋보이게 도와야 한다. 그 과정을 함께하는 또래끼리 의지하며 친밀한 감정도 쌓인다. 

벨라루스의 일리야, 필리핀의 소피아, 브라질의 사마라, 슬로바키아 출신의 아델라. 그간 K-팝의 캐스팅이 제작 여건이나 그룹의 지향점에 따라 한국과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행해진 것과 달리, HXG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연습생을 모았다.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 인종, 언어를 지닌 참가자들이 모이게 됐고, 필연적으로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이해부터 연습생들의 관계 형성이 더 복잡하게 얽힐 수 있음을 암시한다. 누군가는 노래를 잘하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부터 댄서로 자랐다. 또 누군가는 이 모든 걸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틱톡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드러낼 줄 안다. 누군가에겐 한 장르의 팬에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고 가족의 성공까지 짊어진 기회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사는 지역이나 문화권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을 얻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동일하다. K-팝 시스템의 트레이닝을 거쳐 글로벌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것. HXG ‘T&D(Training & Development, 연습생의 훈련과 육성 과정을 의미)’의 미씨 파라모 시니어 프로그램 매니저는 다큐멘터리에서 T&D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이렇게 비유한다. “스포츠 훈련소랑 비슷해요. 실력이 빨리 늘도록 혹독한 일정으로 몰아가죠.” 다큐멘터리에서 연습생들의 실력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월말 평가’의 다섯 가지 기준, ‘보컬’, ‘댄스’, ‘비주얼 퍼포먼스’, ‘스타성’, ‘태도’는 K-팝과 그 아티스트의 조건이다. 캐스팅 단계에서 이 모든 걸 갖춘 이를 발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래서 서로 다른 재능을 지닌 연습생들은 일정 기간의 훈련을 통해 기량을 끌어올린다. 만 3세부터 볼룸 댄스를 배운 다니엘라는 이미 훌륭한 댄서였지만, 연습생 초반 1분 남짓한 프로그램을 완전하게 소화하지 못하거나 춤을 추면서 다양한 표정을 짓는 걸 어려워 했다. 하지만 마지막 ‘월말 평가’에서 HXG의 손성득 총괄 크리에이터에게 표정이 개선되었다는 호평을 듣고, ‘드림 아카데미’의 미션으로 춤과 노래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퍼포머로 거듭난다. K-팝에서 스타는 이렇게 태어나는 동시에 만들어진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팝스타 ‘아카데미’인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에피소드 말미, SNS 규정을 위반한 나이샤가 연습생에서 제외된다. 렉시는 다리 부상으로 수술을 고려한다. 연습생들이 SNS 규정을 읽거나 스트레스 룸에서 물건을 부수는 장면 그리고 새로운 연습생이 등장한다는 소리가 어지러이 병치된다. 이는 연습생들이 겪는 혼란스러움의 간접 체험이다. 신체적 피로와 불확실성이 공존하는데, 퍼포먼스는 늘 완벽을 추구한다. “항상 많은 지적을 받고 그게 불안감을 유발하죠. 가끔은 완벽해지고 싶으니까요.” 메간의 말은 연습생들이 겪는 불안의 근원 중 하나다. 무대에는 두 번이 없고, 찰나의 실수는 그간의 노력을 무너뜨린다. 계속되는 피드백은 그 방식이 이상적일지언정, 댄스 트레이너인 니키 파라모가 “제 얼굴로 다트판을 만들어 밤에 다트를 던지게 되겠죠.”라 농담할 만큼 버거운 일이다. “누가 내 경쟁 상대인지는 알 수 없어요. 언제 누군가가 짠 하고 나타나 레벨을 올릴지 모르니까요.” 브루클린의 표현은 연습생들의 솔직한 마음일 테다. 내가 데뷔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노력을 해야 데뷔에 가까워질 수 있다. 이 기회를 위해 참아야 하는 것도 많다. 그런데 기간 내 트레이닝을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회사는 연습생을 탈락시키기도 한다. 서로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맞는 선택이지만, 공들인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이별의 슬픔은 남는다. 이런 상황을 지속적으로 목격하는 건 연습생들의 유대감과 목표 의식을 뒤흔든다. 데뷔 멤버를 결정하는 서바이벌 ‘드림 아카데미’를 통해 연습생들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그들이 겪는 정신적 압박의 층위는 더 복잡해진다. 대중은 어떤 일면만으로 강력한 지지를 보내지만, 때로 근거 없이 비난한다. 나와 친구들에게 순위가 매겨지는데, 그 순위는 지난 시간의 경험과 다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긴 시간 마음을 의지한 친구가 탈락해서 일순간 숙소를 떠나는데, 다음 리허설은 해야 한다. 언제나 부상의 위험이 있고, 그로 인해 누군가 무대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을 고려하며 연습의 내용이 바뀐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무대에 서는 팀원에 대한 책임감은 중압감이 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8개의 에피소드 내내, 연습은 끝나지 않는다.

많은 K-팝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경연 무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준비 과정을 비하인드나 서사적인 장치로서 제시한다면, ‘팝스타 아카데미’는 참가자들 사이의 관계 형성부터 촬영장 뒤편과 연습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탈락자가 나온 다음의 이별 과정 자체를 에피소드의 핵심으로 삼는다. 대신 다큐멘터리는 그 상황이 선사하는 자극과 불안을 전시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연습생들의 의지와 적극성을 보여주길 택한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퍼즐이 되기 위해서고, 서로 잘 맞느냐에 달렸어. 그게 그룹이지. 그러니까 갑자기 ‘이 조각은 안 맞네.’ 하면서 언제든 탈락시킬 수 있어. 그 조각이 잘못된 게 아니야.” T&D의 첫 월말 평가 후 애비가 탈락하자, 소피아가 다른 연습생들과 함께 나눈 대화의 일부다. 때로 원치 않는 상황은 벌어지고,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기도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떤 특성은 이를 분명히 가중시킨다. 그러나 소피아의 말처럼, 그 상황 자체가 개인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겪는 심리적 고충, 개인의 부상이나 슬럼프, 열광과 비난이 혼재된 대중의 반응처럼,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해서 벌어진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스태프들이 멘토로서 건네야만 하는 말을 강조하고, 연습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그들의 경험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되는지 공고히 한다. 예컨대 ‘드림 아카데미’ 도중 렉시가 자진 하차를 전하면서, 연습생들은 감정적으로 요동치지만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보컬 트레이너인 가베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방금 있던 일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할 일을 해내려고 하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이건 무신경한 게 아니고 계속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필요 때문인 거야.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겨내는 거지.”

“다른 아이들은 1년 내내 훌륭한 선생님들 밑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하지만 전 경쟁적인 환경에 강한 타입이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등장부터 자신감과 투지를 보여준 라라는 훌륭한 보컬리스트로서 트레이너들에게 인정받지만, 팀으로 융화될 수 있을지 걱정을 샀다. 그렇지만 라라는 “이제 제 꿈은 걸그룹이 되는 거예요.”라며 자신의 목표에 ‘그룹’을 놓는 변화를 겪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T&D의 상황과 연습생 각자가 다양한 감정과 발전을 경험하는 와중에도 연습생들이 ‘그룹’으로 데뷔한다는 사실만큼은 변치 않는다. 그룹 퍼포먼스는 서로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향으로 발을 내려 놓을지,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부딪히지 않을지 조율해야 한다. 노래 또한 다른 사람의 소리와 호흡을 들어야 화음을 완성할 수 있다. 한동안 마농이 리허설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을 연습생들이 문제시한 건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그는 그대로 자신이 추구하던 삶의 방향성과 T&D 생활이 주는 상이함 사이에서 고전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팀으로서의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연습생들과 견해가 부딪히는 건 필연이다. 따라서 그가 ‘드림 아카데미’에 대한 의지를 밝혔을 때, 그 자신의 발전만큼 다른 연습생들과의 대화 과정을 필요로 했고, 연습생들은 마농이 지닌 진정성이 연습에 임하는 태도로 드러나야 한다고 설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룹이 된다는 건 회사가 그리는 방향성과의 조화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멤버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야 하는 미션이기도 하다. 팀워크는 단지 데뷔를 향하는 목표 의식에 의해 맹목적으로 싹트는 게 아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K-팝의 바깥에 있었던 것 같은 영역으로부터 K-팝 그룹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특성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팀 연습은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다. 무대는 서로가 그렇게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드림 아카데미’ 중 ‘Pink Venom’을 준비하던 아델라와 연습생들은 어려움을 겪는 일본 연습생 히나리를 위해 번역기를 동원하면서까지 동작의 디테일을 알려준다. 이는 무대의 완성과 평가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멤버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정성을 쏟는 그 눈빛은, 머나먼 타국에서 온 연습생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걱정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 동료애는 그저 ‘친하다’는 단어로 일축될 수 없는 끈끈함과 유대감에 가깝다. 마지막 에피소드, ‘All the same’ 리허설 도중 연습생들은 다같이 눈물을 터뜨린다. 그 눈물샘 끝에는 아마 다큐멘터리의 몇 시간으로 담기지 않을 지난한 나날이 있었을 테다. 겪어본 적 없는 일상을 유일하게 공유한 동료와의 시간 끝에서, “우린 모두 똑같다는 걸 알잖아(don’t you know we’re all the same)”라고 노래할 때의 복잡한 마음. 그건 바로 ‘자매애’라고 표현될 수밖에 없는 감정일 것이다. 다르지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별함. 인종, 배경, 실력, 모든 게 다른 연습생들이 하나의 공동체이자 하나의 팀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팝스타 아카데미’는 분명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12만 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20여 명이 경쟁했고, 그 안에서 또 여섯 명을 선발한다. 다큐멘터리는 종종 업계의 현실을 인정하며, 그 시스템적 허무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의 시선은 그 속에서 꿈을 위해 달려가고,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과 최선을 다하며, 성장을 이뤄낸 젊은 여성들의 내면으로 향한다. 꿈을 좇는 자들의 열망이 선사하는 성장사의 쾌감. 이는 이미 종료된 서바이벌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연습생 한 명, 한 명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하는 서사의 힘이다. 그렇게 어떤 개인이 이뤄낸 작은 성장의 떨림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과 공명하며 파동이 된다. “저를 지켜보는 인도 소녀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사세요.” 라라는 ‘드림 아카데미’의 자기소개 영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생이 되었고, 그 안에서 자신의 동료와 자매들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빈디를 붙인 채, 비슷한 배경을 지닌 이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팝스타 아카데미’ 속 연습생들이 등장할 때면, 각자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어떤 문화적, 인종적 배경을 지녔는지 알리는 것으로 소개가 시작된다. 연습생들의 숙소에는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부터 한국어와 일본어가 혼재한다. 필리핀의 누군가는 소피아가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해 꿈을 이루는 이야기를, 또 한국의 누군가는 K-팝 연습생으로 10대 시절을 보낸 윤채가 갑자기 언어가 통하지 않는 미국에서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발견한다.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8월 21일 이후, KATSEYE의 ‘Debut’와 ‘Touch’의 스포티파이 스트리밍은 점점 더 상승했다. 이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명확한 관심이다. 그리고 ‘Touch’의 스포티파이 스트리밍에서 KATSEYE의 멤버 소피아의 고향인 필리핀의 비율이 약 15%를 차지(2024년 9월 5일 자 데일리 톱 송 차트 기준)한다는 사실은 누가, 어떻게 이 다큐멘터리에 호응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끝없는 연습을 기반으로 한 트레이닝과 제작 시스템이 있다.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성장하고, 연대하는 이야기가 있다. 시스템과 감정, 자본과 개인의 드라마 사이에 이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까지 뜨겁게 하는 무엇. K-팝이다.

“이렇게 해냈다는 사실에 ‘휴’ 하고….” ‘드림 아카데미’를 마친 소피아의 소감과 함께 KATSEYE의 데뷔 곡 ‘Debut’가 흘러나오고, 다큐멘터리는 종료된다. 소피아의 미처 끝맺지 못한 그 한숨이 남긴 여운처럼, KATSEYE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그 지난한 시간은 그저 ‘휴’ 하는 한숨으로 축약될 만큼의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거대한 움직임이 된다는 나비효과처럼, 이 새로운 파동이 어떻게 퍼져 나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미 전 세계 어딘가에서는 다큐멘터리와 KATSEYE를 통해 또 다른 꿈을 키우는 중일 거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K-팝은 연습생들의 꿈을 하나로 모아 팀을 이루는 방법론에 가깝고, 그룹을 구성하는 데모그래픽과 가사를 전달하는 언어는 이미 변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서로를 보완하고 발전해 나가는 성장과 연대, 그 여정에 몰입하며 함께하고 싶어지는 정서는 변치 않는다.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는 K-팝에 대해 종종 던져지는, 가끔은 당사자조차 이해할 수 없는, 물음이자 답변이 된다. ‘저렇게 힘든데, 왜 저렇게까지 해야 돼?’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이유이자, 마음이 이끌리는 이유. 우리는 왜 K-팝을 사랑하며, 왜 함께 달려가고 싶어 하는가.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