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이 대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던지면 각자 정립해온 생각들이 교차되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감각하게 된다. 이는 실리카겔이 고유한 색을 유지하되 변화하고, 다양한 활동을 소화하며 팀의 외연과 내연 모두의 확장을 이룬 이유일 테다. 2024년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 출연할 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컬래버레이션을 시도 중인 실리카겔의 네 멤버 김건재, 김춘추, 김한주, 최웅희에게 요즘의 실리카겔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물었다.
작년 정규 2집 ‘POWER ANDRE 99’ 발매 이후 많은 활동이 있었어요. 지난여름 영화 ‘실리카겔 파워 앙드레 99’도 개봉했는데, 이런 시도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최웅희: 어떤 섭외가 온다거나 아이디어를 낼 때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가 추진력을 좌우해요. 저희는 공연장이나 음원으로 음악을 전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인데, 영화는 안 해봤지만 ‘재미’가 있어 보였어요.
실제로도 재밌었나요?(웃음)
최웅희: 저는 몇 번이었지… 한 열 번 가까이 봤더니 재미가 없어졌는데(웃음) 세 번까지는 재밌었어요. 영사기를 통해 나오는 느낌도 다르고, 극장마다의 차이도 있고, 이것저것 적응하는 데 애도 먹었던 것 같아요.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의 오프닝 공연을 하거나 스페인 ‘프리마베라 사운드 2024’ 무대에 오르기도 했잖아요. 이전과 다른 무대 공간의 경험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김건재: 일단 다른 무대를 보면 너무 재밌어요. 저 사람이 어떤 악기를 쓰고, 그게 출력될 때 어떤 시스템으로 크루들이 움직이는지 관찰하면 항상 새로워요. 저희 팀은 ‘아기’이기 때문에(웃음) 저희보다 길게 하신 분들에게 배우는 거죠. 아기 같다는 게, 배울 게 많아서요. 아직도 그런 마음이 있어요.
사실 ‘아기’라기엔 연차가 상당하신데요.(웃음)
김한주: 그러면 ‘할기’.(웃음) 노엘 갤러거의 무대는 객석에서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지만, 무대 뒤를 보는 건 정말 귀중한 기회였어요. 저도 멤버들도 음향이나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부분도 엿보려고 노력했어요. 스태프들이 어떻게 조직되었고, 케이터링은 어떻게 준비되고, 어떤 인원 규모로 시간 분배를 어떻게 하는지. 그런 걸 보며 부럽기도 하고 저희도 선택권이 더 생기면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볼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 맥락에서 한주 씨가 경험한 RM 씨와의 협업은 어땠나요? 새롭게 느낀 환경이 있었을지 궁금해요.
김한주: 스튜디오 작업 자체가 다른 뮤지션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는데 인상적인 건 많았어요. ‘한국에서 장르별로 인재를 뽑아서 한 공간에 가둬놨더니(웃음) 이런 게 나오는구나.’ 음악 활동을 하면서 감히 실리카겔을 제외하고 가장 재밌는 프로젝트였어요. 스물 몇 명의 작곡가가 있고 리더를 뽑아서 진행했는데, 그중 한 명이었거든요. 다른 작곡가들은 어떤 스타일로 하는지 지켜보며 디렉팅을 주기도 하고, 의견도 들어보며 색다른 경험을 했어요.
김건재: 그리고 음식도 좋아했던 기억이….(웃음)
김한주: 작업 기간에 RM 씨가 밥을 잘 사줘 가지고.(웃음) 알려져 있듯 RM이라는 친구가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고 음악도 미술적인 것도 굉장히 디깅을 해서, 그런 부분을 잘 해소해주려고 저도 노력했어요. 인간적인 깊이가 있어서, 저도 배우는 게 많은 프로젝트였고요. 그때 참여한 다양한 분야의 뮤지션들과 실리카겔이 연결되어 또 뭔가를 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실리카겔 바깥의 활동은 다시 실리카겔 작업의 자양분이 될까요?
김한주: 영향을 받아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좋았으면 ‘이게 잘되는 방식이구나.’ 배우고, 아쉬운 게 많았다면 반성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고요. 잘되든 안 되든,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배우는 것도 생기고 좋더라고요.
김건재: 개개인이 피드백이나 복기를 많이 하는 성격이라 그때마다 의견이 발전하고 또 바뀌고 그래요. 당연히 다음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인사이트를 팀 단위로 합치는 과정이 있을 텐데, 보통 의견 교환의 과정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김한주: 저희는 같이 있지 않아도 항상 장비를 샀다가, 팔았다가 하며 각자 포지션에서 연구를 활발히 하는데요. 그러다 어떤 필요에 의해 모여서 수집한 정보를 교환하는 게 기본적인 프로세스 같아요. 활동하다 불편함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지 얘기하고 민원을 모아보는 패턴도 있고요. 각자 연구하다 공동체 단위로 바뀌고, 공동체 단위의 민원은 다시 회사나 동료들과 해결해 나가요.
김춘추: 모두가 민원인이자 데스크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거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 누군가 해결하고, 때로 외부에서 솔루션을 받기도 하고요. 반대로 회사에서 민원이 오는 경우에는 어떻게 우리 방식으로 녹일 수 있을지 얘기하고, 매우 양방향이에요.
이상적인 팀 같은데요?
김건재: 그건 모르죠. 밖에서 보면 다 희극이지만….(웃음) 저희는 누군가 의견을 내면 충분히 고민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요. 예를 들어 한주가 아이디어를 던지는 역할이면, 그걸 어떻게 실행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생기고요. 그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다른 음악적 기반이 주는 상호작용도 있을 듯하고요.
김춘추: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가진 고유의 특징이 있잖아요. 작은 편성의 음악이라거나, 일렉트로닉 한 구성이라거나. 그 특징이 좋아서 장르에 대한 선호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특징과 형태에 주목해서 각자가 갖고 있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섞이지 않더라도 결과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게 섞일 때 ‘실리카겔’이라는 팀의 음악을 상정하고 만드는 편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과에 가까울까요?
김춘추: 저희 음악에 대해 해석하거나 개선됐으면 하는 것, 좋았던 것들이 다들 조금씩 다를 거예요. 각자 컴퓨터에 있던 요소들이 실리카겔이라는 ‘장터’를 통해 나오는 결과가 실리카겔의 음악 같아요. “이건 이래야 될 것 같아.”보다는 그냥 하다가 “좋은데?” 하고 진행되는 내추럴한 과정인 거죠.
최웅희: 각자 실리카겔을 하면서 다른 팀도 병행하는데, 다른 팀을 할 때와 실리카겔을 할 때 소름 돋게 달라요. 같은 곡이어도 편곡이 다르고요. 그런 걸 미뤄보면 뚜렷한 건 아니어도 ‘실리카겔이라는 추상적인 색깔은 생각하고 작업하지 않나?’ 추측만 하고 있어요.(웃음) 사실 아무도 몰라요.
그렇다면 ‘POWER ANDRE 99’를 만들면서 생각한 색깔이나 방향성은 무엇이었을까요?
최웅희: 각자가 생각하는 ‘POWER ANDRE 99’ 앨범이 머리 속에 있었을 텐데, 저는 연주에서 ‘머신 보이(앨범의 주제를 이끄는 가상의 존재)’틱하게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어요. 조금 차갑고, 기계적이고 반복적이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마무리. 이렇게 혼자 세계를 건설해서 작업했어요. 정규 2집 베이스 톤은 저희 멤버들, 엔지니어분들, 회사 스태프분들 모두가 달라붙어 의견을 나눴거든요. 그러다 보니 한 곡인데 베이스 트랙만 서너 개였던 기억이 나요.(웃음) 결과물은 마음에 드는데, 다시 하라면 쉽지 않을 것 같네요.(웃음)
김건재: 저는 작업할 때 따뜻한 소리를 내고자 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한 2년 전부터 인간적인 소리를 내려고 집중해왔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드럼은 요소 하나하나가 들리는 것보다는 하나의 악기로 들려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느 하나만 삐져나오지 않게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김춘추: 정규 2집은 ‘머신 보이 사가(saga)’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재작년부터 이어진 세계관 같은 느낌이에요. 싱글이 발매되면 거기에 해당하는 콘텐츠도 나오고, 모멘텀을 길게 가져갔거든요. ‘사람들은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고민해서 ‘이드로우마인드(EdrawMind)’를 열기도 했고, 그렇게 생긴 해석을 우리가 흡수해서 공연에 녹여보기도 하고요. 저희를 비롯해 팬분들, 작업하는 스태프, 작가 모두 앨범의 스토리와 콘셉트에 노출되고, 다시 그 영향이 복합적으로 앨범에 섞인 것 같아요.
최웅희: 저희 활동 중에 ‘덧댐’을 궁극적으로 활용한 것 같아요. 저희도 덧대고, ‘이드로우마인드’로 팬분들의 이야기를 덧대고, 뮤직비디오 감독님들이 또 덧대고. 난리가 났었죠.(웃음)
곡의 반응을 덧대고 이어간다는 점에서 ‘NO PAIN’은 어떤 모멘텀이 된 것 같아요. 발매 당시 곡을 향유하기 위한 여러 방식을 시도했는데, 그런 선택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한주: ‘NO PAIN’은 발매 전부터 같이 일하는 분들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공연장에서 미리 연주해보니 반응도 좋고, 곡에 대한 감상들이 여러모로 닥쳐오고 있었거든요. 음원이 발매됐다고 졸업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남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노래에 공동체적인 감수성을 건드리는 표현이 있으니, 음악의 소스를 공개하면 사람들이 달려들고, 우리와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으며 여러 해석을 도출시키면 재밌을 것 같았고요. 그게 단순히 예쁘고 재밌는 그림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저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하거든요. 노래와 어울리는데 바이럴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니,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렇게 도출된 반응은 팀에게 어떤 영향이 될까요?
김춘추: 어떤 곡을 발매하면 SNS를 통해서든, 공연 후 나눠주는 편지를 통해서든 다양한 감상이 들어오는 게 재밌어요. 예상치 못한 피드백도 있고 정확히 예상했던 게 돌아오기도 해서, 아웃풋을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즐거워요. 음악을 만들 때 본능적으로 혹은 계산적으로, 어떤 감상이나 인상 또는 추상일 수도 있는 무언가를 담기 마련인데, 그걸 직접 설명하진 않잖아요. 음악이라는 형태로 전달될 뿐이고요. 우리가 담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해석하는 건데, 그때 사람들의 피드백은 어떤 가이드가 돼요. ‘내가 이렇게 담으면 듣는 사람한테 전달이 되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있네?’ 이런 역할이요. 데모를 쓰고 친구들한테 “어떤 것 같아?” 묻는 거랑 비슷한데, 더 퍼블릭하게 공개되는 거죠. 그런 방향에서는 다음 음악에도 영향을 주지 아닐까 싶어요.
김한주: 저도 춘추 씨랑 비슷한 목적이 우선인 것 같아요. 거기에 플러스로 간혹 팬분들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간혹이 아니라 많이 그러긴 한데.(웃음) 음악을 하는 건 제 스스로 선택했지만 때때로 응원과 용기가 필요한데, 스스로 생산해낼 수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팬분들의 피드백을 보며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요. 제가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더 그런 것 같은데(웃음) 아무튼 그러합니다.
그런만큼 공연장에서 받는 감각도 소중할 것 같고요.
김한주: 저는 기본적으로는 스튜디오가 편하고, 거기서 제 재능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난 스튜디오 체질인 것 같아.’, ‘아니야 난 무대 체질인 것 같아.’ 이건 항상 바뀌어요. 공연을 하다 눈앞의 객석에서 그 에너지가 바로 전송될 때, 멤버들과 같이 무아지경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맞이할 때처럼, 저는 사람을 통해 기운을 받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공연장마다 오는 사람도, 환경도 다르고, 늘 같은 곡을 연주하지 않으니 단언할 수 없는데, 그런 날들이 있어요. 멤버들이랑 이렇게 다니기로 결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
지난 몇 년 새 공연장의 규모가 커지고, 종류도 다양해졌잖아요. 그만큼 무대로 보여주고 싶은 실리카겔의 모습도 변화했을까요?
김한주: 저는 생각하고 있는 게 완전 있어요. 그냥 압도적인 퀄리티를 보여줘야 될 때가 온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선보이려는 세팅이 있는데, 전에 볼 수 없던 퀄리티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 욕심을 좀 내고 있어요.
김춘추: 그런 것 있잖아요. 너무 좋은 건 취향을 뛰어넘어 그냥 입이 벌어지게 되는 것들. 너무 잘하고 좋으면 ‘우와’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걸 만들고 싶어요. 공연은 뮤지션이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잖아요. 그걸 팬들에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욕망이 커요. 해외 팀들의 인력을 부러워 하다 지쳐서(웃음) 국내 인프라로 이런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요. 올해 초부터 라이브 퀄리티를 증진시키려고 연주하는 세팅도 바꾸고 있어요.
무대는 극강의 몰입도 필요한 공간인데, 많은 생각도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네요.
김한주: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저희 직업이니까요.(웃음)
김건재: 그래서 무대를 하면 좀 피곤하긴 해요.(웃음) 생각을 하면서 해야 하니까요. 사실 잘하고 싶은 거죠. 옛날에는 제가 재밌게 하면 공연이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면 조금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게 있더라고요. 요즘은 준비한 걸 잘 전달할 수 있게 신경 써요. 드럼으로 다이내믹을 어떻게 연출해서 무대를 굴러가게 만들지 고민하고, 그러면서도 입력된 소스 같은 느낌은 피하고 싶고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세팅을 업그레이드한다거나, 각자만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게 쉽지 않을 듯해요.
김한주: 정곡을 찔린 느낌인데.(웃음) 그래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보니, 좀 힘들더라도 질적 향상을 우선시하게 되네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상향도 있고 또 그 시도가 가능해진 시기일까요?
김춘추: 실리카겔 활동을 해오면서 저희는 좋은 공연을 계속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안 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원하는 악기를 무대에 다 못 올리는 상황처럼요. 공연을 무기로 삼는 밴드나 뮤지션들이 더 좋은 스탠더드에서 공연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마침 실리카겔이라는 밴드가 주목받게 됐을 때, 그 마음이 훨씬 커졌고, 더 나아진 기준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 게 음악 씬이나 어떤 공연을 보러가는 관객들의 더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거잖아요. 누군가를 조금 불편하게 해도, 결과적으로 더 나은 공연 문화와 퀄리티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점에서 실리카겔이라는 팀에게 어떤 씬의 부흥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여기에 대해 생각이 더 정리된 부분이 있나요?
최웅희: 좋게 봐주시는 건 너무 감사해요. 저희가 아직은 누굴 구원할 때까진 아니고(웃음) 스스로를 구하기에 급해서….(웃음)
김한주: 그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왈가왈부하겠습니까?(웃음) 그런데 이전부터 생각해온 거지만, 한국에 좋은 음악 만들고, 공연 잘하는 분들은 많거든요. 저희를 포함해 이미 준비된 사람들은 많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무대 뒤편이 발전해야 할 시기 같아요. 그래야 사람들이 기대하는 ‘밴드 붐’에 걸맞은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건재: 사실 숨고 싶어서 음악을 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발매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어쨌든 대화할 사람을 찾는 거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어떤 구조화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한주가 얘기했듯 ‘한국에 좋은 음악은 많고, 그걸 잘 찾을 수 있도록 일조할 수 있다면, 열심히 뭐라도 해보자.’ 그런 생각이 자라나는 것 같아요.
일련의 생각들은 또 앞으로의 실리카겔에게 어떤 반향이 될까요?
김춘추: 어떤 사명을 느낀다기보다 기회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희가 그걸 목표로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게 한다고 어떤 씬이 생겨나는 건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좋은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판을 만들고픈 생각은 있어요. 누군가 ‘밴드 붐이 왔다.’ 말하는 것도 그걸 실현하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는 원동력이자 힘이 돼요. 이 시기를 활용해서, 실리카겔의 팬을 넘어 음악 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공연의 재미를 아는, 음악 팬들이요.
최웅희: 저희는 하나도 변한 건 없다는 생각이에요.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걸 하나씩 느기적 느기적 준비하는 팀인데요.(웃음) 지금도 ‘다음엔 뭘 해치워 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같아요. 또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보겠습니다.
- 실리카겔, 언제나 새롭고 용감한 밴드202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