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나 2’
오민지: “공주 아니라니까!” 모아나가 외치는 이 대사는 애니메이션 ‘모아나 2’ 내내 모아나가 스스로 증명해내야 했던, 그리고 결국 증명한 서사다. 1편의 모아나는 카누를 타고 별과 물길을 읽어 먼 바다까지 항해하는 폴리네시아인의 초상이자 모투누이섬의 지도자(족장)의 딸, 차기 족장이었다. ‘착한 딸’이 되고 싶어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가면서도 계속해서 금기된 바다에 이끌렸고, 섬에 위기가 닥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쫓기듯 바다로 모험을 떠났다. 아직 미숙한 항해술로 바다에 부딪히기도 하고, 자신의 고집으로 스스로와 마우이가 위험에 빠지는 상황에 처해보기도 하고, 마우이와 함께 ‘테 피티’의 심장을 되돌려주며 마침내 원하는 것을 해냈다. 한편 ‘모아나 2’에서 모아나는 족장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주어졌던 자격인 ‘차기 족장’을 넘어서야 한다. 바다와 섬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얻어낸 칭호인 바다의 길잡이, ‘타우타이’가 되기 위해 사라진 섬 ‘모투페투’로 가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모아나 2’의 모험은 어른으로 성장한 아이, 더 나아가 주어진 것을 넘어 어떠한 지위나 칭호를 쟁취해낸 여성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겪는 역경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너무 어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도망치듯 홀로 떠났던 과거와 달리 “우린 모아나를 믿어.”라는 모두의 믿음과 환대가 있고, 함께할 선원들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부족 사람들의 운명을 짊어진 무게는 버겁고, 무엇을 잃게 될지 혹은 얻게 될지조차 몰랐던 과거와 달리 소중한 것들을 모두 남겨둔 채 떠나야 함을 이제는 안다. 모아나에게 성장은 더 이상 설렘과 호기심, 확신이 아닌 두려움과 버거움, 불안이다. 쫓아가기만 하면 나를 ‘모투페투’로 데려다줄 거라 생각했던 별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항상 나를 도와주던 물길은 더 이상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모투페투’에 다다를수록 나를 믿어주는 일행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소용돌이와 번개 때문에 섬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냥 해봐. 길을 헤매보는 거야.”라는 ‘마탕이’의 조언처럼 모아나는 마음껏 헤매면서, 지금까지 정했던 규칙과 계획을 깨면서, 마침내 불가능처럼 느껴졌던 가라앉은 섬 ‘모투페투’에 닿는다. 이제 모아나는 족장이자 ‘타우타이’이고, 1편에서 마우이에게 했던 말처럼 “신들의 선택이 아닌 그 스스로가 영웅’이 된 여성이다. 1편의 ‘모아나’가 아이들에게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데 성별이나 편견이 문제가 되지 않음을 그리고 ‘길을 안다’면 미숙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줬다면, ‘모아나 2’는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주어진 운명에 안주하지 않고 두려움을 이겨내다 보면 나만의 길을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마음껏 헤매도 괜찮다는 것을 말이다.
‘가리온3’- 가리온
강일권(음악평론가): MC 메타와 나찰로 이루어진 듀오 가리온은 한국 힙합의 선구자이자 전설로 추대된다. 특히 언더그라운드 힙합 문화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2000년대 초반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또한 멤버 중 MC 메타의 랩은 꽤 오랫동안 가사와 플로우 양면에서 ‘훌륭한 랩의 표본’으로 일컬어져 왔다. 그런 그들이 데뷔한 지 어느덧 25주년이 넘었다. 비슷한 시기를 함께 보낸 한국 힙합 1세대 대부분이 자의에 의해서 혹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견디지 못해 하나둘 사라져 갔지만, 가리온은 씬의 중심에서 여전히 창작에 대한 열망을 결과물로 승화하고 있다. 덕분에 우린 그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맞이하게 되었다. 2010년에 발표되어 걸작으로 칭송받은 두 번째 정규 앨범 이후 가리온의 이력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음악적인 변화를 꾀한 몇몇 실험적인 프로덕션의 싱글은 시도의 의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완성도를 보였고, 각자의 솔로 활동 가운데 꾸준히 발표한 다른 싱글 역시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다행히 새 앨범에선 확실한 방향성이 느껴진다. 두 래퍼가 제작 모토로 삼은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 그들은 과거부터 함께한 이들과 이른바 ‘가리온 이후 세대’ 아티스트를 한데 불러모아 샘플링과 네 마디 루프의 마력을 잊지 않은 전통적인 힙합 프로덕션 위에서 지난 시간을 복기하고 한국 힙합의 현재와 미래를 논한다. 직설보다는 은유를 통해 상황을 바라보고 통찰하는 가리온 특유의 가사가 주는 맛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각자 래퍼가 되기까지의 일화를 꾸밈없는 언어로 추억하는 ‘01410’ 같은 곡은 가리온의 앨범에서 들으니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탁월한 앨범을 주조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아티스트 딥플로우를 총괄 프로듀서로 초빙한 점도 완성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가리온은 트렌드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랩과 비트를 담아냈다. 부디 다음 앨범까지의 공백은 보다 짧아지길 바란다.
- '최애의 최애', 여기선 마음껏 좋아해도 됩니다2024.12.06
- ‘아케인 : 시즌 2’, 인간성을 고찰하다2024.11.29
- ‘무쇠소녀단’, 영화를 넘어서는 현실의 열정20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