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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사진 출처S2엔터테인먼트

2024년 K-팝에서 키스오브라이프의 존재를 빼놓을 수 있을까.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성도와 실력으로 혜성같이 데뷔한 이들은 2년 차가 되는 올 한 해 종횡무진하며 사계절을 화려하게 빛냈다. 

키스오브라이프는 멤버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4인조 그룹이다. 아이돌 그룹의 구성 전략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균일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일체감을 주는 방식도 있고, 애초에 한 명 한 명의 특출함이 돋보이게 구성해서 거기에서 오는 시너지를 노리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키스오브라이프는 전적으로 후자다. 특히 4명이라는 콤팩트한 구성과 개개인의 높은 능력치는 한눈에 ‘소수정예’임을 인정하게끔 만든다.

일반적으로 이런 ‘소수정예형’, ‘실력파’ 그룹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일명 ‘걸크러시’ 콘셉트는 물론이고, 보컬도 대개 힘차게 가고자 한다. 로커 같은 벨팅 창법을 구사한다든지 아니면 리아나(Rihanna)처럼 비음으로 꽉 눌러 쨍한 느낌을 주는 팝 보컬을 들려준다든지 말이다. 반면 키스오브라이프의 독특함은 보컬의 라이트함에 있다. 댄스는 몸이 부서질 것처럼 격렬해도 보컬의 라이트함과 표정 연기의 산뜻함이 어려운 퍼포먼스를 너무나 쉬워 보이게 만든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톤 위주의 보컬 덕이다. 개인적으로는 티나셰(Tinashe)와 같은 아티스트의 부드러운 감성 보컬과 감각적인 댄스 조합을 좋아하기에 키스오브라이프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다.

봄 - ‘Midas Touch’

2024년 첫 활동 곡은 4월 3일 봄에 발매된 ‘Midas Touch’였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그의 손이 닿으면 뭐든 황금으로 변했다는 미다스 왕의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전개한 악곡과 콘셉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이나 푸시캣돌스의 ‘Don’t Cha’ 같은 2000년대 미국 댄스팝의 적절한 재해석이었다. 

이 시기 미국의 팝 신은 미국과 유럽 등 기존 서구를 벗어나 타 지역에서 후킹한 소스들을 따오고자 하는 유행이 막 번지고 있던 시기였다. 인도 영화 음악의 독특한 스케일을 샘플링한 ‘Toxic’이나 남미 음악의 차차 리듬을 활용한 푸시캣돌스의 ‘Don’t Cha’ 등의 댄스팝이 유행했고, 한국에서도 SBS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X-맨’ 등을 통해 이 같은 곡들이 인기를 누렸다. ‘Midas Touch’는 그 시절의 리듬과 바이브를 충실히 재현하되, 드럼은 너무 그 시절 ‘댄스 신고식’같지 않도록 적절하게 악기 사이로 숨겨놓았다. 비주얼과 댄스는 올드하지 않게 세심하게 다듬었고, 상기한 키스오브라이프의 라이트한 보컬이 얹히며 Y2K의 촌스럽지 않은 재현에 성공했다.

특히 나띠의 금발 변신이 화제였다. 나띠는 본래 여러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솔로로 데뷔도 해본 검증된 인재였다. 그의 ‘한 방’은 작년 키스오브라이프의 데뷔 앨범에 수록한 솔로 곡 ‘Sugarcoat’로 찾아왔다. 흑발 풀 뱅 스타일에 거칠게 손질된 구제 힙합 룩을 입은 나띠의 모습은 이미 그를 알던 K-팝 팬들에게도 또 그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대중에게도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Midas Touch’ 활동에서는 아예 이 지점에 한 번 더 트위스트를 주어 완전한 금발에 화려한 거미줄 세트에 앉은 유혹적인 모습으로 등장했고 이로써 곡의 신화적 아우라를 더욱 증폭시켰다. 키스오브라이프의 매혹적인 Y2K는 나띠를 중심으로 쌓아올려지며 또 완성된다.

여름 - ‘Sticky’

올해의 ‘서머 퀸’ 자리는 키스오브라이프의 ‘Sticky’가 거머쥐었다. 아프로비트 영향의 팝임이 분명하나, 제목과는 정반대로 끈적함보다 산뜻함이 돋보였다. ‘Sticky’를 들으면 떠오르는 남아공의 아마피아노(Amapiano)나 나이지리아의 알테(Alté) 장르는 하우스보다는 리듬 구조가 복잡하지만 그 위에 올라간 전자피아노(E.piano) 같은 악기가 K-팝이 사랑하는 여름 장르 트로피컬 하우스와 닮은 구석이 있어 신선하면서도 낯설지는 않다. 본격적인 요즘 아프로비트 히트 곡들보다는 화창하고 청량한 인상을 준다.

‘걸그룹의 여름 노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점점 더 까다로운 과제가 되어 간다. ‘Sticky’는 ‘핫 걸’이라는 키스오브라이프의 별명을 한층 더 강화해줌과 동시에, ‘2024년의 핫 걸’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 중 하나였다. ‘핫’한 콘셉트의 K-팝 뮤직비디오는 대체로 피사체의 양감을 강조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의 콘트라스트에 집중하는 조명을 쓴다. 반면 ‘Sticky’는 쨍한 자연광 아래 그림자의 존재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날린 그림을 보여준다. 양감보다는 동세에 훨씬 집중되어 있다.

‘Sticky’의 산뜻함은 쥴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트월킹을 비롯해 운동화를 신은 발과 신나게 딛고 비비는 다리의 동작들에는 섹시함도 있지만, 남아공 바카르디 댄스 특유의 자유로움과 에너제틱함이 담겼다. 이를 적절한 파워와 유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화사한 그 특유의 반달 웃음의 표정 연기로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시원시원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공존하는 퍼포머 쥴리이기에, ‘Sticky’라는 노래가 더욱 그의 ‘퍼스널 컬러’처럼 느껴진다. 

가을 - ‘Get Loud’

10월에 내놓은 키스오브라이프의 세 번째 미니 앨범 ‘Lose Yourself’는 미국의 남부 힙합이 팝의 주류로 자리매김해 가던 2000년대와 2010년대 미국 팝 사운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했다. 특히 타이틀 곡 ‘Get Loud’는 스패니시 플라멩코 기타를 연상시키는 기타 스트로크와 멜로디가 특히 히스패닉권의 음악과 잘 섞이는 남부 힙합을 연상시킨다. 가사의 “Havana”나 “cha cha” 같은 레퍼런스가 이를 비교적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특히 K-팝에서는 2004년에 발매된 보아의 ‘My Name’이 초반 벌스 내내 저런 기타 스트로크를 깔아주었던 바가 있기 때문에, 그 시절의 K-팝 팬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곡의 가사를 보면 컨페티(confetti)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뮤직비디오에서도 은색깔의 컨페티가 흩뿌려지며 이미 눈부신 조명을 수만 가지 방향으로 난반사시켜 장면 장면을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이렇게 잘게 잘려 과장되어 빛나는 세트 속에 하이틴 드라마 주인공 같은 벨의 애티튜드가 몹시도 잘 어울린다. 이미 여러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탄탄한 보컬 실력으로 귀를 집중할 수밖에 없는 멤버인데, ‘Get Loud’에서는 특히 때로는 새초롬하며 때로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효과적으로 연출한다. 특히 인스트루멘탈이 잦아든 프리코러스에서 오로지 보컬로 긴장감을 휘감아 기대를 끌어올리는 실력이 발군이다.

그는 본래 작곡가 출신으로 아이돌 준비와는 인연이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도리어 그런 이미지가 아이돌 스타가 된 지금은 아이돌 연습생의 문화를 오래 체득하지 않은 사람의 독특함으로 다가올 떄가 있다. 때로 도도하면서 솔직한, 어딘지 하이틴 드라마 공주 같은 느낌 말이다. ‘Get Loud’의 벨은 여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곡의 힙하면서 활발한 무드에 잘 어울렸다.

겨울 - ‘Igloo’

‘Lose Yourself’ 앨범의 수록 곡으로, 발매 일시는 ‘Get Loud’와 같지만 곡의 무드와 콘셉트 그리고 길게 이어진 인기가 올겨울의 히트 곡으로 꼽기에 손색없다. 크레딧에 주로 방탄소년단과 작업해온 프로듀서 히스 노이즈(Hiss Noise)의 이름이 보이는 점이 흥미롭다. 비트는 힙합의 서브장르인 스냅 뮤직에 가까운 미니멀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덜어낸 것이 키스오브라이프의 무대 위 애티튜드와 합쳐져 무심하면서 새비지(savage)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틱톡 챌린지에 적합해 보이는 간단한 안무를 각자의 끼와 함께 녹여내고, 퍼(fur)나 패딩 재킷을 활용한 섹시한 겨울 룩 그리고 여기에 선글라스 하나 툭 얹으면, 말해 뭐하랴. 게임 끝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키스오브라이프의 제작에 참여한 이해인은 하늘을 그 어떤 디렉션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그 어떤 이미지도 자신의 것처럼 소화하는 팔색조로 설명한 바 있다. 그중 특히 과거 연습생 시절 에스파의 ‘Next Level’을 소화하는 하늘의 모습에서 ‘사이버틱한 무드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늘의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장신에서 오는 시원시원한 움직임, 그리고 거추장스러움이 없는 깔끔하면서 시크한 표정 연기가 돋보인다. 하늘과 ‘Igloo’ 곡의 차가우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하늘은 팀의 막내이자 연습생 풀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발탁된 키스오브라이프의 마지막 한 조각으로, 이전 활동 곡에서도 부족함 없이 충분한 기량을 보여줬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이기에 팀의 ‘핫 걸’ 이미지를 표현할 때에 연출 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보였다. ‘Igloo’에서는 무대에 완벽하게 적응한 2년 차 연말의 아이돌 하늘이 마침내 풀 포텐셜을 터뜨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선글라스를 벗거나 써서 눈을 가리거나 드러내는 것만으로 그의 반전 매력이 드러내는 점은 곡의 미니멀함과 결부되어 이렇게 단순한 요소로 이렇게 큰 파급력을 낸다는 점에 감탄하게 만든다.

키스오브라이프와 보낸 네 계절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콘텐츠는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잘 만들어졌고, 흠잡을 곳 없었다.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연거푸 내놓았으니 내년을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3년 차의 키스오브라이프는 얼마나 괴물 같은 팀이 되어 있을까. 그 어떤 상상을 해도 상상을 앞지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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