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 대중음악 씬 속 J-팝의 활약은 대단했다. 이마세의 ‘NIGHT DANCER’와 요아소비의 ‘アイドル’라는 두 히트 곡이 일본 음악이라는 아틀란티스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던 2023년에 이어, 작년은 그것이 보편적인 취향의 하나로 완벽히 정착한 해였다. 그 배경에는 1년 내내 활발하게 개최되었던 내한 공연이 있다. 그중 특히 상징적이었던 이벤트를 세 가지 정도 꼽아보자면, 최초의 J-팝 중심 페스티벌 ‘원더리벳 2024’와 양일간 2만 5,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요아소비의 내한과 더불어어 후지이 카제의 공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일본 아티스트 최초로 고척스카이돔(이하 ‘고척돔’) 공연을 현실화하며 J-팝이 국내 음악 신에 있어 일정한 궤도에 올라왔음을 명실공히 보여주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일본 음악 마니아들이 오히려 그의 돔 공연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러한 리액션은 대개 본인들 주변에 그의 팬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아마도 그가 일본 음악의 카테고리에 있음에도 일본 음악답지 않은 활동 방식과 작품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왜 국내 J-팝 팬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지, 반면에 과연 어떤 팬 베이스를 가지고 있기에 소수의 글로벌 스타에게만 문호가 개방되는 고척돔 무대에 설 수 있었는지. 갑작스레 생기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선, 그의 커리어 속에서 발굴 가능한 그만의 특이점을 몇 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유튜브 활동을 통해 뮤지션으로 도약하게 된 사례다. 처음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올린 2010년 이래 장르나 국경에 상관없이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잠재력에 대한 증명을 성실히 축적해 갔다. 그 아카이브로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해 프로 데뷔 전부터 다양한 이벤트에 출연해 경험을 쌓아갔으며, 2018년 메이저 계약 후에도 정식 오리지널 작품 발매 없이 원맨 투어 ‘Fujii Kaze ‘JAZZ&PIANO’ The First’를 매진시키는 등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이고도 이례적인 형태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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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까지만 해도 커버가 아닌 ‘자신의 곡’으로 메인스트림에 정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 의구심을 단숨에 잠재운 것이 바로 데뷔 곡 ‘何なんw’이었다. 자신의 장점인 피아노 연주를 기반으로 R&B와 힙합, 가요 곡 등의 요소를 융합해 오카야마 사투리와 영어를 오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꺼내놓은 재능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이의 없는 찬사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일본 블랙뮤직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우타다 히카루의 등장에 비견하는 반응도 다수.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이 거둔 성과의 초점이 ‘일본이라는 로컬리티가 가진 한계의 극복’에 맞춰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결과물 역시 열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완성도를 이르게 인정받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해외에서 심상치 않은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7월의 일이다. 2022년 10월에 2집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Fujii Kaze LOVE ALL SERVE ALL STADIUM LIVE’ 투어를 통해 양일간 7만 명을 동원하며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난 순간, 1집 ‘HELP EVER HURT NEVER’의 수록 곡인 ‘死ぬのがいいわ’가 틱톡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 그 열기는 단숨에 확산되어 스포티파이에서 전 세계 23개국에서 1위를 차지, 2022년 해외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일본 음악에 랭크됨과 동시에 재생 횟수 2억 회를 돌파하는 등 생각지도 못한 글로벌 히트를 목도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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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카제의 음악이 팝뮤직으로서의 포텐셜이 충분하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었지만, 수록 곡에 지나지 않았던 ‘死ぬのがいいわ’의 히트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태국의 틱톡 유저로부터 발현된 열풍은 부탄이나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가게 되고, 한국과 미국 역시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언뜻 보면 숏폼으로 발견한 음악을 스트리밍 사이트로 청취하는 뉴미디어 시대의 흔한 콘텐츠 소비 경향으로 비춰질 법하다. 그럼에도 그는 타 바이럴 히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아티스트 자체에 대한 팬덤으로 연계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차근차근 뜯어보면, 결국 노래가 가진 속성과 인간으로서의 매력, SNS 중심의 활동 전략이 맞물린 거대한 시너지가 인기의 핵심 요인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기 전, 개인적으로도 ‘死ぬのがいいわ’의 히트는 의아한 면이 있었다. 물론 ‘死ぬのがいいわ’는 그의 팝 센스가 균형감 있게 구현된 좋은 곡이기도 하고, 선율이나 리듬도 처음 듣는 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캐치함으로 무장해 있다. 그럼에도 하필 왜 이 곡이었을까. 이유는 바로 참여를 유도하는 가사에 있다. “三度の飯よりあんたがいいのよ / あんたとこのままおサラバするよか/ 死ぬのがいいわ / 死ぬのがいいわ(세끼 밥 보다 네가 더 좋아 / 너와 이대로 이별할 바에는 죽는 게 나아 / 죽는 게 낫겠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노랫말이 무언가에 대한 각자의 애정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로 여겨졌던 셈.
실제로 이 곡이 본격적으로 바이럴을 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객체에 이 노래를 조합한 영상이 유행하면서부터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죽어도 못 보내’, ‘총 맞은 것처럼’과 같이 스트레이트한 노랫말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더없이 최적화된 노랫말이다. 메타포 중심의 가사가 비교적 많이 사용되는 일본 음악과 달리, 그러한 ‘J-팝에 대한 낯섦’을 후지이 카제는 보란 듯 비껴가며 취향을 찾아 헤메는 국내 SNS 유목민들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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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능숙한 SNS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SNS를 활용한 프로모션이 조금씩 본격화되던 시점에, 한발 앞서 자기소개 및 곡 해설 영상을 올리는 등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를 발빠르게 선보여 왔다. 무엇보다 ‘死ぬのがいいわ’가 심상치 않은 인기를 보이자 곧바로 부도칸 라이브 영상을 올리고 X(구 트위터)로도 메시지를 남기며 감사함을 표하는 등 적극적인 리액션으로 화답했다. 그러한 의사소통의 기반이 모두 영어였다는 사실은 결정적이다. 그가 J-팝이라는 틀에서 해방된 ‘해외 팝 스타’로서의 페르소나를 부여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언어의 장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또 다른 일본 음악’이 아닌 ‘또 다른 취향’을 찾고 싶었던 이들을 대상으로, 일본 음악의 클리셰를 벗어난 그의 결과물과 활동 방식이 더 넓은 영역의 대중들을 포섭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석과도 같았던 OTT와 타이업 중심의 글로벌 진출 전략을 뒤엎으며, 후지이 카제는 새로운 일본 음악의 진출 전략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 흐름을 타고 그의 음악에 스며들어가던 이들은, 어느 순간 최종적으로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도달한다. 그는 ‘Higher Self’, 즉 자아나 이기,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난 사랑 그 자체를 찾을 것을 음악을 통해 촉구한다. 그런 그에게 팬이나 관객은 어떤 모습이든 모두 하나이며 매번 감사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아시아 투어가 “자신의 고향이 더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라고 언급하고, 뉴진스의 ‘Ditto’를 커버하거나 ‘도라지 타령’을 ‘まつり’와 엮어 선보이는 등 그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지금’을 소중히 하는 모습 또한 그러한 ‘Higher Self’에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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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봤듯, 후지이 카제의 결과물을 단순히 ‘일본 음악’으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다수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파퓰러한 음악, 전 세계인을 타깃으로 하는 소탈하고도 진정성 어린 소통 방식, 여기에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을 살아감에 있어서의 감정을 소중히 하자고 언급하며 자신의 삶을 더욱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하는 태도까지. 알면 알수록 그라는 아티스트는, 단순히 ‘J-팝 붐’의 흐름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청춘은 덧없기에 그 반짝임에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는 ‘青春病’의 가사처럼, 후지이 카제는 이미 국경을 초월해 ‘팝 아이콘’으로서 현 시대를 내리쬐는 빛을 강하게 발하고 있다. 마치 오늘 모든 눈부심을 쏟아낸 후 내일 사라진다 한들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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