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SZA)의 팬에게 필요한 가장 큰 덕목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다. 시저는 2013~2014년에 두 장의 EP, ‘S’와 ‘Z’를 내고, 그의 이름을 완성하는 또 다른 EP ‘A’의 작업을 시작했다. 2015년 공개를 예정했던 ‘A’는 150~200곡에 이르는 세션을 거쳐 2017년 ‘Ctrl’이라는 데뷔 앨범이 되었다. 물론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2022년 ‘SOS’가 나오기까지는 또 다른 5년과 100곡 이상이 필요했다. ‘SOS’는 더 큰 결과를 낳았다. 빌보드 200 10주간 1위를 비롯해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의 초기 활동에 비견되는 대중적 성공과 그래미 어워드를 비롯한 대형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르는 업계의 인정을 동시에 얻었다.
요즘 확장판 혹은 디럭스 버전은 아주 흔하고, ‘SOS’ 수준의 성공작에 약간의 보너스를 더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추가 트랙이 또 하나의 걸작이 되리라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앨범이라는 형식이 선택과 정제를 거친 결과라는 인식은 생각보다 공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초 10곡 정도로 언급되기 시작한 ‘SOS’의 확장판은 트랙 유출, 재작업 선언 등의 뉴스를 거치고, ‘LANA’라는 별도의 이름까지 갖게 되면서, ‘보너스’ 이상의 기대를 받게 되었다. 이것이 ‘LANA’ 혹은 ‘SOS Deluxe: LANA’의 추가 트랙 15곡이 놓인 배경이다. 덕분에 많은 감상은 의도치 않게 둘 중 하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LANA’의 15곡이 오리지널 ‘SOS’의 앨범에 실리지 않고 남았던 트랙임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LANA가 ‘SOS’와 무관하게 독립적인 작품으로 충분히 설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하지만 두 입장은 상호 배반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LANA’의 약점을 확장판이라는 형식에서 찾는 것은 약간 불공평한 건 아닐까?
시저는 언제나 인간적 취약과 솔직함을 탁월한 음악과 결합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가 종종 새로운 노래를 쓰고 녹음하며 앨범 제작을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의 음악이 매일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변화를 겪는 자신의 투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Ctrl’과 ‘SOS’는 시저의 인생 중 음악가로 가장 젊었던 약 10년간의 기록이 된다. 좋은 예술이 종종 내밀한 개인성을 추구하여 보편적 공감을 얻어내는 일이라면, 최근 팝 음악에서 이는 시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지난 10년의 뒤를 잇는 ‘LANA’는 초창기 2개의 프로젝트가 보여준 감정적 혼란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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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는 앨범을 시작하는 ‘No More Hiding’의 고백적인 태도로부터 ‘LANA’가 어떤 앨범인지 밝힌다. 그는 내면을 바라보고(Cut myself open to see what I’m), 자신을 받아들인다(I wanna be real me, ugly). 여전히 연약하고 솔직하지만 동시에 단호하다(Had to bury everything twice over). 지난 앨범 히트 곡 ‘Love Galore (Feat. Travis Scott)’와 ‘Kill Bill’의 암살자 판타지는 ‘My Turn’에서 “내가 널 상처를 주고, 네가 고통 받을 차례(My turn, mine to do the hurtin’. Your turn to bear the burdеn)”임을 선언하는 단단함으로 나아간다. 그는 ‘Crybaby’에서 노래한 것처럼, “네가 내 얘기를 하고 다니는 거 알아. 대부분 끔찍하던데, 사실이야”라고 받아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트랙 ‘Saturn’에 이르면 “나의 문제(Sick of this head of mine)”와 “세상의 문제(The good die young and poor)”에 카르마와 열반(nirvana)도 약속과 달리 아무 도움을 주지 않을 때, 토성(saturn)에서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이는 회피적인 태도가 아니다. 시저는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했고, 작은 농담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도록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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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A’의 음악적 일관성과 차분한 기조는 ‘SOS’의 장르적 모험과 대비된다. 하지만 이는 ‘SOS’와 비교해도 약점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LANA’는 따뜻하고 몽환적인 아날로그 신스와 기타 라인을 중심으로 R&B 편곡에 집중하여, 시저의 메시지가 주인공이 되도록 돕는다. ‘Kitchen’이나 ‘Crybaby’는 장르적 전형성은 죄악이 아니고, 오히려 고전적 접근이 시저의 보컬과 어우러져 청자를 붙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적 예시다. 이전보다 절제되어 있을 뿐, 시저의 장르적 자유로움은 여전히 날카롭기도 하다. ‘BMF’가 ‘The Girl from Ipanema’의 멜로디를 활용(interpolation)하며 유쾌한 장난과 감수성을 결합하는 여유를 보라. ‘Scorsese Baby Daddy’의 긴장감 있는 기타 리프 위에서 시저는 여전히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LANA’가 여전히 ‘SOS’의 확장으로 남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LANA’가 지금까지의 시저에 대한 훌륭한 주석이지만 새로운 시기에 대한 청사진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아쉬움은 애초에 높은 기대치를 반영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시저의 팬들은 라이브 공연과 스니펫 등으로 그 존재가 알려진 수십 개의 미발매 곡 중 개인적으로 정식 녹음을 원하는 노래 하나 씩은 가지고 있다. 시저가 앨범이라는 활동 단위와 무관하게, 그를 유명하게 만든 진정성과 예술적 깊이를 끊임없이 유지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더 많은 트랙이 그저 더 좋은 일이 되는 아티스트는 희귀하다. 시저를 따르는 일은 앞으로도 예측 불가능하고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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