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키 보이즈’ (칠성 레이블)
예시연: 2003년, 동방신기의 메인 보컬 영웅재중으로 데뷔해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재중이 22년이 지나 연습생으로 회귀했다. 웹 예능 ‘밀키 보이즈’는 동명이인인 영웅재중에 의해 데뷔가 무산되었다는 평행 세계 속 23년 차 연습생 김재중의 데뷔 도전기를 다룬다. 그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그런 밀키한 아이돌”을 꿈꾸며 15년 차 인피니트부터 당시 데뷔한 지 8개월 된 TWS까지 여러 K-팝 아이돌 선배를 찾아가 새로운 막내로 받아달라고 청한다. 하지만 오늘날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그가 갖춰야 할 덕목은 너무나도 많다. 진심 어린 팬 사랑을 보여줄 소통법은 물론 최신 유행어와 MZ세대 트렌드를 숙지해야 하고, 라이브 특훈과 자기 관리도 놓칠 수 없다. 각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주제는 곧 K-팝 아이돌로서 갖춰야 할 필수 조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습생 김재중에게 주어진 데뷔 테스트는 아이돌로부터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량은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밀키 보이즈’가 게스트의 매력을 조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연습생임에도 23년 차 아티스트로서 김재중의 관록은 은연중에 묻어나온다. 그는 ‘주문-MIROTIC’의 도입부를 완벽히 재현하고, 공개 방송 미니 팬 미팅 문화에 대해 “그거 제가 처음 했어요!”라는 대답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후배에게 TREASURE 준규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동방신기 ‘HUG (포옹)’를 커버했다며 “(너에게) 영향을 받았어...”라고 수줍게 말하고, TWS 경민은 존댓말이 새어 나오는 탓에 “우리를 봐야지…이요”라고 이야기하며 ‘밀키 보이즈’ 세계관의 균열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선배 아이돌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에서 비롯되는 이 독특한 균열은 세계관에 대한 방해 요소가 아닌 ‘밀키 보이즈’만의 독특한 웃음 코드다. 현실로 복귀한 쿠키 영상에서 김재중은 후배를 이끌고 격려하는 23년 차 선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해당 세계관에서 반말을 하는 콘셉트가 자칫 무례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지를 걱정하는 KickFlip에게는 “너무 좋았는데? 잘될 거야.”라는 응원을 건네고, 그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고백한 CRAVITY 우빈에게는 뜨거운 포옹으로 답한다. 요컨대 ‘밀키 보이즈’는 선후배 관계가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대선배 김재중과 후배 아이돌의 역할을 전복하며 시청자로부터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K-팝 산업에서 일하는 이들의 직업 정신과 선후배 간의 존중과 배려까지 담아낸다. 비록 지난주 시즌 2를 끝으로 김재중의 ‘밀키 보이즈’는 막을 내렸지만, 이 독특한 K-팝 회귀물을 계속 찾아보게 되는 이유다.

‘THANK YOU SO MUCH’ - 사잔 올 스타즈(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그간 꽤 장난스러운 타이틀이 많았음을 생각해보면, 더불어 10년 만의 정규작이자 데뷔 50주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면, ‘THANK YOU SO MUCH’라는 문장이 던져주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공언한 적은 없으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잔 올 스타즈의 16번째 스튜디오 앨범. 제목에는 운을 띄웠건만, 러닝타임 동안엔 언제 그랬냐는 듯 특유의 해학과 유머, 관조를 동반해 무한한 음악의 바다를 언제나처럼 자유롭게 유영한다. 실로 오랜만의 작품인 만큼 전자음을 가미해 세련된 디스코 넘버를 노린 ‘恋のブギウギナイト’, ‘밴드’라는 포맷을 탈피해 그들만의 미니멀 사운드 구축을 시도한 ‘ごめんね母さん’ 등 시대에 부응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40여 년 전과 지금의 시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사잔의 팝 뮤직’이 가진 영속성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하지만, 이들의 음악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무력해진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시원스러운 로큰롤 사운드가 건재함을 알리는 ‘ジャンヌ・ダルクによろしく’, 쿠와타 케이스케의 애잔한 보컬이 쓸쓸함을 더하는 ‘桜、ひらり’, 라틴의 무드가 묻어나는 리드미컬함을 전면에 내세운 ‘歌えニッポンの空’와 같은 트랙만 봐도 동서양의 융합을 바탕으로 한 아이덴티티가 진부함 없이 펼쳐진다. 이 세 곡은 각각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대표팀을 응원하는 뜻으로, 노토반도 지진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자신이 태어난 치가사키를 비롯해 모든 이들의 고향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는 이유로 써 내려간 곡들이다. 이를 통해 예나 지금이나 향토성은 이들의 중심 정서임을, 그것이 사잔 올 스타즈가 ‘일본의 국민 밴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임을 재차 깨닫게 된다.
그런 애정이 여전하기에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도 건재하다. 퓨전 재즈의 골격을 가져와 세상을 망치는 괴물은 결국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史上最恐のモンスター’, 45년간 오간 아오야마 스튜디오 주변의 메이지 신궁 외원 재개발 소식을 듣고 조심스레 재고의 의견을 제시하는 ‘Relay~杜の詩’와 같은 곡들은 애정이 담긴 쿠와타 케이스케의 쓴소리들이다. 인트로에 ‘青い珊瑚礁’의 드라이브 감을 살짝 얹은 뉴웨이브풍의 곡조가 하라 유코의 보컬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風のタイムマシンにのって’, 데뷔 전 제작된 곡으로 가스펠과 소울, 블루스에 대한 깊은 헌정을 느끼게 하는 ‘悲しみはブギの彼方に’ 등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반세기 서사를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여기에 오자키 키요히코, 사카모토 큐 그리고 트와이스까지 소재로 끌어들여 선배 뮤지션들이 있기에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神様からの贈り物’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빛날 거장은, 이처럼 50년에 가까운 대중음악사를 아우르며 시대 초월의 메시지를 기어코 전달해내고야 만다. 그들의 커리어를 되돌아봄과 동시에 지속적인 창작력에 경의를 표하게 되며, 이들의 발걸음이 멈출 미래를 이르게도 두렵게 만드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경험해볼 것을 권하고 싶은 명작.
‘미키7’ - 에드워드 애슈턴
김복숭(작가): 봉준호 감독의 최신 영화인 ‘미키 17’. 아직 보지 않았다 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소설 ‘미키7’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두 제목처럼, 두 작품 속 이야기도 닮았지만 결코 똑같지는 않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공상 과학 소설 속 주인공 미키 반스. 그는 알고 있다. 지구에서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쓸모없는 역사 지식과 무거운 빚뿐이라는 걸. 그래서 그는 얼어붙은 행성 니플하임에서 ‘익스펜더블(소모품)’이 되는 데 동의한다. 이곳에서 그는 죽을 때마다 새로운 신체로 복제되어 찍혀 나온다. 불의의 사고, 예를 들면 그곳의 토종 생명체 ‘크리퍼’들과의 치명적인 조우로 인해 사망할 때마다, 기억은 데이터로 저장되어 이어진다. 이전의 미키들이 업로드한 기억들이 유지되기에, 그는 매번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모를지언정, 쌓여 가는 식민지 개척의 실패에 대한 증거는 확실히 쥐게 된다.
“어느 날 기지로 뒤늦게 돌아온 미키 7. 하지만 미키 8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며, 소설은 심오한 철학적,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소설의 강점은 살짝 비틀린 유머 감각이 얹힌, 경쾌하게 흘러가는 문체에 있다. 깊이 있는 세계관 구축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빠른 전개 덕분에 누구나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다.
봉 감독의 영화 ‘미키 17’은 소설의 설정을 가져왔으나 이야기는 확연히 다르게 뻗어나간다. 여러모로 감상자가 소설과 영화 모두를 확인해보고 싶어지게 하는 지점이다. 영화가 미키에게 어딘가 엉뚱한 면모를 부여하며 액션을 강조하며 약간의 과장을 더해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면, 원작은 그와 달리 재치 있는 미키의 성격을 중심으로 그의 내면 심리에 좀 더 집중했다. 등장인물들과 역할도 영화와 소설에서 크게 다르다. 결말 또한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결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도 살짝 남겨보며 이 책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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