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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원
사진 출처SM엔터테인먼트,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 산업의 트렌드를 담고 있는 K-팝과 음악사의 정수를 담고 있는 클래식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SM 엔터테인먼트 산하 클래식 및 재즈 음악 레이블 SM 클래식스(SM Classics)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은 2020년 MOU 체결을 바탕으로 꾸준히 두 장르를 오가는 크로스오버 음악들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 2월 14일, 15일에는 SM 클래식스와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이 함께한 ‘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은 K-팝과 클래식이 결합한 세계 최초의 ‘K-팝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2020년부터 제작해왔던 오케스트라 버전 SM 아티스트들의 곡들을 모아 이뤄낸 결실 같은 무대였다. 이번 공연 전반을 진행한 서울시향 장지희 주임에게 공연 비하인드 그리고 K-팝과 클래식의 만남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SM 클래식스와 서울시향은 2020년 첫 협업 곡 ‘빨간 맛(Red Flavor)’ 발매 이후로 꾸준히 함께 작업을 해왔어요. ‘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을 비롯해 SM 클래식스와 협업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장지희: SM 클래식스 측에서 “K-팝과 오케스트라를 컬래버레이션하고 싶은데, 국내에서 제일 잘하는 오케스트라와 했으면 좋겠다.”라고 먼저 제의를 해주셨어요. 저희 입장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될 것 같아 “그러면 해봅시다!”라고 했죠.(웃음) 처음부터 녹음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클래식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또 궁극적으로는 공연을 목표로 두고 시작했고요. 매년 조금씩 함께 협업 곡을 만들고 녹음하며 곡을 쌓아두고 있었고, 공연 일정을 작년에 미리 잡아뒀어요. 올해가 저희 재단 설립 20주년 및 창단 80주년이고, SM 엔터테인먼트는 창립 30주년인 해라서 서로에게 조금 더 의미 있는 공연이 되었어요. 사실 K-팝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예술의전당 같은 곳에서 클래식, 오케스트라 공연을 들어볼 기회도 많지 않으니까 그걸 실제로 보여드리는 것에 의의를 많이 두었죠. 오케스트라 실연을 들으며 가슴으로 직접 와닿는 웅장함과 감동에서 오는 클래식의 매력을 느껴 주셨으면하는 바람도 있었어요.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처럼 본래 클래식 샘플링을 사용한 곡들도 있지만, EXO의 ‘으르렁’에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동방신기의 ‘Rising Sun (순수)’에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이 결합한 것처럼 이번 공연에서 새롭게 클래식과 결합한 곡들이 정말 많아요. 클래식과 접목할 K-팝 곡들을 선택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장지희: 단순히 K-팝을 관현악 악보로 바꾸려고 하면 사실 악기만 바꾸면 돼요. 하지만 SM 클래식스에서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정말 K-팝 곡들을 클래식으로서 새롭게 만드는 것을 원했어요. ‘Feel My Rhythm’처럼 샘플링해서 K-팝 곡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Psycho’에서 갑자기 라흐마니노프를 접목시키는 것도 두 장르의 흐름을 매우 잘 알아야 가능해요. SM 클래식스에서는 어떤 곡이 클래식과 만났을 때 듣기 좋을지를 여러 방면으로 고려하고 선곡, 편곡하시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원래 ‘Feel My Rhythm’ 클래식 버전을 제일 좋아했는데, 이번 공연에서 실제로 들어보면서 제일 놀란 건 ‘Rising Sun (순수)’이에요. 원곡도 사운드가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이긴 한데, 원곡에서 되게 리듬감 있고 웅장하게 들리는 부분이 클래식 버전으로 들으면 되게 재밌게 들려요. 의미심장하고 멋있는 느낌에 악기들이 들어가면서 발랄함이 더해진 것 같아요.

ⓒ 서울시립교향악단

기존 클래식 공연과 달리 ‘SM CLASSICS LIVE 2025 with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을 준비하면서 공연 연출, 타깃 관객 등 많은 측면에서 차이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번 컬래버레이션 공연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장지희: 기존 클래식 팬분들보다는 K-팝 팬분들, 오히려 평소에 클래식을 접하지 않으셨던 분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고자 했어요. 원래 서울시향 공연의 관객층은 주로 30~40대에 몰려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는 10~30대까지 젊은 관객들이 정말 많았어요. 특히 K-팝 팬분들은 무대 효과, 시각적 효과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인 만큼 오케스트라 연주만 보는 것이 자칫 심심하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디어 아트 같은 볼거리를 더 가미했고요. 보통 클래식 공연은 긴 호흡으로 연주하는데, K-팝 곡은 3분 정도로 짧은 호흡으로 연주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에요. 보통 교향곡은 40~50분 정도 되고, 악장 별로 나뉘어 조금 잔잔하게 가거나 크게 터지는 기승전결이 있거든요. 반면 K-팝은 3분 안에 기승전결이 집약되어 있어서 리듬이나 호흡이 무척빠른 편이죠. SM 클래식스 공연 전주에 서울시향에서 말러 교향곡 2번을 녹음했는데, 연주자분들이 이번 공연의 악보를 받아 가시면서 “말러보다 어렵다.”고도 하셨어요.(웃음) 또 오케스트라에 가수랑 노래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서 걱정도 했는데, 레드벨벳 웬디 씨가 정말 준비를 잘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현장성이 중요한 클래식 녹음은 K-팝 녹음 과정과는 또 다를 것 같아요. SM 클래식스와의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장지희: 클래식은 보통 정식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가 다 같이 녹음을 해요. 지휘자님이 각 악기를 따로 지휘하는 게 아니라 전체의 밸런스를 맞춰 보시는 과정에 가까워요. SM 클래식스와의 초반 협업 곡인 ‘빨간 맛(Red Flavor)’과 ‘하루의 끝’도 그런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SM 클래식스와 협업하면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처음 경험하게 되어서 연주자 선생님들이 신기해하셨어요. 처음에는 녹음과 촬영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해 찍어야 하고, 촬영 감독님들도 정말 조용히 움직이셔야 했고, 앵글도 제한적인 편이라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후로는 녹음과 촬영을 분리해서 했고, 악기별로도 따로 녹음하기 시작했어요. 현악기 따로, 관악기 따로 한 다음 그걸 합쳐서 수정하는 거죠. 이번에 공연과 함께 클래식 버전 뮤직비디오가 여러 개 공개되기도 했는데 뮤직비디오 촬영은 지금까지 다 같은 감독님이 맡아주셨어요. 감독님이 악보도 보실 줄 알고, 악기도 다루셔서 총보를 보고 효율적인 동선 같은 것을 정리해서 와주셨어요. 합을 여러 번 맞춰서인지 이제는 예정 시간보다 빨리 끝나서 다들 기분 좋게 퇴근할 정도예요.(웃음)

ⓒ SM엔터테인먼트

K-팝 아티스트의 곡 중에서도 클래식을 샘플링하는 곡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요. 클래식과 K-팝의 컬래버레이션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장지희: 처음에 SM 클래식스와 협업 제의를 받았을 때 클래식 편곡하신 걸 들어보고 되게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 협업한 ‘빨간 맛 (Red Flavor)’ 클래식 버전이 히트를 쳐 여러 곳에서 들리는 걸 보면서, ‘이런 식으로도 클래식이 알려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SM 클래식스와의 협업으로 클래식이 조금 더 친근해지게 되고 장벽이 낮아졌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클래식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클래식이라고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오래된 음악만 있는 게 아니고, 지금도 새로운 클래식 곡을 작곡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클래식도 멈춰 있는 장르가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K-팝과 결합하는 것이 좋은 시도였죠. 

이번 K-팝과 클래식 결합 공연이 앞으로의 공연 기획이나 방향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장지희: K-팝과의 협업 공연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 것 같아요. K-팝과 클래식의 컬래버레이션 공연은 세계 최초이기도 하고, 모든 게 처음이었어요. SM 클래식스 담당자분이랑 공연 전날까지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나네요. 서울시향에서는 정기 클래식 공연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시도들과 대중 친화적인 공연들을 하고 있어요. 이번 공연은 끝이라기보다 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한 첫걸음, 새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의미 있었던 것은 저희의 연주가 음원으로 남는다는 거였어요. 서울시향이 음원을 많이 내는 단체는 아니에요. 녹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손이 되게 많이 가는데, SM 클래식스와 협업한 후 1년에 두 곡 정도는 계속 음원이 생기게 되어서 참 뿌듯하더라고요. K-팝과 클래식은 장르상 다르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음악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듣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죠. K-팝을 좋아하는 사람이 클래식에 빠질 수도 있고, 클래식을 즐기던 사람이 K-팝을 좋아할 수도 있어요. 이러한 교차점에서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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