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마법을 믿니?(Still believe in Magic?)” 콜드플레이가 물었다. 우리는 대답했다. “물론이죠(Yes I Do)!” 4월 16일부터 25일까지 6일 동안 고양종합운동장에 운집한 30만 관객은 꿈을 꾸었다. 화려한 꽃가루와 폭죽이 터지고 하트와 다이아몬드로 반짝이던 불빛의 황홀경 아래 수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인간 찬가를 노래했다. 미지의 세계를 그려봤던 환상의 순간이 별의 조각이 되어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하룻밤, 한 사람만의 꿈이 아니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은 여전히 생명의 불빛을 잃지 않고 있다. 2017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렸던 첫 내한 공연 이후 8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에 보답이라도 하듯, 밴드는 한국 공연 역사상 최장 기간, 최다 관객을 동원하여 지난 30여 년간 쌓아 올린 음악의 파노라마를 아름답게 펼쳐놓았다. 서로 다른 수십만의 기억이 벅찬 감동과 활력으로 꿈틀대던 무대를 설명한다. 이야기의 주제가 음악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K-팝 슈퍼스타의 깜짝 등장부터 한 명의 관객으로 참석한 국내외 유명 인사들, 지속 가능한 공연을 위한 노력이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다. 이만큼 국내에서 공통의 담론을 형성한 내한 공연이 있었던가. 떠올리기 쉽지 않다. 21세기 들어 2015년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와 2023년 브루노 마스 정도가 머리를 스쳐 가는 정도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은 거대 월드 투어의 불모지였다. 스탠딩석 포함 약 1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 2023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하며 국내에서 5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공연장은 축구 전용 구장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유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공연 수요에 대응하기에 현재 한국의 공연 인프라에는 분명 아쉬움이 있다. K-팝 그룹과 인기 가수들의 대규모 공연과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전 세계를 호령하며 숱한 화제를 낳는 팝스타들의 유명 투어가 한국을 거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총 184회 이상 공연에서 12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콜드플레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연을 펼치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다. 지난 2년간 역대 최초의 1,00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티켓 수입 20억 달러를 돌파하고, 경제학 용어까지 새로 고안하게 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Eras Tour’ 다음으로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다. 한동안 맥이 끊겼던 큰 공연의 개최 사실만으로도 이번 콜드플레이 공연은 한국 음악 팬들의 관심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콜드플레이를 통해 오랜만에 마주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경험은 굉장했다. 국내에서는 많은 이유로 생략되곤 하는 오프닝 공연에 팔레스타인과 칠레의 문화적 뿌리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가수 엘리아나와 세계 최정상 인기를 누리는 K-팝 걸그룹 트와이스가 등장했다. 3D 매핑, 고해상도의 프로젝션,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역동적인 시각 효과 등 현존하는 최첨단 기술이 공연장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콘페티와 행성을 본떠 만들어진 풍선,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불꽃놀이.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총체적 경험이 펼쳐졌다. 축제는 공연장에서만 열리지 않았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이 펼쳐졌던 2주일 내내 고양종합운동장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콜드플레이라는 별 주위를 공전하는 수십만의 서로 다른 행성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하나 된 마음으로 투어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지속 가능한 공연을 고민하는 밴드의 노력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콜드플레이는 지난 ‘A Head Full of Dreams’ 투어를 끝으로 친환경적인 방식이 아니라면 더 이상 공연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선포를 날렸다. 그리고 다년간의 연구 끝에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저배출 물류 시스템을 통해 항공 연료 등 이동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투어에 사용되는 전력을 이동식 재충전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로 해결하고 수익을 해양 정화 및 나무 심기 활동에 지원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실현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춤을 추며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키네틱 댄스 플로어와 파워 바이크를 즐길 수 있었다. 각자의 손목을 빛낸 자이로밴드는 100% 분해할 수 있는 식물성 소재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도시별 밴드 회수율을 고지하며 은근한 경쟁심을 부추기는 모습도 숱한 이야기를 낳았다. 콜드플레이는 지난 투어 대비 59%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달성하고 있다. 월드 투어의 규모가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에서도 콜드플레이의 공연처럼 환경을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투어는 없다. 흔히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Music Of The Spheres’ 월드 투어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음악의 힘, 이를 무대와 함께 유기적으로 제시하는 치밀한 구성 덕이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만난 네 친구들이 결성한 칼리지 밴드가 지구를 대표하여 우주로 전파를 쏘아 올리는 음악가들로 거듭난 지난 25년의 서사는 시대와 호흡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콜드플레이의 음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수더분한 매력으로 아름다움을 일깨운 ‘Parachutes’와 9.11 테러의 상흔으로부터 출발한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슈퍼스타의 무게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한 ‘X&Y’, 진일보한 소리 실험으로 인류세를 노래한 ‘Viva La Vida’의 2000년대 히트 퍼레이드는 콜드플레이의 든든한 자산이다. ‘Mylo Xyloto’로부터 미지의 세계로 눈을 돌리며 화합과 소통, 포용의 커다란 송가를 만들어온 오늘날의 경력은 “음악은 인류의 만국 공통어다.”라는 롱펠로의 명언을 긍정하게 만든다. 프라이드 플래그를 들고 힘차게 행진한 ‘People of the Pride’와 공연의 정점을 찍었던 ‘A Sky Full of Stars’, 대미를 장식한 ‘feelslikeimfallinginlove’의 잔잔한 감동은 투어가 아니었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지점이다.
콜드플레이는 이제 콜드플레이만의 밴드가 아니다. 재능과 야심으로 무장한 혁신의 예술가들이 거듭 새로운 자신을 증명하려 지구를 순회하는 가운데에, 콜드플레이는 그들의 재능으로 꽃피운 음악을 바탕으로 현세를 넘어 후손들에게도 유의미한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학교 친구들이 모여 30여 년 동안 화합하며 한 팀을 이루는 조화, 지속 가능한 공연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다짐,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존중받는 세계에 대한 비전이다. 내한 공연 도중 깜짝 등장한 방탄소년단 진과 블랙핑크 로제의 무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열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공개 후 은퇴를 발표한 밴드에는 ‘WE PRAY’에서 협업한 엘리아나, 티니, 버나 보이, 리틀 심즈처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내는 것은 물론, 트와이스, 한로로, 진, 로제처럼 현지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젊은 재능에 그들의 위상을 나누며 미래의 가능성을 그려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소박하다면 소박하지만 거대한 메시지다. 이를 지루한 설교 대신 직관적인 엔터테인먼트로 구성하여 잠시나마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게 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콜드플레이의 소명이다.
콜드플레이는 황혼기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밴드에게 전성기의 감각을 재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처럼 느껴진다. 산업의 정점에서 전개하는 환경보호에 대한 노력도 직접 체감하기 전까지는 의구심이 있었다. 근거 있는 냉정함은 공연장에 들어서고 나서도 쉬이 가시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따스한 공연 앞에서 차가운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선 외계인이다(Everyone Is An Alien Somewhere).”로 대표되는 음악의 감동이 절대 꺼지지 않을 불빛이 되어 힘차게 타올랐다. 한때 세상을 지배한 그들은 이미 세상을 바꾸었고, 다음 세상을 지배할 이들에게 힘껏 용기를 불어넣었다. 꼭 한 번 직접 목격할 가치가 있는 꿈, 결국에는 믿게 되는 마법.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계속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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