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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UNIVERSAL MUSIC JAPAN

공연 전에 있었던 기자 간담회를 마친 후 바삐 움직여 당도한 화정체육관. 한국의 잼즈(​​JAM'S)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 앞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는 동장군은 상대도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일본 밴드 사상 최초로 최연소 스타디움 투어 완수와 함께 일본 레코드 대상 2회 연속 수상, 스트리밍 1억 회 이상을 기록한 노래가 22곡에 달하는 등 그야말로 적수가 없는 압도적 인기를 구가 중인 미세스 그린 애플. 빈자리 없이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보며, 그들의 범국민적 인기가 일본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 수많은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 열풍 속에서도, 미세스 그린 애플은 끝내 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바다 건너 아쉬움의 목소리가 전해졌는지, 작년 12월에 열린 데뷔 10주년 기자 회견을 통해 첫 내한 공연을 발표하며 그 기다림에 화답했다. 음악 애호가와 관계자들이 함께 주목한, 그야말로 ‘끝판왕의 강림’이었다.

갑작스러운 활동 중단을 거쳐 페이즈 2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4년 가까이 된다. 앞선 기자 간담회에서 오모리 모토키는 밴드라는 틀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음악이나 엔터테인먼트를 목표로 페이즈 2를 시작했으며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리들이 되고 싶었던 그 모습에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과연 팀이 착실히 쌓아올린 ‘엔터테인먼트’는 실제 눈앞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그들의 등장이 가까워지자 그 기대감은 보다 구체화되는 듯했다.

©UNIVERSAL MUSIC JAPAN

시작 시각에 맞춰 심장박동을 연상케 하는 비트가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초록색 조명과 함께 팀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맞이했다. 이 환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오모리 모토키의 “Are you ready?”라는 한마디와 함께 시작된 첫 곡은 ‘Antenna’. 예상보다 큰 출력의 음향이 단숨에 온몸을 덮쳤다. 특히 기타의 디스토션은 이제껏 경험했던 공연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볼륨이었다. 그 속에서도 오모리 모토키의 목소리가 합주 사운드를 뚫고 선명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경이로웠다.

잠시 관객석을 조망해보니 3분의 2 이상이 응원봉을 지참하고 있었다. 한국 팬들을 위해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사전 판매를 한 덕분이었다. 중앙 통제로 이뤄지는 화려한 색채의 연출은 이와 같은 세심한 준비가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할 찰나에 밴드의 정체성을 강조하듯 기타리스트 와카이 히로토의 태핑이 장내를 달구었고, “가자!”라는 선명한 한국어가 현장감을 더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어퍼 튠 ‘Bitter Vacances’로 이어가는 와중에, 와카이 히로토가 척 베리를 연상케 하는 오리걸음 연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곧이어 짤막한 드럼 솔로와 기타 연주를 동반해 ‘Loneliness’로 바통을 넘기는 그들. 금속성의 차가움이 특징이었던 레코딩 음원과 달리, 하드록에 맞닿아 있는 편곡은 라이브만의 특별함과 의외성을 강하게 표출했다. 보랏빛 레이저와 함께 빨간색과 보라색을 오가는 응원봉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모습엔 최상의 연출을 보여주고자 고심한 흔적이 배어났다.

이렇게 최근 곡들을 연발한 후 후지사와 료카의 폭주하는 키보드와 함께 등장한 곡은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 ‘Ao’. 밴드의 정체성을 보다 강조했던 시기의 곡답게 기타 소리가 불을 뿜으며 무대를 주도했다. 오모리 모토키와 와카이 히로토가 마주 보며 연주하는 앙상블 또한 함성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잠깐의 MC 후 선보인 블랙 뮤직풍의 ‘Feeling’은 후지사와 료카의 키보드가 대활약하며 멜로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공연 전반에 있어 각 세션의 비중에 따라 다채로운 변주를 선보이는 유연함이 돋보였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곡과 곡 사이에 짧은 세션을 배치해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노래의 나열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구축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퍼커션을 중심으로 한 프롤로그로 시작된 ‘Magic’은 초반부의 정점이었다. 말 그대로 관객과 아티스트가 최상의 호흡을 통해 상상 속에 잠들어 있던 마법을 현실로 이끌어내고 있었다. 한순간도 눈을 떼기가 힘들 정도로, 현장을 찾은 이들을 도화지 삼아 자신들의 물감으로 채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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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이 히로토가 “대박!”이라고 외치고 난 후, 오모리 모토키가 뜸을 들여 익살스럽게 세로 눈썹을 그리자 다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술렁이기 시작했다. 바로 가장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고 할 만한 ‘Ao To Natsu’가 등장할 차례였다. 최고 데시벨의 떼창과 구호가 곡조와 맞물리는 순간, 왠지 모를 청량함과 아련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어 퓨전 재즈 기반의 연주에 이어 특유의 고난도 기타 리프가 등장을 알린 ‘Lilac’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너나 없이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공연은 명백히 후반부로 돌입. ‘Inferno’의 강렬함은 여느 여름밤의 록 페스티벌을 연상케 했고, 스마트폰의 백라이트가 공연장을 서서히 메워가는 장면을 연출한 ‘Soranji’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모인 모두를 축복하는 듯 들려왔다. 서정적인 후지사와 료카의 키보드 연주를 기반으로 “감정은 잊을 수 없는 거니까 / 확실한 Memorial”이라고 노래하며 서서히 작별을 예고하는 듯했던 ‘familie’,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을 재차 선언하는 ‘I'm invincible’까지. 남은 시간이 야속하리만큼 그들의 음악과 연주, 세계관에 더욱 몰입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한국 팬들에게 특히나 사랑받는 곡임을 멤버 스스로 언급하기도 했던 ‘Dance Hall’이 공연장을 거대한 댄스 플로어로 만들었고, 마치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Que Sera Sera’로 언젠간 다시 이어질 챕터의 첫 번째 장을 장대하게 덮었다. 앙코르가 따로 없어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팀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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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퍼포먼스는 단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는 멤버들의 뛰어난 역량과 완벽에 가까운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와카이 히로토와 후지사와 료카의 굳건한 위용은 오늘의 발견 중 하나였다. 아무리 프론트퍼슨이 중심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두 멤버의 연주 없이는 공연이 성립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관객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정 히트 곡에만 집중되는 일 없이, 라이브의 러닝타임 동안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오롯이 ‘지금’을 즐기는 모습엔 분명 팀도 감격했으리라 생각한다. 분명 한국의 잼즈들은 찰나의 행복을 있는 힘껏 누릴 줄 아는 이들이었다.

나 역시 공연을 보며 아무 잡생각 없이 오로지 ‘즐겁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간만에 이와 같은 순도 높은 기쁨을 마주하니, 몇 시간 전 기자 간담회에서 들었던 말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팀은 본인들이 지향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이와 같이 장대하게 보여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으며, 나 역시 이를 직접 목격하며 세계 무대를 상대로 그 정수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오모리 모토키는 한 인터뷰에서 ‘착각의 힘’을 언급한 바 있다. 분명 마냥 꿈만을 좇기엔 어려운 상황임을 부정하긴 어려울지라도, ‘혹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실마리라고 이야기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믿고 나아가는 와중에 겪는 시행착오가 모두 자신이며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팀은 삶과 음악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밴드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수백 개의 곡을 써 내려갔던 학창시절부터, 돌발성 난청을 진단받았음에도 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 활동을 지속 중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태껏 걸어온/나날이 사람을 불러/그것이 궤적이라고(「今日まで歩いてきた/日々を人は呼ぶ/それがね 軌跡だと」)”이라는 ‘Bokuno Koto’ 속 가사처럼, 이들의 엔터테인먼트는 결코 시들지 않을 인간의 가능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이와 같은 인류에 대한 믿음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던 이들의 내한 공연. 미세스 그린 애플의 음악이 세대와 시대 그리고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 이유를 차고 넘치게 증명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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