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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혜, 배동미(‘씨네 21’ 기자),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디자인MHTL
사진 출처F1 Academy X

F1 아카데미 (넷플릭스)
백승혜: 여성 레이싱 드라이버들의 육성을 위해 2023년 창설된 포뮬러 레이스 대회인 ‘F1 아카데미’. 동명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1 아카데미’는 2024 시즌의 생생한 레이스 현장과 이에 임하는 여성 드라이버 15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평소 경기에서 보여지는 트랙 아래 숨겨진, 드라이버들이 마주하는 모터 스포츠 세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넉넉치 않은 환경에서 레이싱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SNS, 방송 출연 등 인플루언서 활동을 병행하는 비앙카 부스타만테는 선수와 인플루언서 사이에서 잃어버린 균형을 찾기 위해 애쓴다. 2024 시즌 챔피언을 차지한 애비 풀링은 본인의 머치를 직접 제작하고 판매해서 번 수익을 보태며 드라이버로서의 삶을 이어나간다. “제가 하는 일은 다 레이싱 드라이버가 되기 위해서죠.” 비앙카 부스타만테의 말처럼, 차가운 현실 속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수들의 노력은 트랙 위를 달리고 싶다는 가장 뜨거운 열망을 보여준다.

승패를 가르는 기준은 단 하나다. 트랙 위에서 가장 빠른 여성이 승리한다. 페달을 1%만 덜 밟아도 뒤처질 수 있고, 1%만 더 밟아도 트랙을 이탈할 수 있다. 차량의 규격도, 궂은 날씨도, 폴 포지션*을 차지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챔피언의 자리를 노리는 15명의 드라이버들에게는 각자 달려야 할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행복한 순간을 선물하는 것일 수도, 혹은 부모의 기대와 헌신에 보답하는 것일 수도 있다. 훌륭한 랠리 드라이버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일 수도 있고, 지난 부상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가지고 모인 드라이버들은 트랙 위에서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한다. 장벽을 깨기 위해 달리는 여성들의 모습은 짜릿한 쾌감을 주는 동시에 이들의 치열한 레이스를 응원하게 만든다. 
*폴 포지션(Pole position): 레이스에서 출발선 맨 앞에 있는 운전자 및 차량의 위치를 의미하는 모터 스포츠 용어. 공식 레이스 전 진행되는 퀄리파잉에서 가장 좋은 랩 타임을 기록한 드라이버에게 주어진다.

‘F1 아카데미’의 출전 가능 기간이 2년으로 제한되어 있기에, 모든 선수들은 정해진 기간 안에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 매니징 디렉터 수지 볼프의 말에 따르면, 이는 상위 리그로의 진출을 도와 포뮬러 시리즈에서 여성의 자리를 점차 늘려 나가기 위한 독려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진만이 유일한 목표이자 방법인 드라이버들은 모든 것을 걸고 달린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매 레이스마다 새로운 도시를 함께 여행하고, 때로는 같은 고민을 나누는 평범한 동료이기도 하다. 트랙 위에서는 경쟁하면서도, 포디움에 서서 서로에게 샴페인을 뿌리며 웃고 다함께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들의 경쟁, 연대, 성장이 담긴 ‘F1 아카데미’에서 그들의 뜨거운 질주는 계속된다.

‘28년 후’
배동미(‘씨네 21’ 기자): 2003년 영화 ‘28일 후’는 좀비가 달린다는 참신한 설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후로 20년이 더 흐른 뒤 세계관을 이은 세번째 작품 ‘28년 후’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영국 섬이 고립된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국과 다른 나라와의 외교는 사실상 단절됐고, 그레이트 브리튼 섬에 들어간 사람들은 알아서 그곳에서 생존해야 한다. 유럽 순찰선들이 섬을 감시하며 구조대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이곳에도 사람들이 산다. 좀비에 물리지 않은 이들은 바이러스가 닿지 않은 군소 섬에 마을을 짓고 살아가며 이따금 바다 건너 ‘메인랜드’로 들어가 쓸만한 물건을 챙겨오곤 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당연히 먹통이다. 태어나 보고 들은 세상이 좀비로 가득한 메인랜드와 대피소 섬뿐인 12살 소년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뭔지도 모른다. ‘28년 후’는 우리가 아는 세상과 판이한 디스토피아다. 하지만 인간 아닌 존재의 관점에서 디스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산업이 멈추자 자연은 되살아나 세상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노루와 같은 산짐승은 떼로 뛰어다닌다. 

주인공 스파이크는 아버지 제이미(에런 테일러존슨)와 함께 메인랜드로 첫 원정을 떠나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한편 기어다니는 좀비 ‘슬로우 로우’를 해치운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잔혹하다. 달리는 좀비들이 떼로 몰려와 부자를 공격하고, 그중 거대한 몸집으로 상대를 찢어버리는 ‘알파’란 좀비는 가장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죽을 위기를 겪고 마을로 돌아온 스파이크는 그런데도 엄마 아일라(조디 코머)를 메인랜드로 데려가려 한다. 마을에 의사가 없어 병명도 모른 채 죽어가는 엄마를 메인랜드에 산다는 ‘미친 의사’ 켈슨(랄프 파인즈)에게 데려가기 위해서다. 소년은 꺼져가는 엄마의 생명에 다시 불을 붙이고 싶다.

좀비영화이자 소년의 성장담인 ‘28년 후’는 발달 속도를 늦춰야 하는 인류세의 풍경이기도 하다. 스파이크와 남은 이들이 버려진 물건들을 거두어 다시 사용하는 풍경은 과잉 생산을 멈추고 가진 것을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우리 처지와 닮았다. 대니 보일 감독과 알렉스 갈랜드 작가가 시리즈에 새롭게 새겨 넣고자 한 테마는 이처럼 자연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록 좀비일지라도 생명은 동일하게 생명이란 메시지가 영화 말미에 관객에게 던져지며 그 죽음의 무게는 본질적으로 평등하게 그려진다. 좀비와 대면할 때 사용되는 과잉된 음악 때문에 좀비를 사냥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닌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아드레날린을 촉진하는 몇몇 액션 신이 지나면 영화는 일관되게 생명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로 나아간다.

‘2005채연’, 흘러가 버린 20년 전의 우리를 기억하며
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2025년에 깨어난 2005년의 가수 채연이라는 컨셉으로, 지난 4월부터 약 2개월간 매우 드문드문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그때의 감성을 살리기 위함일까. 업로드 주기는 느리고 영상 내의 스토리라인도 잔잔하게 흘러간다. 길이도 10분에서 20분 남짓으로 꽤 길다. 하지만 이 영상에는 그편이 어울린다.

물론 이러한 컨셉에 우려되는 지점은 있다. 이 유튜브 채널 자체가 2005년부터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기관리를 잘하여 거의 나이를 먹지 않은 채연의 외모에 대한 찬양으로 흘러가기 쉬운 콘텐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BGM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처음으로 받은 광고가 ‘저속노화’ 정희원 교수와 컬래버한 ‘라이스플랜’ 햇반인 것마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전 자신을 그대로 구현한 분장을 한 채연이 거울을 보며 “똑같진 않잖아요. 솔직히 예전하고 100% 똑같진 않은데…. 되게 웃길 줄 알았거든요? 나 되게 웃길 줄 알았는데 딱 보자마자 뭔가 뭉클했어.”라면서 눈물을 흘릴 때. “꽃은 자기가 화려한 걸 알까요?”라는 PD의 질문에 “와아~!” 하고 진심으로 탄식하며 채연이 “와… 꽃… 진짜… 알까…? 모르겠죠…? 모르겠네….”라고 대답할 때. 우리는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노스탤지어의 싹이 움트는 걸 느낀다. 

2025년의, 아니 2005년의 채연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순간을 보여준다. 직접 집에서 싸고 자주색 삼단찬합에 담아온 김밥을 모두가 나누어 먹는 순간, 벚꽃이 흩날리는 광경을 보면서 즉흥 시를 읊는 순간, 키오스크라는 게 없던 시절 매표창구에서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표를 끊던 순간, 우리의 과거에 분명히 있었던 순간. 소위 ‘쿨찐’이라는 조롱 아래 우리가 하찮게 여기기 시작한 어떤 가치가 이 채널 속 영상에 담겨 있다. 채연은 분명히 얘기한다. “그때그때 자기의 감성을 적어야 기억에 남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야 사람들도 알아봐주고. 왜 그게 창피하지? 당연하게 다 쓰고 올리고 같이 얘기 나누고 했는데.” 언젠가 우리는 이런 ‘당연한 것’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게 아닐까. 가수 채연의 재발견과 더불어,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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