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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안테나 뮤직 X

안태규, 편성현, 권세혁, 고강훈의 4인조 보이밴드 드래곤포니는 2024년 EP ‘POP UP’을 발표하며 데뷔한 신인 그룹이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 함께 재학 중인 편성현, 권세혁, 고강훈의 악기 파트에 호원대학교 예술대학에 재학 중인 보컬 안태규가 합류하며 2022년부터 합을 맞춰온 밴드는 루시드폴, 박새별, 정재형, 페퍼톤스, 이진아, 윤석철 등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합류한 안테나의 첫 보이밴드로 낙점받았다. 데뷔 후 여타 신인 밴드들이 그러하듯 서울 홍익대학교 앞 인디 공연장과 국내 유수 페스티벌을 돌며 실력을 쌓은 밴드는 올해 3월 발표한 새 EP ‘Not Out’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드래곤포니에게서는 요동치는 미래보다 튼튼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근 몇 년간 젊은 음악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가장 주목받는 장르로 떠오른 밴드 주도의 록 음악이 시장 검증을 마치고 출시한 정식 모델이랄까. 신인 밴드에게서 데자뷔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우선 작명. 한국의 십이지 개념을 적용하여 멤버들의 나이에 해당하는 용띠와 말띠 동물로부터 밴드 이름을 지었는데, 1992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 친구들이 결성한 선배 밴드 잔나비가 겹쳐진다. 이름 있는 레이블 소속의 보이밴드임에도 언더그라운드 클럽 공연을 펼치며 실력을 닦은 서사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밴드 데이식스의 선례를 떠올리게 한다. 레이블의 밴드 프로젝트에 차출된 연습생들로 본래 악기 연주 경험이 없었던 데이식스와 달리, 드래곤포니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다뤄온 전공생들이다. 그 덕에 가장 탄탄한 부분이 음악이다. 기타 두 대에 베이스, 드럼의 정석적인 밴드 구성으로 풀어내는 록이다.

이런 음악을 장르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대신 ‘청춘계’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싶다. 팬데믹 이후 대중이 젊은 밴드에게 기대하는 풋풋함, 청량함, 순수함과 일말의 불안감을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묶어 대표 주제로 밀고 나가는 특정 경향을 통칭하기 위해 고안해낸 단어다. 1990년대 브릿팝과 2000년대 미국 팝 펑크, 한국 모던 록에 희미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스타일은 터치드, 유다빈밴드와 같은 실용음악과 출신 신인 밴드 전반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드래곤포니도 예외가 아니다. 웨트한 리버브 이펙터와 디스토션 기타의 교차를 통해 뚜렷한 기승전결을 확보하는 타이틀 곡 ‘Not Out’과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돋보이는 ‘NEVER’, 최근 밴드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모와 포스트 하드코어 장르를 가져와 어두운 무드를 강조하는 ‘꼬리를 먹는 뱀’ 등 준수한 완성도로 밴드 음악에 대한 기대를 충족한다. 하나의 뾰족한 음악으로 밀고 나가는 대신 다재다능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파괴적인 단계로 나아가진 않아도 페스티벌에서 소리치고 뛰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연주 파트와 보컬 모두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POP UP’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청춘계’ 밴드들은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돌거나 가요제,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문화재단의 지원 행사를 돌며 불확실한 내일을 필사적으로 그려야 했다.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이나 ‘슈퍼밴드’ 같은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도 출구 중 하나였다. 더는 그럴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음악 팬들은 전국 음악 페스티벌과 각종 공연장을 꽉꽉 채우고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레이블 소속의 신인 밴드는 안정적인 연습 환경에서 차기작을 구상하며 주어진 일정을 소화한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부산국제록페스티벌과 같은 국내 대표 페스티벌 라인업에 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며,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출연도 낯설지 않다. 롤라팔루자와 같은 유명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 서는 것도 꿈이 아니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느껴졌던 팬데믹의 블랙홀 한가운데에서 생성된 새로운 음악의 우주는 록 밴드의 공간이다. 이 해의 가장 큰 히트 곡이 윤하의 모던 록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에서 록은 가장 젊고 주목받는 음악 장르다. 더는 여섯 줄과 네 줄의 울림, 두 손에 쥔 스틱과 전선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스스로 찾아 듣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에 강한 이끌림을 느낀 비대면 시대의 팬들이 소셜 미디어 소통을 통해 서로 다른 궤도를 돌고 있던 외딴 취향의 서로를 연결하며 공명한 결과다. 이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실황과 뜨거운 축제의 현장을 재발굴하며 음악가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고 있다. 

2025년 한국 밴드 씬은 왁자지껄하다. 각자 다른 배경에서 등장한 밴드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각양각색의 메시지로 차별화된 매력을 개척하고 있다. 우선 2010년대 중후반 등장한 인디 레이블 소속 밴드들이 있다. 이미 인디 씬에서 슈퍼스타였던 새소년은 페스티벌을 돌며 황소윤이라는 슈퍼스타를 각인했고, 실리카겔은 콘셉추얼 음악과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열성 팬을 끌어모았다.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 아이돌 제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wave to earth(웨이브 투 어스)의 활약은 한국 밴드 음악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자신감을 일깨웠다. 콜드플레이 오프닝 공연을 장식한 인디 아이돌 한로로의 성공은 또 하나의 사건이다. 

여기에 미디어의 참여가 더해졌다.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우승을 차지한 이승윤과 같은 프로그램 참여로 이름을 알린 너드커넥션, ‘슈퍼밴드’ 출신으로 미스틱스토리에 합류한 밴드 루시와 3위를 차지한 혼성 밴드 카디가 방송의 화제를 밴드 씬에 끌고 들어오며 더욱 볼륨이 커졌다. 방송사 Mnet이 개최한 밴드 경연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은 유다빈밴드, 터치드, 설, 라쿠나를 씬에 안착시켰다. 

주류 시장도 적극적이다. 데이식스의 대성공으로부터 탄력을 받은 JYP의 밴드 프로젝트는 하드코어와 헤비니스 계열 음악을 실험하는 보이밴드 Xdinary Heroes(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데뷔시켰다. K-팝 진영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도 록 음악에 몸을 맡긴다. 일찍이 2020년대 팝 펑크 리바이벌을 감지하며 밴드 음악을 시도한 싱어송라이터 WOODZ(우즈)는 2025년 최고의 히트 곡이자 가파른 차트 역주행을 기록한 노래 ‘Drowning’의 주인공이다. 밴드 음악 열풍의 전초였던 J-팝 유행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걸밴드 QWER은 세 번의 미니 앨범을 발표하며 2024년 유튜브뮤직 통계상 한국 최고의 히트 곡 ‘고민중독’을 내놓았다. NCT의 메인 보컬 도영은 지난해 ‘청춘의 포말’에 이어 두 번째 정규작 ‘Soar’에서 다시 한번 ‘청춘계’ 밴드 공식을 따르며 성공적인 솔로 경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흐름을 타는 이들은 젊은 밴드들만이 아니다. ‘청춘계’의 대선배격 밴드 페퍼톤스와 소란, ‘보편적인 노래’를 불러온 브로콜리 너마저, 짜릿하고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이며 최근 철거를 앞둔 아파트에서 잊지 못할 명장면을 선사한 밴드 솔루션스 등 베테랑 밴드의 활약이 이어진다.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룹사운드 잔나비, 공연 개최만으로도 숱한 화제를 낳는 검정치마는 이미 상징적인 존재다. 각 팀의 인지도와 무관하게 밴드 음악을 대하는 음악 팬들의 시선은 전에 없이 호의적이다. 좋아하는 팀 무대만 기다리던 과거와 달리 요즘 음악 페스티벌을 찾는 팬들은 장르의 편견 없이 등장하는 밴드의 무대를 성의 있게 관람하고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응축된 에너지의 대폭발로부터 밴드 음악은 나날이 밝은 빛을 내뿜고 있다. 드래곤포니와 같은 ‘청춘계’의 등장은 예측 불가하게 전개되던 밴드 유행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을 상징한다. 거부감 없이 입문하고 오래 즐길 수 있는, 더불어 보기에도 좋은 '청춘계' 밴드가 K-팝이나 차트 상위권에 위치한 발라드 외 음악을 찾는 팬들의 수요를 맞추고 있다. 여기에는 다름은 있으나 틀림은 없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음악을 내놓든 간에 두 명 이상이 모여 각자의 음악을 하나로 연결하고, 수많은 이들 앞에 선보이며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음악의 갈망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 '안정적인 밴드 음악'이 어느 순간 심심하게 느껴진대도 괜찮다. 한국의 밴드 음악, 더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의 우주는 아주 넓으니까 말이다. 그 망망대해에 드래곤포니가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다. ‘Not Out’은 젊은 밴드의 의지다. “우린 이제 시작이야. 이젠 더 미쳐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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