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이 리메이크된다면 누가 주인공이 될까? 텔레노벨라에서 더 이상 사랑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주제를 다룰 수 있을까? KATSEYE의 두 번째 EP ‘BEAUTIFUL CHAOS’가 던지는 질문들이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아프리카에서 전학 온 케이디가 학교의 여왕 레지나의 헤어진 남자친구 애런을 좋아하게 되면서, 사랑과 학교 내 권력을 둘러싼 대결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또한 중남미 지역의 일일 연속극인 텔레노벨라에는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주인공과 여성 악역의 사랑을 둘러싼 경쟁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BEAUTIFUL CHAOS’의 수록곡 ‘Mean Girls’의 소녀들은 사랑을 위해 싸우지 않고, 선공개 곡 ‘Gabriela’의 뮤직비디오에서 KATSEYE가 그리는 텔레노벨라에는 남성이 없다.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사랑이 빠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승진, 권력, 정점, 성취에 대한 야망. ‘Gabriela’의 뮤직비디오가 건드리는 여성들의 또 다른 욕망들이다. 라틴풍의 멜로디 라인, 과장되게 블로우 드라이한 KATSEYE 멤버들의 헤어스타일, 화려한 장신구, 호피와 장미 모티프, 과격한 장면 연출은 텔레노벨라의 문법을 전면적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Gabriela’의 뮤직비디오는 이 장르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요소들을 비틀며 혼돈을 만들어낸다. ‘가브리엘라(Gabriela)’ 기업의 CEO로 등장하는 제시카 알바는 “그래도 너희 중 한 명은 내 뒤를 이어 가브리엘라 기업의 차기 CEO가 되어야 한다. 그럼, 누가 다음 가브리엘라가 될까?”라고 말하며 자신이 차고 있던 장미 목걸이를 던진다. 이에 자신이 차기 CEO라 주장하던 멤버들은 서로 물건을 던지고, 공격하며, 때론 다치면서까지 목걸이를 쟁취하기 위해 혈투를 불사한다.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쟁취해내는 권력의 상징. ‘Gabriela’의 가사 속 청자(Gabriela)는 “모든 시선이 너를 향하고 있어”, “넌 날 궁금하게 해”, “넌 원하는 다른 사람 누구든 가질 수 있었잖아”라는 말을 듣는 한편, 화자는 연인의 사랑을 믿으면서도 ‘Gabriela’처럼 매력적인 누군가가 나타날 때마다 견제해야 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Gabriela’의 티저와 함께 공개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멤버들은 자신이 바로 그 ‘Gabriela’라고 주장하며 다툰다. ‘Gabriela’의 뮤직비디오는 연인을 빼앗는 관능적인 여성의 대명사를,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20년 넘게 유지해온 기업 CEO의 상징이자 여성의 유능함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그 의미를 전복시킨다. “최고의 가브리엘라가 승리하길.” 뮤직비디오 속 제시카 알바의 대사처럼, 사랑이 소거된 텔레노벨라에서 가브리엘라는 모든 싸움에서 이기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최후의 승리자다.

KATSEYE 멤버들의 혈투를 비추던 카메라는 승계권을 둘러싼 그들의 다툼이 세트장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트장을 벗어나도,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 여성들은 경쟁하고 갈등하기를 요구받는다. “Spill that tea!” 뮤직비디오에서 TV 쇼 관객들과 MC로 등장하는 모델 수주는 멤버들에게 ‘캣파이트(katfight)’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으라 외친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보란 듯이 서로 싸우던 멤버들은 어느 순간 다 함께 입에서 장미 꽃잎을 쏟아낸다. 멤버들과의 다툼으로 코피를 흘린 메간의 코를 덮은 반창고 위로 장미가 피어나듯, 여성은 장미 목걸이와도 같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여성들과의 갈등을 요구받기도 한다. 그러나 KATSEYE 멤버들은 다 함께 춤을 추면서 사람들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떨어지는 꽃을 맞으며 다 함께 춤을 추는 그들 모두는 사실 다 함께 가브리엘라가 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서로 싸웠지만, 결국은 다 함께 쟁취해낸 것이다. TV 쇼의 마지막, 마농은 앞에서 자신들의 모든 걸 지켜보고 싸움을 집요하게 좇던 카메라를 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여성은 ‘Gabriela’의 가사 속 대상처럼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그러나 KATSEYE 멤버들은 이를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이자, 최후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성취해낸 연대의 상징으로 표현해낸다. 전통적인 텔레노벨라는 사랑과 배신, 복수, 여성 영웅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고 사회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르다. KATSEYE는 이를 여성이 영웅이 되지 않아도,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혹은 사회문제를 언급하지 않아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재창조한다.
같은 앨범의 수록곡인 ‘Mean Girls’가 서로 다른 여성들을 무작위로 나열하는 것은 그래서 필연적이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주인공 케이디와 레지나의 갈등이 사랑과 학교 내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과 달리, KATSEYE가 주인공이 된 ‘Mean Girls’에서는 사랑도, 권력도 중요하지 않다. 다인종, 다문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KATSEYE 팀의 특성처럼, 이들의 ‘Mean Girls’는 서로 다른 여성들을 무작위로 나열한다. 다정한 소녀들, 꿈꾸는 소녀들, 자존감 있고 상처받아도 용서할 줄 아는 여왕 같은 소녀들, 자유로운 소녀들, 심술궂은 소녀들, 매력적인 소녀들, 섹시한 소녀들, 술을 판매하고 서빙하는 소녀들,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소녀들, 트랜스젠더 소녀들과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들까지. 그리고 이 소녀들은 “불안함은 누구에게나 엉망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를 용서하고, “네가 결국 혼자가 되진 않길 바라며” 사랑을 보낸다. 같은 앨범의 선공개 곡 ‘Gnarly’에서 KATSEYE가 “버블티”, “테슬라”, “프라이드 치킨”처럼 자신이 좋아하거나 스스로를 표현할 때 사용하고 싶은 단어를 나열했다면, ‘Mean Girls’가 다양한 소녀들을 언급하는 방식은 자신이 그 호명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그 단어가 자신을 표현하는 아주 다른 방식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여성들 혹은 특정한 범주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들을 포용하려는 흔적이기도 하다. 2004년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백인 10대 소녀들의 사랑과 대결을 통해 여성들의 정신적 성장과 화해를 다뤘다면, 2025년 다양한 인종과 배경, 정체성을 지닌 KATSEYE의 ‘Mean Girls’는 그들의 팀이 그러하듯, 다양한 소녀들의 존재들을 가시화함으로써 더 많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성공을 쟁취하는 여성들, 연대하고 포용하는 여성들은 단순히 콘텐츠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실의 KATSEYE 그 자체이기도 하다. ‘Gabriela’ 뮤직비디오 촬영 비하인드에서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제시카 알바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 열심히 했을 거잖아요. 그 수많은 노력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죠. 어릴 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잖아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고, 여러분은 잘하고 있어요. 계속 그렇게 하면 언젠가 보상이 있을 거예요. 누구도 당신을 정해진 틀에 가두도록 두지 마세요.” 뮤직비디오에서 가브리엘라 기업의 CEO로 등장한 그녀는, 실제로도 성공한 할리우드 배우이자 모델, 거대 기업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그녀의 말은 KATSEYE에게 더 오래, 더 많은 일을 겪어온 여성 선배의 조언이자 지지일 것이다. 열심히 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계속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이는 소피아가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번 앨범 ‘BEAUTIFUL CHAOS’가 보여주고자 한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절대 방 안에서 혼자 울 필요가 없어요. 절대로요. 항상 우리를 지지해줄 누군가는 곁에 있을 테니까요. 그게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에요.”
KATSEYE가 ‘Gabriela’로 표현한 텔레노벨라와 ‘Mean Girls’로 가져온 하이틴 장르는 각각 중남미와 북미를 상징하는 엔터테인먼트 장르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텔레노벨라와 하이틴 장르도 점차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과 그들의 연대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오랫동안 여성들의 욕망은 사랑의 쟁취에 한정된 것처럼 묘사되기도 했다. 또한 여성들은 주인공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경쟁하고, 쟁취하고, 때론 상처 입기를 요구받았다. 하지만 2025년, KATSEYE는 ‘Gnarly’를 통해 무대 위에서 과감한 퍼포먼스와 함께 자기애를 표현하고, ‘Gameboy’에서 남성과의 사랑을 게임에 비유하며 상대방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이제 여성들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방법은 사랑을 이루는 것이 아닌, ‘Gabriela’에서처럼 싸워서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다 함께,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마침내 ‘Mean Girls’에서 KATSEYE가 노래하듯 다양한 여성들이 서로를 용서하며 화해하며 자신의 다름을 보여줄 수 있다. 이처럼 ‘BEAUTIFUL CHAOS’는 여성들을 둘러싼 문법들을 비트는 혼돈의 세계가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KATSEYE가 보여주는, 오롯이 여성들을 위한 아름다운 혼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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