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들의침묵’ (뮤플리)
예시연: 중, 고등학생에게 공동체 의식과 규율을 가르치는 한국의 문화인 수련회에서 착안한 웹 예능 ‘돌들의침묵’. 그러나 제목과 달리 ‘돌들의침묵’은 정작 침묵이라는 키워드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엄격한 교관의 눈을 피해 장기자랑 연습을 성공해야 하는 아이돌들은 비명을 지르는 것은 물론, 역으로 교관을 놀라게 하거나 협상을 제안하며 오히려 교관이 웃음을 참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아낸다. KATSEYE가 출연한 ‘돌들의침묵’에서도 교관은 어김없이 빨간 캡모자와 PK 티셔츠, 딱딱한 명령조의 대사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교관 캐릭터를 소환한다. 하지만 한국인 멤버 윤채를 제외하고 한국 수련회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없는 다국적 멤버들은 그에게 전혀 위압감을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게 “누구세요?”라고 되묻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KATSEYE 멤버들은 학생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해 주어진 시간에 취침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수련회 문화에 의구심을 품지만, 이내 ‘돌들의침묵’ 속 세계관에 몰입해 교관과 유머러스한 신경전을 펼친다. 메간은 새로운 교관인 척 능청스럽게 연기하고, 교관이 윤채에게 벌칙을 주려고 하자 “안 돼요, 우리 막내예요!”라며 저지하는 소피아와 라라의 모습은 그들의 견고한 팀워크를 보여준다. (물론 두 사람은 윤채의 벌칙이 귀여운 수면 모자 착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내 안도했다.) 계속되는 교관의 방해에 KATSEYE는 “우리랑 같이 춤추고 싶으신가 봐!”라는 자체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 교관은 한국어로 “하나, 둘, 셋!” 카운트를 세며 기대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멤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들의 노래 ‘Gnarly’의 한 소절을 부르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에서 한국식 교복을 입은 채 놀이공원을 누비고, 음식을 공유하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던 KATSEYE 멤버들은 어느새 ‘돌들의침묵’에서 문화적 차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예능적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그들의 성격적인 매력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출연한 ‘돌들의침묵’ 회차는 나흘 만에 조회수 200만 뷰를 돌파했다. 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교관 포획 작전”에 성공한 KATSEYE 멤버들이 외친 한 마디는 마치 한국 예능 콘텐츠 생태계에 성공적으로 발을 딛은 이들의 포부처럼 들리기도 한다. “Who we are, KATSEYE!”

‘씨너스: 죄인들’
배동미(‘씨네 21’ 기자): 노예제가 폐지됐으나 ‘짐 크로우 법’이란 인종차별적 법안이 존재하는 1932년 미시시피주 델타. 이 지역은 흑과 백으로 쪼개져 있다. 거리 한쪽에는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찾는 상점들이, 다른 한쪽에는 백인들이 찾는 주점과 카페가 존재한다. 시카고에서 알 카포네 갱과 활약하며 넓은 세상을 경험한 스모크(마이클 B. 조던)와 스택(마이클 B. 조던) 쌍둥이 형제는 고향 델타로 돌아와 자신들과 같은 블랙 커뮤니티를 위한 주점을 열고자 한다. 낮 동안 목화 농장, 해바라기 농장에서 고되게 일하고 아주 적은 돈이나 ‘농장 화폐’라 불리는 가짜 돈만 손에 쥐는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형제는 꿈꾼다. 델타에서 쉽게 즐길 수 없는 아일랜드 맥주와 이탈리아 와인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쌍둥이들은 천부적인 음악성의 사촌동생 새미(마일스 케이턴)를 무대에 세워 사람들을 위해 공연하게 한다.
신비롭게도 사촌 새미의 깊은 목소리는 노예였던 그들의 조상과 후손인 래퍼들의 영혼을 주점으로 불러들인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시시피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라이언 쿠글러 김독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과거와 미래가 뒤얽히는 환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람들의 고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새미의 블루스는 어둠의 존재까지 끌어들인다. 뱀파이어가 된 KKK단 농장주들은 새미의 음악을 듣고 주크 주점으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들을 물리치려면 태양이 뜨고 밝은 낮은 되어야 한다. 주인공 스모크와 스택 형제, 새미는 무사히 하룻밤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씨너스: 죄인들’은 영화 ‘겟 아웃’, ‘어스’ 등을 이을 걸출한 블랙 호러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몸으로 감각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섞인 공포를 시네마틱하게 주조한다. KKK단 뱀파이어들은 쌍둥이 형제에게 입장을 허락해달라고 집요하게 요청하고 주점 주변을 맴돌면서 주인공 캐릭터들과 관객을 불쾌하게 만든다. ‘씨너스: 죄인들’의 공포는 이유없는 끈질긴 시선을 받을 때 느끼는 불편함과 언제든 침입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촉발된다. ‘블랙 팬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등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당사자로서의 정서를 녹여내 ‘씨너스: 죄인들’의 시나리오를 썼다. 최근 많은 영화들이 원작 코믹스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순수 창작된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이를 바탕으로 완성된 영화는 올해 4월 북미에서 개봉해 2억 달러(약 2700억원)의 매출을 내며 크게 흥행했다. 이는 지난 8년 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들 중 최고 기록이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이후 오랜 만의 일이다. 전 세계 영화 산업 내 불확실성이 커지고 누구도 박스오피스 결과를 긍정적으로 예상하지 못하는 시대에 ‘씨너스: 죄인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냈다. 영화의 시대는 저물었고 있다는 공포에 맞서면서, 아침이 오길 기다리면서.

TURNSTILE "NEVER ENOUGH" LIVE AT THE WYMAN PARK DELL - BALTIMORE, MD (FULL SHOW)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턴스타일하다'. 2024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첫날 마지막 공연을 목격한 음악 마니아들은 이 말의 뜻을 안다. 과격한 모싱으로 동지애를 다진 현장의 팬들은 본능적으로 하드코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러 무대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음악을 향한 벅찬 사랑 앞에 무대와 관객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수없이 올려다보기만 했던 메인 스테이지 무대에 오른 우리는 악수하고, 껴안고, 소리쳤다. 그 어떤 촬영과 취재보다도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이다.
하드코어 펑크(Punk)의 커뮤니티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또한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대중적으로 전하고 있는 볼티모어 출신 5인조 밴드 턴스타일이 또 하나의 감동적인 순간을 예고하고 있다. 6월 6일 발표 예정인 네번째 정규 앨범 'Never Enough'다. 선공개한 네 곡이 모두 심상치 않은데 뮤직비디오마저 아름답다. 멤버 브랜든 예이츠와 팻 맥크로리가 메가폰을 잡은 앨범은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공통의 가치는 '같이'다. 각자 다른 대자연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Never Enough', 서로 다른 가치와 배경을 가진 이들이 구령에 맞춰 하드코어 공연에 참석하는 'Seein' Stars / Birds', 볼티모어 시내를 차로 주행하는 'Look Out For Me'의 영상 모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 새들은 혼자 날 수 없어(THESE BIRDS NOT MEANT TO FLY ALONE)'라는 힘찬 외침을 들으면 벌써 눈물이 난다.
1990년대 VHS 화질로 찍어 올린 와이만 파크 델(WYMAN PARK DELL)에서의 실황은 음악 안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는 가치의 보존이다. 밴드는 이 공연을 통해 3만 5천 달러 이상 기금을 조성하여 고향 볼티모어의 노숙자들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 단체에 기부했다. 더 많이 '턴스타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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