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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인스타그램

날이 뜨거워졌다. 완연한 여름이다. 음악 페스티벌의 시즌이다. 프리마베라 사운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후지록페스티벌, 섬머소닉 등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대형 음악 축제가 열리는 가운데에 한국도 본격적으로 축제 기간에 돌입했다. 6월 개최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과 아시안 팝 페스티벌을 필두로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전주얼티밋뮤직 페스티벌,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렛츠락페스티벌,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음악 팬들의 기대를 끌어올리고 있다. 여름을 지나 열리는 페스티벌까지 모두 다루자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바야흐로 음악 페스티벌의 전성기다. 지난해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는 사흘간 15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찾아 인산인해를 이뤘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는 지난해 3일 동안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2012년부터 올림픽공원에 자리를 잡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은 매년 문전성시를 이룬다. 2004년부터 열린 자라섬재즈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 개최된 워터밤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며 전국 투어를 개최하는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으며, K-팝과 힙합, 일렉트로닉 음악가들을 섭외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행사로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이제는 페스티벌 티켓이 매진된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불만 없이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축제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소셜 미디어에는 수많은 페스티벌 후기 콘텐츠가 등장하고, 한 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음악 팬들은 ‘페스티벌 룩’과 ‘페스티벌 매너’를 검색하며 멋진 축제를 기대한다. 주변 상권은 시즌마다 북적인다. 숙소라도 잡을라치면 1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놀라운 반전이다. 2019년의 음악 페스티벌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는 ‘위기’였다. 세계적으로는 록 페스티벌의 상징과도 같았던 우드스톡 50주년 기념 페스티벌 개최가 무산됐다. 한국에서는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부터 역사를 이어온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함께 록 페스티벌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이 2018년을 끝으로 사실상 종료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2019년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성장했지만, 이는 대형 록 페스티벌의 부재에 힘입어 관객이 쏠린 탓이 컸다. 록 페스티벌만 내림세가 아니었다. 같은 해 UMF 코리아의 운영 미숙은 한국 페스티벌 역사에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되었다. 2019년 처음으로 유료 공연 전환을 선언한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섭외 과정에서 사기 피해를 보며 난항을 겪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진공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음악 팬들은 격리가 끝나자마자 세계적인 가수들의 거대 월드 투어와 유명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지난해 기준 2,158억 달러 규모 시장을 자랑하는 글로벌 음악 페스티벌 시장은 2031년까지 연평균 24% 가까운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페스티벌 시장도 호황기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발간한 ‘2024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음악 장르의 티켓 판매량은 전년 대비 공연 건수, 공연 회차, 티켓 예매 수, 티켓 판매액 모든 부분에서 성장세를 보였고, 그 가운데 ‘축제’의 경우 전년 대비 25% 성장한 60만 회의 티켓 예매 수와 35% 증가한 510억 원 이상을 기록하며 수요와 공급 모두 증가했음을 입증했다.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출발해 대학 공연장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렸던 쌈지사운드페스티벌, 인천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동두천 락 페스티벌이 열린 1999년 이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페스티벌의 우선적인 목표는 생존이었다. 안전사고 없이 수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용지 확보,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스폰서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뮤지션 섭외는 더욱 난항을 겪었다. 제아무리 쾌적한 관람 시설을 갖추고 시원한 계절에 맞춰 페스티벌을 열어도 음악 팬을 설레게 하는 대형 아티스트가 없다면 참가할 이유가 없다. 오래도록 한국은 내한 공연의 불모지였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경우 페스티벌 개최 시기에 맞춰 아시아 투어를 돌거나, 일본에서 공연을 열거나, 후지록 혹은 섬머소닉 페스티벌에 참여하지 않는 한 작은 시장인 한국 방문을 꺼린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 페스티벌 업계는 뚜렷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양적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로 개최 20주년을 맞는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24년 만에 새 앨범 ‘More’를 발표하며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무대를 장식한 펄프가 헤드라이너를 맡는다. 펄프의 첫 내한 공연이다. 금요일 헤드라이너는 12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갖는 일본 밴드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일요일 헤드라이너는 2016년 이후 다시 한국을 찾는 얼터너티브 뮤지션 벡이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전성기 멤버 3인을 포함한 스매싱 펌킨스와 베비메탈로 맞불을 놨다. 국내 음악가들만 등장하던 렛츠락페스티벌에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가 출연한다는 소식도 화제였다. 같은 시기 일본을 찾는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페스티벌이 아닌 내한 공연의 형식으로 한국을 찾으며 팬들의 행복한 고민이 늘어나고 있다.

양적 성장과 더불어 최근 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이야기는 질적 성장의 필요다. 현재 국내 대형 록 페스티벌은 현재 관람객들을 쾌적하게 수용하기에는 부족하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송도달빛축제공원은 한때 고요한 갈대밭이었으나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오후 10시 이후 소음 민원으로 인해 공연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지는 불볕더위와 기상천외한 사건·사고에 그 무엇보다도 안전 관리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페스티벌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록 페스티벌의 성격과 달리 오늘날 현장을 찾는 팬들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대중적 문화로 자리 잡은 축제를 기대한다.

모범적인 대안이 거듭 등장하고 있다. 2018년부터 강원도 철원 고석정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확고한 개성을 확보했다. 비무장지대 인근 남북 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도시에서 평화와 화합을 강조하고 지역 군민과의 긴밀한 협업을 진행하는 이 페스티벌은 한국 인디 밴드와 더불어 섹스 피스톨스의 글렌 매틀록,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과 같은 거장들과 함께 윤수일, 사랑과 평화, 최백호, 한영애, 김현철 등 한국 가요의 굵직한 이름을 소환하여 화합의 장을 펼친다. 인천 파라다이스시티호텔 일대에서 지난해부터 열리는 아시안 팝 페스티벌도 눈도장을 찍었다. 일본,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의 주목받는 음악가들과 한국 인디 팀으로 채우는 독특한 라인업, 호텔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한 쾌적한 관람이 강점이다. 

다년간의 비결과 수입 증가, 안정적인 운영진 확보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페스티벌 씬은 생존을 넘어 발전을 내다볼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한데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특별한 무대를 함께 바라보는 그 순간의 쾌감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페스티벌만의 강점이다. 팬데믹 이후 현장에서 만난 음악 팬들은 좋아하는 음악가와 장르에 국한되어 편을 가르는 대신, 모든 무대에 박수를 보내며 흥겹게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축제의 여름이 올해를 넘어 지속가능한 형태로 음악의 매력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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