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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강일권(음악평론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이태리 파브리 유튜브

‘이태리 파브리 Italy Fabri’ (유튜브)
윤해인: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이탈리아인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한국인에게 차가운 국밥과 같다는 말이 있다. 온갖 토핑을 올리는 한국 스타일의 피자 또한 이탈리아인이 이해할 수 없는 자국 음식의 변형 중 하나다. “어떤 피자는 이탈리아인에게는 충격을 줄 수도 있는 그런 피자였거든요.”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이탈리아 출신의 셰프 파브리(본명 파브리치오 페라리)는 5년 전 한국식 피자를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런 그가 2025년 ‘이탈리안 친구에게 까르보네 피자를 먹여봤습니다 (feat. 손절각)’라는 클릭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까르보나라를 올린 피자, 청양 불고기 피자 위에 감자칩 토핑, 고구마 무스, 치즈 바이트 추가 그리고 샐러드 피자와 꿀 소스까지. 한국 생활을 한 지 2년 반이 된 마시모 교수와 발렌티나 교수는 눈앞에 있는 게 피자라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하거나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이라이트는 샐러드 피자 옆에 ‘꿀’이 등장한 순간. 식사 개념에 가까운 피자에 단맛이 추가되는 건 이탈리아인 입장에서 납득 못할 조합이다. 같은 이탈리아인을 괴롭힐(?) 생각에 신났던 파브리마저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라며, 어느새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자아를 앞세우며 웃음을 준다. 

물론 파브리와 그의 이탈리아 친구들은 이 익숙하지만 낯선 음식을 새로운 문화로서 받아들이고 즐긴다. 생각보다 까르보나라와 피자의 조합이 괜찮다면서 편견 없는 시식평을 전하고, ‘갈릭 소스’나 ‘꿀’을 피자에 찍거나 발라 먹으며 거리낌 없이 시도해본다. 그리고 영상의 말미에서 한국인의 소울이라 할 수 있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바라(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후식으로 마시며, 어쩐지 한국인이라면 내심 뿌듯할 장면마저 연출한다. 이렇듯 파브리는 유튜브를 통해 종종 외국인 입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한국 ‘식문화’의 새로움과 재미를 전한다. 그리고 그의 고유한 태도는 자문화나 타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 또는 비판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독특한 균형 감각까지 만든다. 예컨대 파브리는 ‘피카츄 돈까스’가 한국인들의 유년 시절 추억의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자, 맛이 아쉬울지라도 한 번 더 시도하며 그 재미를 알고자 한다. 혹은 그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국식 피자와 함께 나오는 피클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식문화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예요. 기름진 맛을 중화해주죠.”라며 김치를 베이스로 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손수 담은 과일청으로 칵테일을 제조해주거나, 쌈을 싸서 한 입에 먹는 문화를 제대로 체험시킨다. 그 끝에 파브리의 이탈리아 친구들 또한 “이탈리아에서 스파게티를 자르는 건 신성모독”일지라도, 파브리가 만들어준 막국수를 가위로 잘라 먹는 유쾌한 장면을 만든다. 파브리가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유연함과 전문성은, 도리어 자문화의 고유함을 드러내되 타문화를 존중하는 법까지 감각하게 만든다. 재료의 차이부터 만드는 방법, 먹는 상황과 방식까지. ‘이태리 파브리 Italy Fabri’에서는 외부자와 내부자를 오가는 그의 시선으로, ‘음식’이 얼마나 많은 맥락을 내포하는 ‘식문화’인지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빌보드 ‘21세기 최고의 R&B 힙합 아티스트’
강일권(음악평론가): 분야를 막론하고 변치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사실이 하나 있다. 인물이나 작품의 순위를 매긴 다음 ‘최고’를 뽑는 리스트는 사람들의 논쟁 욕구 스위치를 켜는 최고의 ‘떡밥’이라는 것. 이번엔 빌보드가 낚싯대를 던졌다. 2025년 8월 26일, 빌보드는 ‘21세기 최고의 R&B/힙합 아티스트’ 순위를 발표했다. 2000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28일까지의 차트 데이터에 기반을 둔 리스트다. 설명에 따르면 ‘Top R&B/Hip-Hop Albums’와 ‘Hot R&B/Hip-Hop Songs’ 두 차트에서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정점에는 드레이크(Drake)가 있다. 30곡의 1위 싱글, 15장의 1위 앨범 그리고 355곡이라는 차트 진입 기록. 그의 성과는 통계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2위는 비욘세(Beyonce),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에서 시작된 그의 경력은 솔로 이후 더욱 찬란히 빛났다. 3위는 위켄드(The Weeknd)다. 그의 음악은 ‘대안적 R&B’라는 표현을 넘어 우울과 환락, 몽환적 비트를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했다. 전통적 R&B와 댄스 퍼포먼스의 계보를 이은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과 어셔(Usher)는 각각 4위와 5위에 자리했다. 그 뒤를 릴 웨인(Lil Wayne/6위), 제이지(Jay-Z/7위), 리아나(Rihanna/8위), 에미넴(Eminem/9위), 앨리샤 키스(Alicia Keys/10위)가 장식했다.

정작 격렬한 논쟁은 10위권 밖에서 일어났다. 특히 화살은 11, 12, 13위에 집중됐다. 일부 팬들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12위)가 예(Ye/13위)보다 위에 위치한 것을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아티스트 모두 훌륭한 음악을 선보였으나 팬들은 혁신적 프로듀싱과 음악계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차트 성적만으로 예가 낮은 순위인 것은 부당하다는 반응이다. 11위를 차지한 포스트 말론(Post Malone)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정말 R&B/힙합 아티스트인가?’라는 질문 때문이다. 실제로 말론은 어느 순간부터 힙합을 벗어나 장르 경계가 무너진 21세기의 단면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모든 논란에도 역시 이 같은 리스트는 재미있다. 그리고 유익하다. 21세기 초반의 R&B/힙합계를 돌아보고 기록하는 소중한 자료로 삼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전체 리스트를 보면, 협업과 피처링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었으며, 여성 아티스트의 강력한 존재감이 돋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빌보드 ‘21세기 최고의 R&B/힙합 아티스트’ 순위를 확인했다면, 이제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애정 폭발하는(?) 논쟁을 살펴볼 차례다.

‘시간 속으로’ - 엠마 스트라우브
김복숭(작가): 엠마 스트라우브의 소설 ‘시간 속으로의 도입부를 펼치면, 주인공 앨리스가 완벽하진 않아도 인생에서 많은 것을 손에 넣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점점 악화되는 아버지의 건강. 그런데 40번째 생일 밤, 잠들었다가 눈을 뜬 순간 앨리스는 믿기 어려울 만큼 생생하게 16세 생일 아침으로 돌아가게 된다. 과거로 다시 들어선 그녀 앞에 가장 놀라운 장면은, 아버지가 40대의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되살아 있다는 사실. 이제 앨리스는 1990년대라는 시간 속에서, 자신과 아버지의 미래를 바꿀 기회를 쥔 셈이다.

‘시간 속으로’는 우리가 익히 봐온 다양한 영화 속 시간 여행 방식을 유머러스하게 비추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공상과학적 장치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자연스럽게 몰입된다. 여기에 앨리스의 가장 친한 친구가 전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세밀하게 그려낸 도시 풍경이 더해져, 이 소설은 여름이 끝나기 전에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작품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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