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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Disney+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의 2025년 앨범 ‘Something Beautiful’을 흥행의 관점에서 보면, 전작 ‘Endless Summer Vacation’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하다. 예를 들어 ‘Endless Summer Vacation’의 대표적인 히트 곡 ‘Flowers’는 빌보드 2023년 연간 집계에서 핫 100 2위, 글로벌 200 1위에 오르고, ‘올해의 레코드’를 비롯해 마일리 사이러스 최초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을 이뤄낸 바 있다. 반면, ‘Something Beautiful’은 주간 성적 4.4만 단위로 빌보드 200 4위로 데뷔한 이후 빠르게 순위가 하락하는 등 지속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Something Beautiful’ 발매에 앞서 공개한 ‘애플뮤직’ 인터뷰를 보면, 이 프로젝트는 출발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말했다. “나는 그래미 어워드를 염두에 두고 곡을 쓴 적이 없다. 하지만 ‘Flowers’로 수상한 뒤 찢어진 마음에 반창고를 붙인 것처럼 느껴졌다. (중략) 치유와 인정(validation)을 얻은 이후, 경력 내내 간절히 원했던 앨범을 만들 자유를 진정으로 느꼈다.” 그리고 덧붙인다. “실험적인 앨범을 만들었다. 하지만 팝 음악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여기에 인터뷰어 제인 로우(Zane Lowe)가 덧붙인다. “팝은 문화다. 단지 음악만이 아니다. 그것은 패션이고, 영화이며, 비주얼이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당신 나름대로 흡수한다. 당신을 그것을 진정한 예술로 바라보고 지지할 것이다.” 이 대화는 ‘Something Beautiful’이 어디에서 출발해서 무엇을 바라보는지 요약한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작년 11월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Something Beautiful’을 처음 발표한 당시로 돌아가보자. 그는 이 프로젝트를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1979년 록 오페라 ‘The Wall’에서 영감을 받은 비주얼 앨범으로 표현했다. 단, 그는 (제인 로우가 말한 것처럼) 록 역사의 신성한 기준점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걸러내야 할 것이다. 그는 “내 아이디어는 더 나은 의상(wardrobe)과 화려하고 팝 문화로 가득한 ‘The Wall’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시각적 요소가 사운드를 이끌 것이다. 파괴, 실연, 죽음에 대한 노래는 아름답게 제시될 것이다. 우리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도 아름다운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와 대비 없이는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그 의도를 따르자면 ‘Something Beautiful’이 앨범과 짝을 이루는 영화를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애플뮤직’ 인터뷰에서 마일리 사이러스는 비주얼 앨범을 자신만의 투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고민도 담겨 있다. 그는 성대에 체액이 축적되는 질환인 라인케 부종을 앓고 있어 장기간 투어 활동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으로 그는 투어라는 형식 자체에 피로를 느끼고 관객과 깊게 소통할 방법을 모색했다. 실제로 그의 대규모 투어는 2014년 ‘Bangerz’ 앨범 당시가 마지막이다. 결국 영화 ‘Something Beautiful’은 음악을 홍보하는 부속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매체다. 영화는 2025년 6월 6일,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북미에서는 6월 12일 단 하루 공개 상영되었다.

이제 패션을 이야기할 차례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더 나은 의상을 갖춘 록 오페라’를 말할 때 그건 비유가 아니었다. 글로벌 투어는 세트, 안무, 의상 등 시각적 요소에 막대한 투자를 요구한다. 그 대신 마일리 사이러스는 상응하는 에너지와 자원을 영상 제작에 투입했다. 그 안에서 패션은 수십 미터 거리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무대의상이 아니라, 고해상도로 포착하는 가장 중요한 볼거리이자 영상을 이루는 뼈대다. 세심하게 선정된 20세기 후반의 희귀하고 중요한 하이패션 아카이브와 맞춤 의상이 스토리텔링을 대체한다.

그중에서도 마일리 사이러스의 선택은 1990년대의 뮈글러(Mugler)다. 뮈글러는 1974년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가 오트쿠튀르(haute-couture, 고급 맞춤복) 브랜드로 문을 열었다. 최근에도 블랙핑크가 2023년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에서 착용한 무대의상을 비롯해 비욘세, 두아 리파, 카디 비 등 유명 아티스트의 의상도 만들었다. 하지만 티에리 뮈글러의 가장 전설적인 작업은 1990년대 오트쿠튀르 쇼에서 선보인 탐미적 의상과 연극적인 무대 연출이다.

예를 들어보자. 앨범 커버와 첫 곡 ‘Prelude’에 등장하는 의상은 티에리 뮈글러의 1997년 컬렉션의 일부다. 그해 티에리 뮈글러는 ‘곤충(Les Insectes)’과 ‘키메라(Les Chimères)’로 이어지는 주제를 탐구하며, 모델들은 인간, 곤충, 조류가 뒤섞인 환상적인 하이브리드 생명체로 변모했다. 티에리 뮈글러는 비인간적이고 그로테스크한 것에서 숭고하고 위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이 컬렉션의 선구적 비전을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즉시 연결한다. ‘Prelude’는 말 그대로 서곡이다. 노래가 아닌 낭독을 담고, 음향적으로는 전위적인 SF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연상시킨다. 하이패션의 대담한 미학은 시각적으로 호응한다. 이 앨범과 영상이 전통적인 팝의 구조에서 벗어난다는 선언이다.

같은 의상에서 출발해 흑백의 대조를 이루는 ‘More to Lose’는 어떤가? 마일리 사이러스는 얼굴을 가리는 베일이 달린 강렬한 이미지의 어두운 슈트를 입는다. 1998년 ‘Lingerie Revisited’ 컬렉션의 일부다. 사진작가 헬무트 뉴튼의 카탈로그 촬영으로 유명하다. 이 의상은 컬렉션 주제가 암시하는 에로티시즘과 엄격하고 거의 장례식을 연상시키는 우아함을 혼합한다. 베일은 실연이라는 개인적 고통의 고립적인 본질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Easy Lover’로 넘어가면 또 하나의 상징적인 컬렉션인 1992년 ‘Les Cowboys’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컬렉션은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 바이커 문화의 요소를 하이패션의 영역에서 다룬다. ‘More to Lose’의 슈트를 벗고 분장을 마친 마일리 사이러스는 청록색 챕스(chaps, 카우보이가 바지 위에 덧입는 커버)를 입고 무대에 오른다. 백업 댄서들은 1997년 컬렉션의 곤충 룩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우리가 일관된 세계관을 감상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 노래는 한때 비욘세의 ‘Cowboy Carter’에 쓰일 뻔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현실의 연결을 만든다. 비욘세는 이미 같은 1992년 컬렉션의 팬이기도 하다. ‘Cowboy Carter’ 활동 때는 물론 과거 ‘I am… sasha fierce’ 당시에는 같은 컬렉션의 가장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 뷔스티에를 착용한 바 있다.

뮈글러가 중추를 차지하지만 유일한 디자이너는 아니다.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은 어떨까? 마일리 사이러스는 ‘Walk of Fame’에서 비대칭적이고 해진 느낌의 드레스를 입고, ‘명예의 거리’를 헤맨다. 그가 보여준 어두운 상상력과 낭만적인 아름다움의 결합은, 지금도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남아 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스타덤의 화려함과 허망함을 동시에 노래한 것은, 그 선택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의 가죽 후드는 그의 상징적인 뮤즈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가 상징했던 당당하고 강한 페르소나를 떠올리게 한다. ‘More to Lose’에서는 밥 매키(Bob Mackie)가 셰어(Cher),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 같은 디바에게 선사했던 할리우드 스펙터클의 화려함이 맥락을 더한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뒤늦게 비주얼 앨범이라는 형식에 올라탄 것도 아니고,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재현한 것도 아니다. 단순히 좋은 의상을 모아 놓고 패션을 강조한 것도 아니다. ‘Something Beautiful’은 뮤직비디오조차 백그라운드 재생으로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가 되는 시대에 시청각을 아우르는 감각적 경험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연극적 이미지를 강조한 디자이너들은 의도적으로 세심하게 선택되었다. 마일리 사이러스는 투어 대신 영원히 남을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가 디즈니 아역 출신의 어긋난 기행이라는 시선을 벗어나 완전한 인정과 자유를 얻었을 때, 우리는 현 세대 누구와도 차별화된 언어를 구사하는 대중예술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Something Beautiful’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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