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조금 전까지 몸을 부딪치며 뛰놀던 관중들이 호령에 맞춰 스테이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차례차례 자리를 잡은 팬들은 밴드의 영역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머리를 흔들어댔다. 환희의 행렬은 곡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과도한 록 놀이는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안전에 유의바랍니다.’라는 주최 측의 문구 아래 타월을 돌리고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두 명의 그림자는 한국 록 페스티벌의 역사를 장식하는 영원한 한 장면으로 남았다. 빽빽하게 자리를 채운 인파에 스테이지 다이빙, 크라우드 서핑과 같은 원활한(?) 퇴장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서로를 끌어안고 소리 지르며 무사히 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전설로 남은 2024년 8월 2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의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1일 차 헤드라이너, 턴스타일(Turnstile)의 무대였다.
이날 현장을 찾은 팬들은 가파르게 성장하는 록 밴드의 화려한 대폭발을 향해 타들어 가는 도화선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행운아들이었다. 브랜던 예이츠, 프란츠 라이온스, 대니얼 팽, 팻 맥크로리, 멕 밀스의 턴스타일은 볼티모어 언더그라운드 씬으로부터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슈퍼스타 밴드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네 번째 정규 앨범 ‘NEVER ENOUGH’는 명실상부한 밴드의 정점이다. 미국 빌보드 200 차트 9위, 호주 5위, 독일 7위, 영국 11위 등의 주류 차트 기록부터 에어플레이 차트에서의 선전까지 상업적 성과와 더불어 평단의 호평까지 쏟아지고 있다. “너바나의 ‘Nevermind’에 대한 하드코어의 대답”이라는 ‘메탈 헤드(Metal Head)’지의 극찬부터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도 하드코어 밴드에 관심을 두게 했다.”는 ‘롤링 스톤’의 놀라움까지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2010년 미국 동부 도시 볼티모어의 하드코어 씬에서 출발한 턴스타일은 1980년대 뉴욕 하드코어의 공격성과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그루브를 결합한 역동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언더그라운드에서 빠르게 지지자를 모았다. 로드러너 레코드와 계약하며 발표한 2집 ‘Time & Space’를 통해 펑크(Funk) 리듬과 사이키델릭, 아방가르드를 실험하며 하드코어의 경계를 본격적으로 허물기 시작한 그들은 드림 팝의 몽환적인 질감부터 소울의 감성까지 녹여낸 ‘GLOW ON’을 통해 이 앨범은 평단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으며 그래미 어워드 3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드코어 밴드로서는 전례 없는 성공이었다. 턴스타일이 하드코어 씬의 기대주를 넘어 현시대 록 음악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보컬 브랜던 예이츠는 ‘롤링 스톤 호주’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며칠,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에 걸쳐 아이디어의 아주 작은 조각들을 수집하는 데 시간을 보냅니다.”라고 설명했다. "어떤 것들은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만약 그것이 옳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이며, 논리보다는 직관과 감각을 따르는 창작 과정을 강조했다. 유기적인 접근법은 밴드가 장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운드를 탐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턴스타일의 뿌리는 하드코어에 있다. 밴드에게 볼티모어는 고향 이상의 의미를 갖는 도시다.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등 펑크 록, 특히 하드코어가 강세를 보이는 동부 대도시의 영향을 받아 볼티모어 역시 하드코어, 이모, 팝 펑크 등 언더그라운드 씬이 활발히 움직이는 곳이다. 동시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다인종 도시로 R&B, 힙합, 소울,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 융합이 익숙한 장소이기도 하다. 프란츠 라이온스는 ‘리볼버 잡지(Revolver Magazine)’와의 인터뷰를 통해 볼티모어의 한 바에서 랩 공연과 펑크 공연이 함께 열리던 풍경을 회상한다. “그때 깨달았어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고, 어디서든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자유. 그게 바로 우리 음악의 핵심입니다.”
브랜던 예이츠도 ‘가디언(The Guardian)’지와의 인터뷰에서 턴스타일의 유연한 음악적 태도를 설명한다. “우리는 하드코어 밴드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저를 하드코어와 펑크로 이끌었던 것 중 하나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규범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였다는 믿음입니다.” 턴스타일의 음악 행보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이다. 그들에게 하드코어는 특정한 사운드 스타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자 정신이다. 턴스타일의 음악은 분명 역동적인 하드코어 펑크 록이지만 어두컴컴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배타적인 고립의 소리가 아니다. 모두가 어우러져 춤을 추고 몸을 부딪칠 수 있는 해방구다.

‘NEVER ENOUGH’는 이런 턴스타일의 새 시대 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음악적 만화경’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전작의 ‘UNDERWATER BOI’처럼 아련한 신시사이저 연주로 출발해 강렬한 앤섬을 완성하는 동명의 ‘NEVER ENOUGH’부터 맹렬한 하드코어 리프와 폭발적인 드러밍이 인상적인 ‘DREAMING’은 밴드를 대표하는 싱글이다. 턴스타일은 여기서 머무르는 대신 더 다양한 청중을 스테이지에 초대한다. 속도를 줄인 쟁글 팝 스타일에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유지한 ‘I CARE’, 저돌적인 연주를 끝내고 신비로운 플루트 연주로 곡을 끝마치는 ‘SUNSHOWER’에서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과시한다. 신시사이저 한 대만을 놓고 완성한 ‘MAGIC MAN’은 화려한 기교 없이도 브랜던 예이츠의 거친 목소리와 단출한 구성만으로 깊은 울림을 안긴다.
핵심은 이를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연상되는 ‘SEEIN’ STARS’ 속 서로 다른 형태로 음악을 즐기던 팬들이 가장 공격적인 ‘BIRDS’와 함께 광분의 축제를 즐기는 영상은 턴스타일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볼티모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동료를 모으는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인 ‘LOOK OUT FOR ME’ 역시 명실상부한 앨범의 하이라이트다. 록 연주가 끝나고 볼티모어 클럽 스타일의 전자음으로 후반부를 채우며 도시에의 경의를 표하는 밴드의 총출동 호령에 맞춰, 수많은 지지자가 대형을 이뤄 맹렬히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빛내기 위해 달려온다. 경이롭다.

혹자는 이 앨범이 하드코어 음악치고 “너무 말랑하다.”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흔히 록 시장에서 “팝 음악다워졌다.”고 치부되는 상업적 변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턴스타일의 목표는 ‘상업화’보다 볼티모어라는 용광로가 밴드에 부여한 유연성과 개방성을 토대로 하드코어의 핵심 가치인 ‘공동체 의식’과 ‘자기표현’을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턴스타일의 이번 활동을 상징하는 무지갯빛 컬러 월(Color Wall)과 밴드의 비주얼 앨범을 보라. 언더그라운드의 어두컴컴한 흑백 화면은 없다. 파스텔 톤의 다채로운 색감과 초현실적인 아트워크, 인종과 연령, 성별의 차별 없는 록 음악의 이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하드코어의 원초적 가치, ‘함께한다’라는 연대의 감각이 턴스타일의 음악에서 되살아난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에너지를 나누는 해방의 장이다.
프런트맨 브랜던 예이츠는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무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방에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함께 자라고, 음악을 찾고, 만들었던 가족과 친구들이죠.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이 말과 함께 그는 관객석으로 몸을 던진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17년 역사상 최초의 스테이지 다이빙이다.
프란츠 라이온스는 “우리의 목표는 밴드와 우리를 지지하러 오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NPR ‘타이니 데스크’ 그리고 전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밴드와 함께 춤추던 팬들의 모습은 그 목표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다. 턴스타일은 증오와 편견을 부순다. 그 잔해 속에서 사랑과 연대를 꽃피운다. “마침내 나는 깨달았지. 이 새들은 홀로 날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자유를 증명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가르침처럼, 턴스타일은 함께 광활한 하늘을 자유로이 누비고 있다. 모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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