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매년 음악 산업을 분석하는 ‘Music in the Air’라는 보고서를 낸다. 올해 6월에 발표한 보고서는 최근 홈페이지에 약간의 업데이트와 함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음악 시장이 2035년까지 2,000억 달러, 현재의 약 2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단, 시장 성장을 이끄는 동력은 과거와 다를 것으로 보며, 개발도상국에서의 유료 스트리밍 증가, 비디오 콘텐츠, 라이브 공연을 강조한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기폭제로, 아직은 낯선 단어인 ‘슈퍼팬 수익화’를 언급한다. 보고서는 슈퍼팬 시장이 66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대체 슈퍼팬이 무엇이길래?

답을 찾기 위해 올해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이하 ‘SXSW’)’로 돌아가보자. 메인 행사인 컨퍼런스를 보면, 올해 108개국에서 약 4.8만 명의 참석자가 모여 1,700개 이상의 강연과 토론 세션을 열었다. 여기서 102개 주요 세션(Featured Sessions) 중 하나가 ‘음악의 미래: 슈퍼팬 중심 비즈니스 구축(The Future of Music: Building a Superfan-Centric Business)’이었다. 세션의 진행자는 빌보드 차트 성적을 집계하는 것으로 유명한 시장 조사 업체 루미네이트의 제이미 마르코넷(Jaime Marconette)이다. 3명의 토론자는 최준원 위버스컴퍼니 대표, 미트라 다랍(Mitra Darab) 하이브x게펜 레코드 대표, 스트리밍 서비스 타이달(Tidal)의 음악 산업 전문가 사라 야니제브스키(Sarah Janiszewski)가 나섰다.
달리 말하면, K-팝의 대표적인 팬덤 플랫폼, K-팝의 제작 시스템을 미국 시장에 이식하기 위한 파트너십 그리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선구적으로 시도한 스트리밍 업체가 한자리에 모여서 ‘슈퍼팬’이 누구인지, 어떻게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논의했다. 그리고 이 토론은 ‘슈퍼팬’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서구 음악계와 K-팝의 입장 차이를 드러내는 명시적인 기회가 되었다. 요컨대 서구 음악 산업이 슈퍼팬이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새로운 돌파구로 탐색할 때, K-팝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개념을 체득하고 숙달해온 모습이 대조를 이루었다.
먼저 서구 음악계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살펴보자. 첫째, 왜 슈퍼팬인가? 서구 음악 산업이 슈퍼팬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시장의 변화가 있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에 따르면 미국 시장의 음반 산업 수익 성장률은 2023년 8%에서 2024년 3%로 둔화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시장을 주도한 스트리밍의 성장률도 2023년 8.1%에서 2024년 3.6%로 느려졌다. 스트리밍 성장기에는 모든 음악에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스트리밍의 가치가 새로웠다. 하지만 정액 스트리밍 요금과 균등한 수익 분배는 엷은 마진을 뜻하고, 그 안에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던 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따라서 관심은 시장의 넓이에서 팬덤의 깊이로, 일반 소비자에서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팬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둘째, 슈퍼팬은 무엇이 다른가? 우선 미국 음악 시장 분석 업체 루미네이트의 2025년 상반기 보고서를 보면 슈퍼팬의 계량적 정의를 찾을 수 있다. 슈퍼팬은 실제 및 가상 공연 관람, 음반/머치 구입, 소셜 미디어 및 커뮤니티 활동, 팬클럽 및 뉴스레터 가입 등 총 13가지 소통 채널 중 5개 이상에 연관되는 팬을 말한다. 2024년 음악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음악 청취자의 20%가 슈퍼팬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평균적인 소비자보다 공연에 66%, 음반에는 2배 이상 지출이 크다. 공연 참석율은 슈퍼팬 90%, 평균 59%다. 친구나 가족과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비율은 슈퍼팬 81%, 평균 41%다. 머치 구매율은 슈퍼팬 73%, 평균 26%다. 이는 슈퍼팬에 대한 직관적 이해와 일치한다. 슈퍼팬은 아티스트와의 감정적 연결과 애착을 통하여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가 된다.

하지만 슈퍼팬에 대한 서구 음악 산업의 초기 반응은 대개 경제적 접근으로 보인다. 이미 존재하는 팬에게 한정판 음반의 직접 판매, 프리미엄 공연 경험 같은 부가적인 가치를 제공한다. 이는 슈퍼팬이 아티스트와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만드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구매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동안 미래의 슈퍼팬 전략은 새로운 프리미엄 등급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변되었다. 스트리밍 시장의 정체가 고민의 시작인 만큼 자연스러운 기대다.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는 수년간 고음질 서비스를 비롯해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등급을 소개할 가능성을 비쳐 왔다. 하지만 최근 스포티파이는 무손실 음원을 기존의 모든 가입자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를 프리미엄 서비스와 가격을 교환하는 거래적 관점에 대한 전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은 K-팝의 사례를 돌아볼 것이라는 점이다.
서구 음악계가 '슈퍼팬'을 찾기 한참 전부터, K-팝은 고도로 조직화되고 아티스트와 깊게 연결되는 팬 문화를 만들어왔다. K-팝 팬들은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창작자이자 유통자로 활약한다. 팬 아트 제작, 소셜 미디어 계정 운영은 물론, 관련 콘텐츠를 번역하여 해외 팬들의 접근을 도운 역사가 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다른 사람을 찾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다양한 상징과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한다. 때때로 이들의 집단행동 능력은 인종차별적 해시태그를 무력화하는 것 같은 사회적 활동으로 연결된다. K-팝 팬덤이 독점 상품에 대한 구매 욕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 유대를 바탕에 두는 증거다. 여기에 아티스트와 팬을 연결하는 폐쇄적 플랫폼의 가치가 숨어 있다. 최준원 대표가 위버스의 차별점으로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소셜 미디어라는 정글에 비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소통 채널임을 강조한 이유다.
요컨대 K-팝 팬덤은 몇 가지 지표로 걸러낼 수 있는 인구통계학적 집단이 아니라, 일종의 인프라다. 서구의 슈퍼팬은 개개인의 소속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프로필에 가깝다. 하지만 K-팝 팬덤은 자기 조직적이고, 이제는 전 세계로 분산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단순히 개개인의 충성심을 결합한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성공을 함께 일구는 생태계다. K-팝의 원천 기술이란 결국 문제의 인프라, 네트워크, 생태계를 길러내는 방법이 된다. SXSW 세션에서 미트라 다랍 대표가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다. “K-팝만큼 저를 놀라게 한 팬덤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심리의 수준은 다릅니다. 그들은 이야기와 서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합니다.”

‘팝 스타 아카데미’와 KATSEYE의 데뷔는 하이브가 K-팝의 방법론을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 이식한 결과물이다. 이 과정을 문서로 남긴다면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등장할 것이다. 체계화된 아티스트 개발 과정으로서 엄격한 T&D(Training & Development), 리얼리티 콘텐츠를 통한 사전적인 팬덤 구축, 음악 외에도 비하인드, 스트리밍, 메시지 등 지속적인 콘텐츠 공급 그리고 그것을 집중화하는 플랫폼의 존재까지. 이에 비하면 서구의 슈퍼팬 전략은 이미 익숙한 전략을 강화하는 접근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기존의 슈퍼스타 팬덤의 충성심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나,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고 소셜 미디어와 바이럴로 유대감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모두 그렇다. 반면, K-팝은 아티스트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팬덤을 구축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슈퍼팬 중심(Superfan-Centric)이라고 말할 때 모두 같은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KATSEYE의 성공은 다양한 국적의 멤버 구성과 미국을 기반으로 한 활동 덕분에 K-팝 모델이 특정 문화권을 넘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 다음은 어딜까? 하이브의 라틴 시장 진출은 고유의 방법론을 보이 그룹에 적용하는 형태다. 산토스 브라보스는 리얼리티 쇼를 통해 데뷔 전 팬덤을 구축하는 공식을 따르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독특한 문화적, 예술적 감성을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종 멤버 결정을 앞둔 현재, 5,000석 규모의 데뷔 공연은 이미 매진되었다.
최근 뭄바이에 설립된 하이브 인디아는 또 다른 도전이다. 인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음악 스트리밍 시장 중 하나다. 역시 K-팝 방법론을 주축으로 두지만, 인도 시장과 관객에 맞춰 최적화된 접근을 취하고자 한다. 라틴 지역과 인도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이제 K-팝은 검증된 글로벌 시스템을 구현하면서도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미묘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K-팝이 도전자의 입장에서 증명하는 것을 넘어, 팬덤 산업의 글로벌화를 이끈다는 인식의 전환을 부른다. 전통적인 음악 산업이 슈퍼팬의 '어휘'를 배우는 사이, K-팝은 자신만의 '문법'으로 새로운 책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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