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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KATSEYE X

2025년의 르세라핌과 KATSEYE를 기록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하나는 미국에서 대형 공연장을 가득 메운 르세라핌이다. 올해 4월부터 시작한 ‘EASY CRAZY HOT’ 투어는 9월 미국에서의 7회 공연으로 절정을 이뤘다. 전석 매진을 기록한 공연 중에서 수많은 팬들이 ‘CRAZY’의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올해 8월 미국 시카고 ‘롤라팔루자’에서 기록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KATSEYE다. 이른 오후 시간대 공연임에도 8만 5,000명의 관객이 몰렸고, 이는 롤라팔루자의 낮 공연 최다 기록으로 남았다. 불과 1년 전 채플 론이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무대에서 매우 성공적인 공연을 펼친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블랙핑크와 같은 K-팝 걸그룹의 성공 사례를 알고 있다. 하지만 르세라핌과 KATSEYE는 2022~2024년에 걸쳐 데뷔했다. 이때는 K-팝의 글로벌화가 자리 잡은, 구체적으로는 K-팝이 서구권에서도 유의미한 장르가 된 이후다. K-팝이 아시아계 인구나 일부 마니아에 의존하는 틈새시장이라는 일부의 의구심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물론 이 말은 K-팝을 누구나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K-팝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으면, 그 인기가 즉시 서구권에서의 입지로 환산되지 않는다.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K-팝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에게 똑같은 도전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르세라핌과 KATSEYE는 어떻게 미국 시장에서 걸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먼저 걸그룹이라는 카테고리를 생각해보자. 테일러 스위프트는 말할 것도 없고, 사브리나 카펜터, 채플 론, 찰리 XCX 등 많은 여성 아티스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현 시대에 그 정도로 성공적인 여성 그룹은 없다. 2025년 헌트릭스의 빌보드 핫 100 1위는 2001년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24년 만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윌슨 필립스, TLC, 스파이스 걸스 등이 1위 곡 12개를 냈다.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로는 푸시캣 돌스, 피프스 하모니 정도가 명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단적으로 사브리나 카펜터의 사례를 보자. 그는 2024년 갑자기 ‘Espresso’로 데뷔한 것이 아니다. 2014년 이후 2022년 ‘Nonsense’가 히트할 때까지 8년의 시간과 5장의 앨범이 필요했다. 긴 여정 중에 솔로보다 그룹에게 더 많은 변수가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보컬이 만들어내는 풍성한 사운드, 고정 멤버 간의 조화 등 그룹의 장점은 여전히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K-팝은 축적된 자원과 시스템으로 지난 10년 이상 미개척된 진공을 메울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K-팝은 단순히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포기한 영역을 메우고 있다.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2023년 10월 말 ‘Perfect Night’ 싱글 공개 이후의 르세라핌을 돌아보자. 르세라핌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인기 게임 ‘오버워치 2’와 협업하며, 신곡 ‘Perfect Night’을 발표했다.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중심으로 게임 내에서 기간 한정 콘텐츠가 공개되었다. 이들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연례 행사인 ‘블리즈컨 2023’을 마무리하며 신곡을 포함한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

같은 시기 르세라핌은 ‘블리즈컨 2023’을 접점으로 발키레(Valkyrae), 브로유왁(BroYouWack) 등 게임 관련 크리에이터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다. 뉴욕에서 또 다른 대형 유튜버 하 시스터즈(Ha Sisters)와 찍은 브이로그가 공개된 것도 그 무렵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언어와 문화적 다리 역할을 하는 허윤진이다. 그는 동세대의 밈과 속어를 이해하는 영어 구사자로 하 시스터즈와의 혼란스러울 정도의 대화를 안정적으로 중재한다. 이 브이로그에서 언급된 Z세대 속어는 이후 르세라핌의 미국 활동 중 멤버가 직접 사용하여 다시 한번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마지막으로 르세라핌은 주류 스포츠 문화 브랜드 NBA와 접점을 만든다. 이들은 LA 레이커스와 LA 클리퍼스 경기에 참석하고, 레이커스의 치어리더는 ‘ANTIFRAGILE’ 공연을 선보인다. 멤버 이름과 각자에게 의미 있는 등 번호를 넣은 커스텀 저지도 화제가 되었다.

게이밍 문화, 인플루언서, 주류 스포츠로 이어지는 친화적 접근은 1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2025년 3월, ‘오버워치 2’와 르세라핌은 다시 한번 협업 이벤트를 진행했다. 하 시스터즈는 2024년 한국을 방문하여 르세라핌과 브이로그 후속편을 촬영했다. NBA는 2024년 4월 르세라핌과 ‘Friends of the NBA’라는 이름의 파트너십 관계를 맺는다. 방탄소년단의 슈가에 이어 NBA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두 번째 K-팝 아티스트다.

비슷한 접근은 미국 투어를 앞둔 2025년 9월에도 이어진다. 르세라핌은 US 오픈 테니스 토너먼트, MLB의 LA 다저스 경기에 참석했다. 뉴욕 기반의 신진 디자이너 다니엘 귀조(Danielle Guizio)와 한정판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다. 그리고 유명 TV 쇼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연하여 ‘HOT’과 ‘ANTIFRAGILE’을 선보였다. 이러한 일관된 접근 속에서 2024년 봄,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의 논란은 한때의 소음으로 남았다. 몇 개월 후 르세라핌은 2024년 9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공연에서 K-팝 퍼포먼스와 관객과의 교감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았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아메리카 갓 탤런트’와 미국 투어는 이들이 더욱 능숙하게 공연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와 언어의 문제를 처음부터 벗어난 KATSEYE는 어떨까? 이들은 미국, 한국, 필리핀, 스위스 등 다양한 국적과 다인종 구성을 배경으로 한다. KATSEYE의 다양성은 특징이 아니라 메시지에 가깝다. 올해 진행된 갭 광고 캠페인 ‘Better in Denim’은 그 예시다. 이 광고가 아메리칸 이글의 ‘Sydney Sweeney Has Great Jeans’ 캠페인과 대칭을 이룬 것은 유명하다. 갭은 자신들의 광고가 아메리칸 이글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하지만, ‘Great Jeans’가 ‘Gene’과 유사한 발음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인종적 함의를 지니게 된 것과 인상적인 대조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갭의 광고는 3일 만에 2,000만, 몇 주 만에 4억 조회 수를 기록하며 갭과 KATSEYE 모두에게 성공작이 되었다.

KATSEYE는 의류 브랜드 광고에서 보통 볼 수 있는 것처럼 적절히 조합된 모델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원래 한 팀이다. 대중적으로 가장 익숙한 브랜드 중 하나가 팀 전체를 인종적, 문화적 대표성에 대한 준중과 일치시켰다. 이 라인업의 특질은 그들의 음악에도 반영되어 각 멤버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글로벌 팝으로 발전 중이다. 더 많은 경험치를 쌓은 최신 K-팝의 집중적인 프로덕션을 거쳐, 이들은 1년 만에 ‘롤라팔루자’를 거쳐 수천 석 규모의 북중미 단독 투어가 가능한 팀이 되었다.

르세라핌과 KATSEYE는 블랙핑크와 다른 길을 개척하고 있다. 블랙핑크는 걸 크러시 콘셉트, 각 멤버가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앰배서더이자 초대형 인플루언서가 되는 개별 브랜딩, 드문 활동으로 컴백을 중요 이벤트로 만드는 희소성으로 전례 없는 글로벌 유명세를 구축했다. 르세라핌은 K-팝의 퍼포먼스와 함께 허윤진의 매개로 미국 일상 문화에 전략적으로 스며들어 친밀감 있는 연결을 이끌어낸다. KATSEYE는 대담하고 급진적인 실험이다. 데뷔 리얼리티 쇼를 포함한 K-팝 시스템의 현지화로 글로벌 그룹을 구축한다. 이들은 K-팝 대형 신인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과 유사한 속도로 미국 내에서 자기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결국 두 팀은 진기한 수입품이 아니라, 시장에 영구적으로 머무르고 반응하는 존재감을 구축한다. 이는 K-팝의 규율된 퍼포먼스와 서구의 팝 스타가 보여주는 친밀한 교감이라는, 방향이 다른 가치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르세라핌은 큰 주목이 쏠린 순간 잠시 균형이 흔들렸지만 빠르게 본래의 궤도로 돌아왔다. KATSEYE는 더 안정적으로 결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전에 없던 길이다. 아직 그 결말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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