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리뷰는 영화 ‘세계의 주인’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의 주인’의 윤가은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 없이 ‘주인’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관람 이후 글을 정독해주실 것을 권합니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결국 어떤 흔적을 감추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활기가 넘쳐 보이는 열여덟 살 주인(서수빈)의 가족들이 사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은 진로 상담을 받던 중 물끄러미 사과를 바라보다가, 담임 선생님이 호의로 사과를 건네자 호흡곤란을 장난으로 연기하며 능청을 떤다. 하지만 진실은 그가 정말로 사과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있다. 주인의 어머니 태선(장혜진)은 아이들을 다정하게 돌보는 어린이집 원장이지만, 동시에 텀블러에 술을 담아 수시로 마시는 알코올중독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주인의 남동생 해인(이재희)은 어머니와 누나가 집을 비울 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몰래 살펴보거나 숨기고, 아토피피부염을 앓으면서도 가족들 몰래 과자를 먹는다. 해인이 평소 트릭으로 관객들을 속여 즐거움을 주는 마술을 연습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해인이 펼치는 마술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주는 주인과 태선의 모습은 화목한 가정의 전형처럼 보인다. 주인과 어머니 태선은 주인의 연애와 스킨십 진도에 대해 거리낌없이 대화할 수 있고, 해인은 애교 많고 살가운 동생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무언가가, 어떤 흔적이 있다. 마치 태선이 간헐적인 복통을 진통제로 애써 감추는 것처럼. 그리고 해인이 마술로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던 쪽지가 끝내 발밑에 흩어져 있었던 것처럼.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이 그의 남자친구 찬우(김예창)와 쉬는시간을 틈타 대담하게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성 친구와도 스스럼없이 몸을 부딪히며 장난을 치고, 친구들과 산부인과에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하며 깔깔거린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지금 주인의 삶에는 활기가 넘친다. 그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흔적이 없었던 듯 행동할 수 있다고 해서,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다. 같은 반 친구인 수호(김정식)가 8년 전 여아 성폭행 가해자의 출소에 대한 반대 서명을 준비할 때, 주인은 수호가 준비한 서명문의 “성폭력은 평생 씻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기며”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며 서명을 거부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은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이며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 같냐는 항변을 토해내지만 결국 이를 농담인 것처럼 비틀어버린다. 마치 선생님에게 사과를 받기 싫은 순간에 호흡곤란을 연기하던 때처럼. 요컨대 주인의 능청은 타고난 그의 활기이기도 하지만, 그만의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이는 절에서 주인에게 “다 내 탓이요, 내 업보요.” 하며 기도하라며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외할머니의 말에 공덕 좀 쌓고 오겠다며 능청을 떨고 달려가버리는 그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감추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진실의 주인은 바로 나이기에.
어려운 점은,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실하다는 것이다. 수호는 여동생 누리(박지윤)를 돌보는 데 진심이다. 동생이 대변을 보는 과정을 직접 처리하고, 동생의 몸에 작은 흔적만 생겨도 태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직접 찾아가 항의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가 여아 성폭행 가해자가 동네로 이사온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도 누리와 함께 걷는 계단 위에서였다. 평소 주인이 장난치다가 부딪히기라도 하면 짜증을 내기 일쑤던 수호는 서명을 받을 때만큼은 최대한 주인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막판에는 (주인이 사과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과주스를 갖다주며 서명을 부탁하기도 한다. 수호가 주인과 대화하다가 폭발한 지점 역시 주인이 만약 여동생인 누리가 “끔찍한 성폭행”을 당하면 어떻게 될지를 질문할 때였다. 주인의 의도는 수호가 계속 성폭행을 “끔찍한” 일로 규정하는 것이 피해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생을 지키기 위해 매사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수호는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위험의 가능성에 집중하고 만다. 결국 수호가 참지 못하고 주인에게 “너야말로 그 끔찍한 성폭행 당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를 물으며 둘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만다. 주인에게 그 일은 가능성이 아닌 이미 겪은 현실이자 흔적이었기에. 주인은 처음으로 능청스럽게 웃어넘기지 못하고 극도로 흥분해서 수호에게 달려든다. 수호 역시 주인만큼 진심이었다. 다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그 일이 흔적이며, 아직도 그 일을 살아내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차이는 크다.
“내 인생 아직 망가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줘. 부탁할게.” 주인이 자신과의 갈등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해결하는 대신 서명을 요구하는 수호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며 이 대사를 말할 때, ‘세계의 주인’은 1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을 맞이한다. 세계의 주인은 1시간 59분짜리 영화다. 즉 ‘세계의 주인’은 주인공이 품고 있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지는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삼지 않는다. 남은 시간 동안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주인이 감당하고 있던 진실의 무게가 주변인에게 전달되는 과정이다. “주인아. 난 그냥 네가 너무 어려워. 미안해.” 찬우와 주인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지만, 찬우는 끝내 주인의 트라우마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며 그를 떠나고 만다. 찬우의 손길이 닿는 범위가 점차 늘어나도, 예상보다 스킨십이 깊어지면 찬우를 거세게 쳐내고 마는 주인의 습관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주인이 이런 자신의 행동이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고백할지라도 찬우에게 이는 ‘어렵다’. 주인의 친구들은 주인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과거가 좋았다고 털어놓는다. 심지어 주인처럼 노력하며 ‘갓생’을 사느니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며 그의 고통을 은연중 대상화하기도 한다. 주인에게 19금 만화를 직접 그려 보여주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웠던 친구인 유라(강채윤)는 주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피할 정도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주인에게 말한다. “야, 넌 뭐가 그렇게 다 괜찮냐? 너 그렇게 괜찮아?” 주인을 아끼는 만큼 친구들의 서투름 역시 커진다. 이미 그 흔적을 살아온 주인의 일상은 변할 게 없지만,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주인은 변하지 않았으나 주변이 변했다. “사람들 불편하고 혼란스럽게 하니까 재밌냐?”, “뭐가 진짜 너야? 너한테 진짜가 있긴 한 거야?” 주인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농담처럼 토해내고, 부인하고, 다시 인정하기까지의 과정 동안 그를 추궁하는 쪽지는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세간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진실을 원한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에게.
그렇다면 ‘주인의 세계’는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까? 수호와 주인의 갈등에서도 알 수 있듯, 진정성이 당사자를 이해하는 마법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영화가 주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의 안내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이 참여하는 성폭력 피해자 자조 모임의 모습은 별다른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등장해 청소로 봉사활동을 하며 활력을 얻고, 대화 중 자연스럽게 “변호사”를 언급한다. 관람객들은 늘 주인을 허물없이 대하던 미도(고민시)가 주인이 자조 모임에 상의 없이 남자친구 찬우를 데려왔을 때만큼은 지나치게 흥분하는 모습에서 이 모임에 당사자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경계선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즉 이 영화에서 성폭력은 단순히 소재로 소비되지 않으며, 당사자들의 삶 속 일부로서 그려진다. 그리고 카메라는 새로운 장소를 비추는 전환점마다 익스트림 롱 샷으로 학교 농구장, 아파트 주차장, 쓰레기가 흩어진 강가를 비추며 머나먼 시선을 견지한다. 마치 아무것도 쉽사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주인이 수호에게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라고 외쳤다가 농담처럼 넘겨버린 날 저녁 노래방에서 신나게 몸을 흔드는 순간이나, 복도에 선 학생들을 비추는 순간에도 클로즈업 샷은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시선은 세차장에 들어선 차 안에서만 기나긴 원망과 분노를 토해낼 수 있는 주인의 울음을 말 없이 받아내다가, 주인에게 물병을 건네며 한 바퀴 더 돌지를 묻는 태선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세계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함부로 그 슬픔을, 상처를 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단지 곁에서 함께하며 지켜볼 수는 있다.
매번 자신이 아프지 않다고 우기는 습관이 있는 수호의 동생 누리에게 주인이 반복적으로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 흔적은 수호로 하여금 누리가 태선의 어린이집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태선이 거듭되는 수호의 요청에 어린이집 CCTV로 확인한 주인과 누리의 모습에는 음성이 들리지 않는 와중에도 분명히 전달되는 긴장감이 흐른다. CCTV를 확인하며 복부 통증에 시달리던 태선은 누리의 몸 곳곳을 세게 꼬집는 주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누리의 입으로 대신 듣게 된다. “이래도 안 아파요?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거짓말하면 더 아프다는데.” 주인의 말을 흉내내는 누리의 말을 듣고 그를 끌어안으며 “아파.”라고 고백하는 태선의 모습은 스스로의 고통을 외면하는 대신 마침내 받아들이고 치유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후 태선이 마침내 담낭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주인의 가족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을 괴롭히던 흔적으로부터 도피하는 대신 해결을 선택한다. 자신을 오랜 시간 괴롭히던 상처를 능청과 장난으로 덮어두던 주인은 마침내 목소리를 낼 것을 결심하고, 누리에게도 아픔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알코올로 상처를 회피하던 태선은 마침내 술을 싱크대에 버리며 가해자의 동생이라는 죄책감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주인의 아버지 기동(김석훈)에게 집에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해인은 주인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내는 가해자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지 말라는 편지를 쓴다. “내 인생 아직 망가지지 않았어.”라는 주인의 말 그대로, 어떤 흔적이 삶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픔을 치료하지 않고 넘기는 것 또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흔적에 매몰되지도,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는 그 어딘가의 경계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세계의 주인’으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요컨대 ‘세계의 주인’은 우리가 어떻게 과거의 흔적을 대하며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영화 중반에서 미도와 대화를 나눌 때 “나만 어렵고 잘 안 되는 것”이 “사랑”이라던 주인은 장래 희망에 ‘사랑’을 써 넣는다. 태선에게 왜 매번 연애를 한 달도 넘기지 못하냐는 한탄을 듣고, 비록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던 찬우와 헤어지게 되었지만 이제 주인은 스스로를 “역동적인 연애에 재능이 있다.”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흔적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 쉽지 않았던 주인은 이제 그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며 진정한 사랑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주인을 의심하던 쪽지는 사과와 화해의 문장으로 바뀐다. 그리고 단지 진실이 궁금했다던, 성별과 관계없이 반 친구들의 목소리를 빌려 읽히는 그 편지의 주인은 말한다. “난 이제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됐어.” 미도가 재판정에서 성폭력을 행하는 친부의 마음을 풀기 위해 보냈던 친근한 문자부터 생활비를 위해 용돈을 요구한 행동을 모두 추궁당하는 것처럼, 진실을 요구하는 세상의 시선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주인의 친구들이 겪는 혼란처럼, 진심 어린 사람들도 당사자가 아니라면 실수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지나온 흔적에 대해 마침내 목소리를 내고 싶어진다면, 그 세계가 점차 넓어질 수 있도록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봐줄 수는 있다. 주인이 작은 차 안에서나마 진정한 자신의 세계를 만난 듯 절규를 토해낼 때 태선이 그 옆을 묵묵히 버텼듯이. 그러다 보면 목소리를 내는 모두가 ‘세계의 주인’으로서 오롯이 설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당신도, 나도. 저마다의 흔적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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