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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미(‘씨네21’ 기자)
사진 출처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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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국열차’의 머리칸과 꼬리칸, ‘기생충’ 속 고급 주택과 반지하 집. 잘 알려진 것처럼 봉준호 감독은 자본주의에 의한 계급 차이를 이미지화하는 데 능한 시네아스트다. 그의 상상력이 우주까지 미친 ‘미키17’ 역시 자본주의의 위계 질서를 이미지로 변환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키17(로버트 패틴슨)은 니플하임 행성의 원주민인 크리퍼들을 생포하는 임무를 맡아 순찰하던 중 크레바스에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비행사 티모(스티븐 연)는 그를 구하러 크레바스에 오지만 미키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긋더니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고 얄밉게 묻는다. 미키17이 죽어도 다음 날이면 미키18으로 리프린트된다는 근거를 내세우더니 화염방사기만 쏙 챙기고 떠나버린다. 인류가 새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당도한 얼음 행성, 니플하임. 그곳에도 우리에게 작동하는 계급 차이와 위계가 존재한다. 티모가 머무는 크레바스의 상층부와 미키가 쓰러져 있는 더 낮은 곳이.

나샤(나오미 아키에)가 말하듯 미키는 미키일 뿐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는 ‘익스펜더블’이 된다. 대만 카스텔라 가게를 열었다 빚을 진 ‘기생충’의 기택(송강호)의 데자뷰처럼 미키는 마카롱 숍을 열었다가 거액의 빚을 지고 익스펜더블이 되길 택한다. 한국에서 한때 일명 ‘뚱카롱’이 인기였다는 점을 아는 관객이라면 현실에 기반한 봉준호 감독의 유머라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미키는 가혹한 사채업자 다리우스 블랭크(이안 한모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제 손으로 익스펜더블이 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우주선에서 온갖 위험한 일을 떠안는다. 3D 프린터로 신체를 복제하고 백업해둔 기억이 다시 심어지는 익스펜더블은 좋게 말하면 ‘불멸의 존재’, 엄밀히 말하면 ‘쓰고 버릴 수 있는 노동자’이다. 위험한 업무를 주로 맡는 노동자를 두되 간접 고용해 산재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 일명 ‘위험의 외주화’ 우주 버전이 바로 이 익스펜더블이다. 그런 일자리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미키는 위험을 무조건 감내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실험용 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한다.

다시 한번 미키는 미키일 뿐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는 비로소 ‘익스펜더블’이 된다. 봉준호 감독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 속 베르토에게서 영감을 받아 티모를 창조했지만, 학업과 운동 능력, 비행 실력도 천부적인 베르토와 달리 미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범인으로 그린다. 애슈턴 작가는 능력자 베르토가 그렇지 않은 미키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 모습을 묘사한다면, 봉준호 감독은 인간의 능력과 쓸모에서 생과 사를 가를 만큼의 큰 차이란 애초에 없다고 본다. 나는 여기에서 봉 감독 특유의 뾰족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위계가 생기면 누군가는 죽음과 가까운 업무만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명확하게 짚는다. 이를 비꼬기 위해 봉준호 감독은 동료들이 리프린트 중인 미키를 두고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거나, 미키 손이 잘려나갈 때 “방금 봤어?”라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비춘다. 익스펜더블과 다른 ‘우리’가 되어 미키를 무신경하게 대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수많은 산재 소식에 무신경한 현대인들과 어느 정도 닮았다.

그런데 과연 이게 미키만 겪는 문제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미키는 노동자 일반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 직장인들이 자조적으로 쓰는 말 중에 “갈아 넣는다.”란 표현이 있다. 무언가에 갈려 나가는 듯 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비유한 말이다. 이는 일정 기간 집중해서 고강도로 일하면 이후 보상을 받거나 휴식할 수 있는 ‘크런치 모드’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한국인들은 근무 시간을 넘어 개인의 휴식 시간을 쓰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을 할 때 “갈아 넣어 일한다.”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이런 격무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미키처럼 ‘반복’되고 ‘장기화’될 때 “갈아 넣어 일한다.”라고 말한다. 이때 갈리는 것은 무엇일까. 건강과 시간? 물론이다. 그리고 또 있다. 건강을 해치고 개인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매달리면서 자아가 조금씩 깎이는 느낌이다. 추가 근무와 야근, 피로 누적으로 일은 완성될 수 있지만, 나란 사람의 자아는 조각조각 갈려 일 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사라져간 수많은 미키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갈아 넣음”의 정점에는 소스가 있다. 요리에 관심 많은 마샬(마크 러팔로)의 아내 일파(토니 콜렛)는 소스를 각별히 여기며 소스야말로 문명의 상징이라고 추앙한다. ‘설국열차’ 속 메이슨(틸다 스윈튼)이 “누구도 신발을 머리 위로 쓰진 않는다.”라면서 질서를 강변하듯, 일파는 미키의 고혈로 돌아가는 우주선에서 편안히 지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아 넣어 소스를 만들고 이것이 문명이라 말한다. 그러고 보니 일파가 만든 소스는 모두 붉은색을 띠고 있다. 미키를 저녁 만찬에 초대해 배양육을 먹일 때 일파는 익지 않은 고기처럼 보일 만큼 새빨간 소스를 끼얹어주고, 니플하임 원주민인 크리퍼의 꼬리를 믹서에 갈아 붉은 소스를 만든다. 그리고 영화 막바지에 미키가 꾸는 악몽에 등장해 검붉은 소스를 권한다. 그가 생각하는 문명인 소스에 많은 존재들이 “갈려 나간” 듯 보이는 건, 그것이 일관되게 붉은색이기 때문이며 미키와 같은 인간, 크리퍼와 같은 비인간의 희생을 바탕에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이슨의 질서, 일파의 소스 혹은 문명은 진리일까. 봉준호 감독은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 쪽이다. ‘설국열차’의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에게 "저게 하도 오래 닫혀 있으니까 이젠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은 저것도 문이란 말이야."라며 머리칸 말고 열차 밖으로 나가자고 설득하는 장면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질서를 내면화하고 상층부로 향하기 위해 발버둥칠 게 아니라 그 질서에서 벗어나자고 ‘설국열차’ 속 남궁민수는 말했다. 비슷하게 미키17과 미키18도 그만의 방식으로 일파의 ‘소스 문명론’에서 탈주한다. 일파는 미키17과 미키18에게 크리퍼의 꼬리를 100개씩 잘라 오라고 명령하지만 미키들은 이를 너끈히 무시하는 장면이 있다. 크리퍼의 꼬리 100개를 자른 미키는 살려주고 그렇지 못한 미키는 몸에 부착된 폭탄을 터뜨려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동원되는데도, 미키 중 그 누구도 꼬리를 자르려 하지 않는다. 시도조차 하지 않을뿐더러 어느 미키도 상대에게 꼬리를 자르지 말자는 제안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 중 누군가는 몸에 폭탄을 두르고 바깥으로 내쳐진다면 크리퍼의 꼬리를 자르는 데 몰두하지 않았을까.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면 미친 듯이 자르기 시작할 것”이란 마샬의 호언장담처럼 말이다. 그러나 미키들은 마샬의 예상을 깨고 마마 크리퍼에게 곧장 다가가 대화를 청한다.

미키들이 일종의 ‘파업’을 할 때 이 영화는 사실상 결말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 언제나 자기식으로 코멘트를 남기는 봉준호식 결말에 다다랐다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듯 ‘미키17’을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때 해피엔딩 강박이 심하다고 느껴졌다. 특히 미키의 내레이션으로 모든 인물들의 결말을 간단하게 처리하고 그 모습을 재현하는 짧은 쇼트들을 모으는 몽타주에서는 큰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극장에 앉았을 때 이 영화는 그전에 할 이야기를 모두 끝낸 것처럼 보였다. 구태여 각각의 인물들 나름의 해피엔딩을 설명하려는 강박, 거기서 새어 나오는 악몽 신이 펼쳐지기도 전에 이 영화는 이미 소임을 다했다. 최악의 노동 환경을 감내하던 익스펜더블 미키17은 (실은 자기 자신이지만) 동료 미키18을 만나 불합리함을 깨닫고 더는 예전처럼 일하기를 멈춘다. 목숨값이 화염방사기나 카펫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배양육 실험을 겪고도 “저녁 식사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미키17은 눈보라 속에서 나름의 파업을 할 정도로 변했다. 이야말로 영화가 보여주는 산뜻하면서도 묵직한 한방이며 진짜 피날레가 아닐까. 스스로와 다른 존재를 해치면서까지 익스펜더블로 사는 것과 파업하는 것, 두 가지 선택지 중에 미키들은 일종의 파업이자 탈주를 택했고 그것으로 미키들은 더는 ‘갈아 넣어 일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미키17이나 미키18이 아닌 미키 반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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