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리뷰는 영화 ‘부고니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부고니아’와 가장 많이 닮은 영화는 당연히 원작인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일 것이다. 첫 설정부터 결말까지, ‘부고니아’의 중요한 대목들은 원작 영화와 유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난 다음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영화들도 속속 떠올랐다. 빠른 속도로 캐릭터와 관객을 정신이 무너질 것 같은 난관 속으로 몰아넣는 할리우드 영화들. 이를테면 ‘서브스턴스’(2024),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바빌론’(2022) 같은 영화들. 이른바 ‘위험 사회’에 대한 영화적 반응 혹은 발작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영화들. 이 영화들은 현대 관객에게 끊임없이 위험 신호를 보낸다. “당신, 지금 이대로 괜찮나요?” 이런 결의 작품들은 관객의 옆구리를 찌르고,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탈출하자고 동요시키곤 한다. 뾰족한 해결법은 떠오르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갈등을 덧대고 증폭시키며 미칠 듯한 감정을 안기는 영화들을 위험 사회가 촉발시킨 ‘불안의 영화’라고 명명하고 싶다.

‘부고니아’ 속 가난한 노동자 테디(제시 플레먼스)도 겉으로는 납치한 화학기업 오솔리스의 CEO 미셸(엠마 스톤)과 맞선다. 자신은 “인류 저항군 본부”이며, 미셸을 포함한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 지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디는 외계인 고위 관료로 유추되는 미셸에게 지구 철수 안건을 협상할 수 있도록 모선에 메시지를 보내라고 압박한다. 미셸이 외계인인지 아닌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외계인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가 안전하게 안드로메다 황제를 만나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대결은, 단순한 개인 간의 일이 아니라 종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존재 간의 부딪힘이다.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럽고, 테디가 당연히 필패할 수밖에 없는 듯 느껴져 관객은 그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위험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그 위험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어 막막하다.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사회이기에 테디는 깊은 사유보다는 직관의 힘에 기대게 되었다. 안드로메다인과 일반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냐는 사촌동생 도니(에이든 델비스)의 질문에 테디는 허름한 마트 주차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척 봐도 아님을 알 수 있다며 “무해하고 희망 없는” 인간과 안드로메다인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신 칼발이고, 큐티클 없이 정돈된 손톱을 가진 데다, 앞니가 살짝 나왔으며, 머리숱이 빡빡하고, 귓불이 도톰한 미셸은 안드로메다인이라고 확신한다. 테디는 자신 이외의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느낌을 신봉한다. 그리고 테디는 이제 사회규범도 믿지 않게 되었다.
불신이 커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들 사이의 언어가 점점 공허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의 말이 텅 빈 껍데기와 같아졌다. 납치되기 전 미셸이 느지막히 출근해 비서에게 5시 30분이면 ‘칼퇴’하라는 메시지를 전 사원에게 전하라고 명하는 시퀀스를 많은 관객이 기억할 것이다. 그는 그렇다고 모두 일찍 퇴근할 필요는 없다며 직원 개개인이 판단해서 행동하되 생산성은 그대로 유지하라고 지시한다. 미셸은 비서에게 “표현에 주의하라.”고 덧붙이는데, 그의 지적처럼 표현이, 말이 교묘해진 시대다. 미셸은 비서에게 대화의 마침표처럼 “새 시대야!”라고 선언하는데, 그가 말하는 새 시대란 대체 무엇일까. 이전처럼 회사에 묶여 일하되 자율적인 근무인 척 가장하는 시대? 혹은 전혀 새롭지 않지만 무언가 새롭게 시도된다고 믿으며 자발적으로 예속되는 시대? 미셸과 같은 리더의 언어는 가슴을 울리기보다 본래의 의도를 숨기는 쪽으로만 교묘해져 가고 있다.
원작과의 비교해보면 언어의 약화, 말의 공허함은 더 크게 와닿는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기업가 강만식(백윤식)의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 기사가 주를 이뤘던 반면, ‘부고니아’ 속 미셸은 촉망받는 여성 CEO로만 조명된다. 미셸은 유창한 언변으로 본의를 숨기고 좋은 의도만 내세우는데, 테디의 어머니 샌디(앨리샤 실버스톤)의 삶을 무너뜨린 사고를 회사 연혁 제일 앞에 노출하겠다면서, 잘못마저도 진정성으로 교묘하게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사회의 말단 어딘가에 존재하는 테디는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르기에 이른다. 협상도 없고 사법 질서도 없고 국회도 없고 미국도 없고 세계 민주 질서도 없다는 결론 말이다. 국회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미국이 지구 위에 없다는 게 아니라 그 같은 거대한 용어가 뜻하는 내용과 실제 기능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테디는 반문하고 있다. ‘부고니아’에 유난히 긴 대사가 많다고 느껴진다면, 이처럼 현대인들의 본심과 떨어진 언어, 껍데기뿐인 소통을 꼬집기 위해서다.
테디와 미셸이 각자의 생각을 길게 늘어놓을 때 카메라는 오버 더 숄더 샷이나 청자의 반응을 담은 리버스 샷을 지양하고, 말하는 자의 확신에 찬 얼굴만 비춘다.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 하겠다는 태도를 강조하는 카메라의 의지다. 제대로 들으려는 이가 없기에 대화는 일방향적이며 두 캐릭터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지 못한다. 게다가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와 자본가 두 그룹이 교차할 수 있는 지대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테디와 미셸이 거주하는 동네가 다르며, 두 사람의 이동 수단은 자동차와 자전거로 구분된다. 사용하는 주차장도 나뉘어 있고, 일터로 들어가는 입구조차 겹치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만의 필터 버블에 갇힌다.
테디는 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처럼 노동자 자신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현재는 불만족스러울 뿐이고, 미래라고 해서 희망적이지도 않다. 테디는 아니 어쩌면 영화는 안전감을 되찾기 위해 후퇴와 자기 파멸을 지향한다. ‘부고니아’라는 제목이 뜨기 직전, 테디는 도니를 설득하여 화학적 거세를 감행하면서 긴장을 풀기 위해 자유에 관해 짧은 대화를 나눈다. 도니는 자유란 “어릴 때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일이 없고 모두가 곁에 있는 때”라고. 도니의 말처럼 자유란 지금의 것은 아니고, 미래의 것은 더더욱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자유는 과거에 누렸던 것으로 상상된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도 관객의 옷깃을 잡아채 함께 달리듯 빠른 속도로 움직였으나, 모든 소동 끝에 빌런을 응징하고 인류와 지구의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공개된 ‘부고니아’, ‘서브스턴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바빌론’ 속 주인공들은 그저 인간인 빌런 한 사람과 맞서는 것도 아니며, 자신을 둘러싼 총체적으로 망가진 환경에서 허우적대다 실패를 맞거나 미봉책의 결말에 다다른다. 이야기가 끝나는 건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미칠 것 같은 충동이 끝간 데까지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불안감과 조급함이 소강되고 영화는 끝이 난다. ‘부고니아’는 ‘지구를 지켜라!’의 모든 이야기의 뼈대를 고스란히 따라가며 미셸이 외계인이란 테디의 망상을 영화적 현실로서 끝까지 놓지 않지만, 강 사장이 지구를 폭파시킨 것과 달리 미셸은 인간만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지구는 살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비인간 존재들도 그대로 두기로. 인간 영혼의 안식은 언제 오는가. 영화는 “무(無)로 돌아감으로써”라고 답한다. 인류가 절멸한 마지막 시퀀스에서 동물들의 몸짓으로, 비닐봉지의 비상으로 ‘부고니아’는 인간의 부재에 오히려 안도한다. 그리고 엔딩 타이틀 롤이 올라가는 때에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며 마음을 다독인다. ‘지구를 지켜라!’가 우주를 유영하는 병구(신하균)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을 비춘다면, ‘부고니아’는 검은 스크린 위로 새가 지저귀고 빗방울이 시원하게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주는 것이다. 이제 영화 속 세계에서 불안에 떨던 테디가 사라지고, 나머지 인간들도 사라졌다. 새소리와 빗소리만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인간 관객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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