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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대중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SMTOWN 유튜브

K-팝 그룹이 더 이상 아티스트라는 라벨만으로 정의될 수 없는 시대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아티스트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된다. 그룹 이름, 로고, 앨범마다의 콘셉트와 디자인 같은 시각적 상징물로 대중과 팬덤 마음속에 총체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로부터 가지를 뻗은 오프라인 경험과 가치를 선사한다.

NCT라는 글자를 읽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요소들이 있다. 네온빛 연두색, 조금은 난해한 듯 귀에 맴도는 음악.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해도, 어떤 모습으로 등장해도 ‘네오하다’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그리고 수용된다. 그러한 힘은 성공적으로 구축한 브랜딩에서 나온다. 차별화된 브랜딩은 ‘확장’이라는 주요 키워드로부터 시작됐다. ‘그룹을 확장한다’는 콘셉트 줄기는, 구현할 수 있는 음악을 확장하고 구현할 수 있는 모습을 확장하는 형태로 NCT를 조형한다.

2025년은 NCT라는 브랜드에서 감각할 수 있는 경험의 결이 한껏 펼쳐진 한 해였다. 통통 튀는 음악과 색채로 고유의 브랜드를 쌓은 NCT WISH, 성장형 스토리텔링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굳힌 NCT DREAM, 완성형 퍼포먼스로 팬들과 만난 NCT 127, 겨울 스페셜 앨범으로 시간을 새롭게 감각하게 한 WayV까지. 이러한 그룹 활동과 더불어 멤버 각자의 솔로 활동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NCT라는 브랜드의 경험 스펙트럼을 멤버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색깔과 깊이로 입체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발매된 앨범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매력으로 NCT의 브랜딩을 확장한 솔로 활동 다섯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텐의 움직임: 텐 ‘STUNNER - The 2nd Mini Album’
2017년 발매된 ‘몽중몽’은 텐이 홀로 무대를 채웠을 때의 모습을 미리 엿보게 해주었다. 고상하면서도 우아하고 유려했다. 텐은 예술적 미학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아티스트다. 그의 두 번째 미니 앨범 ‘STUNNER’는 그 미학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증명한다. 텐의 움직임은 단순한 안무를 넘어, 곡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투영하는 예술적 행위로 치환된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수록 곡들이 지닌 분위기의 극명한 대비와 그로 인한 시각적 자극이다. 앨범에는 귀를 때리는 강렬한 비트와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 곡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힘을 뺀 채 나른하고 칠링한 감성을 자극하는 곡들이 공존한다. 장르적 통일성 대신 선택한 이 다채로운 스펙트럼은 리스너들의 머릿속에 각기 다른 텐의 궤적을 그리게 만든다. 빠른 템포의 곡에서는 공기를 가르는 날카롭고 직선적인 움직임을, 여유로운 곡에서는 물결처럼 흐르는 곡선의 몸짓을 상상하게 되는 식이다. 이처럼 ‘STUNNER’는 완성된 하나의 그림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기보다 소리를 통해 텐의 새로운 움직임을 끊임없이 설계하고 상상하게 만든다. 결국엔 텐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무한한 유연함을 증명한다.

마크의 열매: 마크 ‘The Firstfruit - The 1st Album’
한 권의 자서전. 마크의 첫 번째 솔로 정규 앨범 ‘The Firstfruit’를 정의하는 말을 고르라면 단연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철저히 챕터를 나누고 그 사이사이 자신이 자라온 성장 배경을 심었다. 그 위에 생각과 철학을 뿌려 놓는다. 그렇게 마크라는 아티스트, 마크라는 사람의 모습까지 기어코 확인하게 만든다. 챕터는 마크가 지나온 도시의 이름을 따른다. 첫 번째 챕터 ‘토론토’에서는 그가 물려받은 토양이 되는 부모님의 이야기로 시작해 탄생을 축하하듯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광활한 대지를 그린다(‘1999’). 그 뒷이야기는 그가 이주했던 도시순으로 펼쳐진다. 그의 첫 번째 이주였던 ‘뉴욕’ 챕터에서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하듯 강렬한 힙합 곡들이 뒤를 잇고, 그의 가치관을 형성했을 도시 ‘밴쿠버’에서는 감성적인 사운드로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서울’ 챕터에서는 ‘+82 Pressin’ (Feat. 해찬)’처럼 역동적인 음악부터 피아노 선율로 시작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가미해 입체적으로 구성한 ‘Too Much’까지 현재 마크라는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음악으로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인상적인 점은 인터루드(‘Mom’s Interlude’)의 후반부 배치다. 이는 표면적으로 마지막 곡 ‘Too Much’와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장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아티스트의 음악이 현재 완료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비옥한 토양 위에서 자란 사과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완전히 단언할 수 없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도영의 시간: 도영 ‘Soar - The 2nd Album’
홀로 채우는 음악 속 도영의 모습은 청량하다 못해 벅차오르는 형태다. 그가 구현하는 음악 속 장르가 악기 사운드를 정성스레 쌓은 밴드 음악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연주하는 멜로디가 그러한 형태의 사운드를 구현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게 정답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도영의 음악에는, 특히나 올해 발매된 ‘Soar’에는 그가 쌓아온 시간이 있다.

도영이 자신의 시간을 펼쳐 보이는 방식은 자라면서 들어온 음악과의 소통에 있다. 넬(NELL)의 김종완, 자우림의 김윤아, YB 윤도현 등 그가 자라면서 들어왔을 음악의 주역들이 참여해 도영의 과거를 뒷받침하고, 도영은 그 과거의 시간을 발판 삼아 자신의 목소리를 달고 미래를 향해 비상한다. 강렬한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록 사운드의 곡에선 감정을 폭발하듯 내뱉고, 현악과 피아노로 단조롭게 구성한 곡에선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안녕, 우주’부터 마지막 곡인 ‘미래에서 기다릴게’까지 따라가다 보면 그가 음악과 함께 성장하던 과거와 음악을 언어 삼아 팬들과 소통하는 현재를 연상하게 되고, 끝에 다다라서는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그는 “시간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 있다”고 노래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흐르는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건 그가 쌓아온 시간이다.

해찬의 취향: 해찬 ‘TASTE – The 1st Album’
해찬은 그간 NCT 127, NCT DREAM 활동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보컬리스트로서 활약했다. 특정 장르를 잘 소화해내는 보컬이 아닌, 광범위한 장르를 소화하는 아티스트로서 다재다능함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첫 솔로 앨범 ‘TASTE’는 그와 상반된다. 특정 장르, R&B와 소울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R&B라는 장르 안에서 폭넓은 시간대를 포용하며 깊어진다. 모타운 사운드를 연상하게 하는 정통 R&B의 향수부터 모던한 감각을 아우르는 사운드까지, 다채로이 변주하는 시간 속에서 해찬은 자유로이 노래한다.

펑키한 리듬 속에서 뾰족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타이틀 곡 ‘CRZY’에서는 마이클 잭슨을 떠올리게 하고, ‘ADRENALINE’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클럽 씬에서 열풍이 일었던 크렁크(Crunk)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구사한다. ‘Roll With Me’에선 1970년대 소울 장르의 향수가 느껴지고, ‘Should Be’에선 1990년대 슬로우 잼이, ‘Grey Rain’에선 차분한 얼터너티브 R&B가 해찬의 목소리를 뒷받침한다. 첫 솔로 앨범 ‘TASTE’를 통해 그는 특정 장르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자신의 재능을 ‘취향의 깊이’로 완성한다.

정우의 마법: 정우 ‘SUGAR’
정우의 첫 솔로 싱글 ‘SUGAR’는 오감을 자극한다. 그루비하고 통통 튀는 멜로디에 귀를 사로잡는 후렴구 “Won’t you be my sugar”로 귀를 자극하는 건 물론이고 파스텔 톤의 색채와 함께 스파클링을 뿌린 듯 반짝거리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SUGAR’라는 단어는 즉각적으로 단맛을 떠올리게 만들고 자연스레 솜사탕의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찌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 폭신한 질감의 솜사탕이 손끝에 닿는 듯한 촉각적 상상력까지 더해지며 곡은 하나의 입체적인 경험이 된다.

곡의 발매일은 11월 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이지만 ‘SUGAR’는 계절을 앞질러 도착한 봄바람처럼 포근한 온기를 안긴다. 차가운 계절감마저 잊게 만드는 이 달콤한 마법은, 정우라는 아티스트가 지닌 고유의 다정함이 음악으로 완벽히 치환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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