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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영화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25년 한국 극장가의 최대 이슈는 애니메이션의 흥행이다. 극장가 전체가 불황으로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애니메이션만큼은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 심지어 올해는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등장했다. 그리고 ‘주토피아 2’가 올해 애니메이션 화제작 중 최고의 성과를 냈다. 7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면서 2025년 최고 흥행작이 되고, 1월 4일 기준으로 8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인기를 얻었을까?

매력적인 주토피아에 드리워진 어두운 흑막을 걷어내고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경찰 주디와 닉의 진짜 매력,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은 그 비결이 궁금하다.

꿈 많은 시골 청년 주디
‘주토피아’의 주인공 주디 홉스는 포유류 중에서도 몸집이 왜소한 토끼다. 주디의 부모님은 토끼들이 모여 사는 인구 8,000만의 도시 버니빌(Bunnyburrow)에서 당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토끼로 태어난 현실을 인정하고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랐던 부모의 바람과 달리 주디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남달랐다. 시도를 안 하면 실패할 일도 없다는 아빠의 인생관을 주디는 따르지 않았다. 주디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경찰이 되길 꿈꾸며 집을 나선다.

2016년에 개봉한 ‘주토피아’는 주디가 살던 마을을 떠나 어린 시절 꿈이었던 경찰이 되기 위해 도시인 주토피아에 정착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쾌활하고 계획적인 주디는 “누구나 뭐든 될 수 있다!(Anyone can be anything!)”라는 인생 모토를 갖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주토피아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연 경찰 배지를 달고 제복을 입은 주디가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 주토피아는 모든 동물이 안전하게 어우러져 함께 살 수 있는 도시일까? 주디에게 주토피아는 마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세계 같다.

닉은 정말 교활한 여우일까?
부푼 꿈을 안고 경찰이 된 주디의 첫 임무는 주차 위반 단속이다. 사실 주디는 당장이라도 맹금류 연쇄 실종 사건을 수사하고 싶다. 서장은 주디를 아직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주디 앞에 온갖 잔꾀를 동원해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며 살고 있는 여우 닉 와일드가 나타난다. 닉은 주디를 감쪽같이 속여 넘기기도 하고 정의로운 주디에게 기분 나쁜 말을 남기기도 한다. “여우는 교활하고 토끼는 멍청하지.”

경찰 주디의 진짜 임무는 연쇄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에 앞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닉이 정말로 범죄자인지, 그의 본모습을 파악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닉의 진심을 파악해야 하는 미션은 주디가 처음 경찰서에 부임해서 겪었던 부당한 대우와도 연결된다. 주디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포유류 동료들로부터 그저 귀여운 동물에 불과하다. 주디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편견이다. 이제 주디는 닉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여우에 대한 편견을 깨야 한다.

사리 분별에 능한 닉은 주디보다 능숙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둘은 딱 봐도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달라 보이고 성격도 극과 극이다. 하지만 닉 또한 여우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마음의 큰 상처를 지닌 채 살아왔다는 것이 밝혀진다. 닉이 주디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어야 했던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장면은 큰 울림을 준다. 주토피아는 생각처럼 완벽한 도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닉은 주디와 전혀 다른 삶의 모토를 갖고 살아왔다. 남에게 상처받은 자신의 본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말 것. 누군가 교활한 여우라는 편견을 갖고 자신을 바라본다면 상대를 바꿔보려 노력하지 않으며 살 것. 닉이 주토피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운 생존법이다. 주디는 닉을 통해 화려한 도시 주토피아의 이면을 보게 된다.

최고의 경찰 콤비
‘주토피아’ 시리즈를 처음 기획한 사람은 현재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를 맡고 있는 재러드 부시 감독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처음 ‘주토피아’의 세계관을 설계할 때 스파이 영화와 경찰 수사물과 같은 장르적인 특징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1편의 이야기는 모든 동물이 어우러져 살기 좋은 도시 주토피아에 갑자기 맹금류에 속하는 동물들만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음모의 배후에는 도시의 질서를 깨고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끔찍한 세력이 있다. 2편에서도 심각한 사건이 이어진다.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유지하는 기후장벽이라는 기술이 사실은 특정한 동물을 멸종 위기에 빠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물론 이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건 주디와 닉의 몫이다. 두 편에 걸쳐 펼쳐지는 모험담은 할리우드의 너무나 유명한 버디캅 무비들, 예를 들면 ‘비버리 힐스 캅’이나 ‘리썰 웨폰’ 같은 액션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주토피아’ 시리즈에는 기존의 버디캅 무비에는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낙천적인 토끼 경찰 주디와 영리한 여우 경찰 닉은 1편에서 아주 큰 사건을 해결하고 당당하게 주토피아 최고의 경찰 콤비가 되어 돌아왔다. 길거리 출신 닉이 경찰 배지를 달 수 있었던 것은 주디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 덕분이었다. 주디와 닉이 1편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변화의 시작은 나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말이었다. 닉과 주디는 도시를 위기로 몰아넣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료 경찰이나 가족이 토끼와 여우를 바라보던 편견을 깨는 데 성공한다. 또한 그들 스스로를 옥죄었던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고 성장한다. 서로 다른 성격과 개성, 긍정과 냉소의 힘을 적절히 섞어 최고의 콤비로 거듭난다. 1편의 엔딩에서 주디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전해준 말이 있다. “우리 모두 단점을 갖고 있고 서로 다른 성격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서로의 차이를 더 포용하게 될 것이다.”라는 주디의 말은 ‘주토피아’ 시리즈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할 때 건강한 사회, 더 나은 사회가 유지된다. ‘주토피아’ 시리즈는 못된 악당을 사로잡는 데 집중하는 통쾌한 액션 영화가 지니지 못한 다른 교훈을 보여준다.

액션 활극의 규모를 대폭 키우다
‘주토피아’가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의 단서를 하나씩 추적해 가는 스릴러 영화의 형식을 빌어 완성되었다면, ‘주토피아 2’는 전편보다 액션의 규모를 대폭 키웠다. 이번에는 닉과 주디가 변장과 잠복을 통해 스파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도 선사한다. 게다가 제임스 본드나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캐릭터를 떠올리게 할 만큼 대단한 활약을 하게 만든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놀라운 속도의 카 체이싱 장면을 비롯해 사막을 질주하는 추격 장면 같은 액션이 대거 등장하고 심지어 한 장면에 수만 마리의 동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등 규모를 키웠다. 전편에서는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새로운 기후 환경, 예를 들면 사막이나 설원을 배경으로 한 액션이 펼쳐지고, 해양 동물들이 모여 사는 습지 마켓이란 공간도 새롭게 등장해 수중 액션이라는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토피아 2’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1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완성했다.

‘주토피아’의 진정한 가치는 공존 :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는 사회
‘주토피아’ 시리즈가 결국 관객에게 전하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가치를 이해하며 사는 사회다.

1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자 주토피아 최고 인기 가수로 등장하는 가젤이 부르는 노래, ‘Try Everything’의 가사가 실현되는 곳이 바로 주토피아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지만 다시 시작할 거야. 계속 해서 넘어지고 땅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다음을 위해서 다시 일어설 거야.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고는 배울 수가 없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다시 시작할 거야.”

퇴근 후에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반드시 써야 하는 주디,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소파에 온몸을 묻고 TV를 시청하며 힐링해야 하는 닉. 이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른 캐릭터지만 그래서 더욱 함께 할 때 놀라운 시너지를 발휘한다. 혹시 그들의 관계가 3편에서 로맨스로 이어질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2편 주제곡 ‘Zoo’의 가사에도 둘의 관계를 예상해볼 수 있는 힌트가 숨겨져 있다. “사랑을 찾는 건 너무 어렵지만, 우리 둘이 함께라면 늘 즐거울 거야.” 

또한 공식 발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 쿠키 영상에는는 후속편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다. 팬들은 이제껏 등장하지 않았던 조류 캐릭터의 활약을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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