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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출처굿맨스토리

배우 민경아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친밀감이 있다. 분장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얼굴,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열정과 노력,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는 친화력,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성실함…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늘 민경아가 궁금했고, 때로는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민경아에 대해 핵심적으로 알아야 할 네 가지를 정리해봤다. 이건 내가 갖고 있는 친밀감을 분석적으로 풀어놓는 글이다.

앙상블에서 자스민까지, 민경아의 퀀텀 성장
2015년 뮤지컬 ‘아가사’ 앙상블로 데뷔하여 올해 11년 차로 접어든 배우 민경아. 2025년 디즈니 뮤지컬 ‘알라딘’ 한국 초연에서 여주인공 자스민을 연기했고, 2026년 상반기에는 창작 뮤지컬 ‘레드북’(4연)의 안나로 무대에 오른다. 이제는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민경아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매우 빨랐다. 빠르게 퀀텀 점프를 하며 앙상블 배우에서 중극장과 대극장 주·조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데뷔 이후 바로 2015~2016년 ‘베어 더 뮤지컬’ 한국 초연의 아이비로 낙점되었고, 2017년에는 ‘몬테크리스토’의 발렌타인으로 캐스팅되며 대극장 무대로 진출했다. 

민경아의 오디션 여정은 기묘했다. 첫 오디션에서는 불합격했으나 집에 가는 길에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김수로 대표로부터 ‘아가사’ 오디션 제의를 받았고 ‘햄릿’ 오디션에서 ‘몬테크리스토’에 발탁되었으며 ‘웃는 남자’ 오디션에서 ‘더 라스트 키스’의 마리 캐스팅이 확정되는 우연을 거듭 맞이했다. 말하자면, 민경아는 이후 찾아올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여러 곳에 심어놓고 있었던 셈이다.

‘렌트’ 모린으로 날개를 달다
누군가 민경아의 이런 행보를 운이 좋다고 평가한다면, 나는 이 운조차 민경아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 말하고 싶다. 민경아의 연기는 2020년 ‘렌트’에서 모린을 연기한 전과 후로 나뉜다. ‘렌트’ 이전 민경아는 2018년 ‘웃는 남자’의 데아,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 2019년 ‘엑스칼리버’의 기네비어, ‘레베카’의 나를 연기했다. 여전사 기네비어를 제외하고 대부분 청순가련형의 대극장 여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렌트’의 모린부터 민경아는 청순의 이미지를 벗는다. 2020년 ‘렌트’ 한국 프로덕션은 안드레스 세뇨르 주니어(Andy Señor Jr.)가 맡았다. 2000년 한국 초연 이후 처음으로 한국인이 아닌 브로드웨이 연출가가 지휘봉을 잡고 오리지널리티를 보강했던 특별한 시즌이었다. 그는 1997년에 엔젤을 연기함으로써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 연출가 마이클 그라이프(Michael Greif)와 함께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의 협력 연출을 맡았던 ‘렌트’ 전문가였다. 당시 공연에 참여했던 모두는 기존 한국 공연의 관성을 극복하고 원본성에 다가가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그중 민경아는 단연 눈에 띄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연출 디렉션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새로운 캐릭터 해석을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연습 기간 내내 대담한 시도를 이어 나갔다. 민경아의 모린이 유독 무대에서 반짝였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 이후 민경아의 흰 도화지 같은 얼굴은 록시의 나르시시즘(‘시카고’), 암네리스의 화려함과 유연함(‘아이다’), 안나의 엉뚱함과 돌직구식 진정성(‘레드북’), 캐시의 현실적인 얼굴(‘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을 폭넓게 담아냈다. ‘렌트’의 ‘No day but today’ 정신을 구현한 보헤미안 모린은 민경아의 연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단단하고 청아한 보컬 
뮤지컬은 음악이 핵심이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 즉 ‘넘버’는 캐릭터를 표현하고 주제를 구현하며 공연 전체의 콘셉트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뮤지컬 배우에게 보컬 역량은 캐릭터 수행력과 직결된다. 민경아의 보컬은 단단하고 청아하다. 현장 용어로 보컬에 기본적인 ‘땜삥감’이 있고 동시에 막 피어나는 꽃의 이슬과 같은 단아함과 청량감이 있다. ‘땜삥’이라는 용어는 음향 용어 댐핑(damping)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힘 있는 목소리를 뜻한다. 민경아가 모든 조음 기관을 정확한 포지션에 두고 발성하는 순간은 마치 목표물에 정조준된 총알이 날아가는 것 같은 힘을 지닌다. 이 힘에 토대를 둔 군더더기 없는 청아한 톤은 민경아의 무기다. 

이런 민경아의 목소리는 폭넓은 연기의 원천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에 단단함과 청아함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지만 민경아의 소리는 이중적인 양 측면을 담는다. 민경아의 보컬에 다양한 여성 캐릭터의 목소리가 실릴 때 설득력이 생기는 이유다. 민경아는 ‘아이다’의 암네리스를 연기하며 글래머러스한 스크래치 창법을 선보였다. 이는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가 ‘모든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라고 선언하며 공연을 힘 있게 열도록 만들었다. 반면, ‘웃는 남자’의 시각장애인 데아를 연기할 때는 사랑스럽고 순수한 톤의 보컬로 그윈플렌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또한 민경아가 연기한 ‘렌트’의 모린은 음을 자유자재로 밀고 당기며 다양한 톤을 불어넣는 보컬의 재치에 힘입어 아주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되었다. 

간결함과 과감함 사이, 민경아의 안나 
마지막으로 나는 ‘민경아는 안나’라는 선언을 하고 싶다. 나에게 민경아의 대표작을 묻는다면, 2023년부터 출연하고 있는 뮤지컬 ‘레드북’이라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레드북’의 주인공 안나는 여성에게 한없이 불리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솔직함과 엉뚱함, 진중함과 발랄함으로 돌파한 인물이다. 첫 장면의 안나는 ‘난 뭐지’라는 일성을 터뜨리며 하녀로 살다 구직자가 된 자신의 신세를 토로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안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성지가 된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가로 살아간다. 구직자에서 작가로, 하녀에서 삶의 주체로 거듭나는 인물이 곧 안나다. 공연의 매력은 안나가 전형적인 ‘시대의 투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엉뚱하고 발랄하며 욕망에 솔직한 내면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물로 성장한다는 점에 있다. 

민경아의 안나는 이 모든 것을 품는다. 투명하고 과감하며 친근하고 진실한 민경아의 내면은 안나를 ‘그 자체’로 육화시킨다. 스스로 시대와 불화하는 이상한 외톨이임을 고백하면서도 ‘난 그저 안나’임을 강조하는 첫 장면의 민경아는, 등장 시점부터 ‘난 뭐지’라는 공연의 질문에 안나와 같은 투명하고 직설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공연 밖 민경아 역시 다르지 않다. 민경아는 미디어 앞에서도 자신을 편하게 드러내며 군더더기 없고 쿨한 성격을 자연스럽게, 한편으론 엉뚱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민경아는 “연기는 간결하게 해야 하며 갑작스러운 상황에는 과감할 필요가 있다.”라는 철학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런 민경아의 연기론은 안나의 삶과 닮아 있다. 간결하게 그러나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현재 민경아는 뮤지컬 외 다양한 영역에 도전 중이다. 여성 국극의 안팎을 다룬 드라마 ‘정년이’(2024)에서 허영서의 언니 허영인으로 등장한 것이 좋은 예다. 어린 시절 드라마를 보며 배우를 꿈꿨던 민경아는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허영인을 연기하며 연기의 폭을 확장했다. 허영인은 화려한 명성을 지닌 소프라노로 살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향해 떠난 여성으로, 정년이의 최대 맞수 허영서에게 예술적, 인간적인 울림을 준 인물이다. 민경아는 이러한 허영인을 과감하지만 침착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 여성으로 만들었다. 앞으로 민경아에 의해 입체화될 여성들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다양한 영역에서 울려 퍼질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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