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은 굽는 문화를 아주 좋아한다. 한국은 삼겹살이란 돼지의 배 부위를 좋아하는데, 흥미롭게도 이 부위는 다른 나라에서는 제일 싼 부위에 속한다. 고급스러운 등심, 안심보다 몇 배는 더 비싸다. 삼겹살은 즉석에서 지글거리면서 구울 때 아주 맛있다. 기름기가 많아서 굽는 기쁨을 배가시켜주는 부위다. 세계의 삼겹살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소비한다. 삼겹살은 물론 어떤 고기나 부위도 다 구울 기세이며, 실제로 그렇게 먹는다. 친구들과 약속을 할 때 많이 하는 말 중에는 “어디 가서 고기 좀 구울까?”가 있다. 굽는 일은 굳이 원시시대를 떠올리지 않아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외국에서 살 때, 주인집 아이들은 “스테이크 구우러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몹시 흥분해서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했다. 원래 인간은 그런 법이다.
한국은 굽는 데 있어서 양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여전히 한국인은 많이 먹지 않는다.-굽는 기술과 방식, 유행을 이끌어 간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구이 기술을 선보이는 가게가 유명 먹자 골목에 들어선다. 식당 창업용 도구를 파는 청계천에는 구이판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는데, 대충 세어봐도 200종이 넘는다. 식당 산업에서 가장 큰 몫은 역시 구잇집이며, 그 기술과 도구를 지원하는 산업도 당연히 크다.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구이판 하나를 설계하면 전문가는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북방과 중국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고기구이 문화를 받아들였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몇백 년 전의 왕조인 조선은 지나친 고기 소비 문화를 우려하여 최대 사형까지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소 도살방지법을 만들었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목숨 걸고(?) 고기를 굽는 이들의 용감함을 이길 수 없었다. 특히 정부 정책을 더 잘 따라야 하는 지배 집단부터 그다지 그 정책을 잘 지키지 않았고, 기회가 되면 소를 잡아 구웠다. 서울의 역사 음식 중에 불고기가 있는데, 이는 이런 오랜 고려, 조선시대를 잇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역사적인 구이뿐 아니라, 한국은 새로운 구이 문화를 수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돼지고기도 숙성해서 파는 집이 부지기수이며, 그 기술도 최첨단이다. 단순한 숙성이 아니라 ‘교차 숙성’이라거나 ‘4주 드라이에이징’ 같은 고급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동네 고깃집에 가도, 멋진 숙성 고기가 가게 입구를 차지하고 있으며 서점에는 숙성에 관한 전문 서적이 진열되어 팔리기도 한다. 원래 한국은 소를 아주 세분하여 분할, 각기 다른 근육과 섬유질, 지방의 특성에 맞는 용도로 나눠 먹는 민족으로 유명한데 이제는 돼지고기가 그렇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게 돼지고기를 분할하는 나라일 것이다. 돼지의 머리에서조차 열 가지 정도의 다른 모양과 씹는 맛, 풍미를 가진 부위를 나눠서 굽고 있다. 이것을 ‘뒷고기’라고 부르는데, 정식 루트로 판매되지 않는, 도살장 기술자들의 은밀한 취미에서 비롯되었다. 고된 일을 마치고 이 부위를 구워 먹으며 피로를 풀었다. 이제 뒷고기는 아주 인기 있는 부위가 되어서 심지어 스무 살 정도 되는 어린 학생들도 고깃집에서 이 메뉴를 고려한다.
여전히 외국의 고급 레스토랑은 셰프나 숙련된 웨이터가 테이블에서 고기나 생선을 잘라서 서빙하는 관습이 있다. 한국은 대중식당 같은 고깃집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개 ‘아줌마’나 ‘이모’라고 친숙하게 불리는 여성 홀 노동자들이 가위와 집게로 고기를 멋지게 잘라서 먹기 좋게 해준다. 이런 접촉을 통해서 손님과 가게는 더욱 친근해진다. 최근에는 한발 나아가서 테크닉을 제대로 익힌 직원이 솜씨 있게 커팅 나이프와 집게를 써서 테이블을 돌며 고기를 잘라주기도 한다. 한국은 외식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며, 진입한 인구도 많다. 이들은 늘 고민하고 새로운 방식과 서비스를 생각한다. 이런 역동성은 손님들을 더 끌어모은다. 구이 문화가 궁금하면, 한국을 방문해보라.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적용된 가게가 생겨나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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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VIA
갈매기 골목
나는 요리사이면서 음식 칼럼을 쓰는 사람이라, 주변에서 이런 부탁을 종종 듣는다.
“외국인 친구랑 같이 가볼 만한 식당 좀 소개시켜줘.”
원래 컴퓨터 개발자에게 컴퓨터 구매를 도와달라거나, 음악 전문가에게 좋은 가수를 알려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은가. 대중의 감각과 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부탁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래도 소개해주면 꽤 반응이 좋았던 곳이 있다. 종로3가의 속칭 ‘갈매기 골목’이다. 한국은 치킨만으로 충분하다. 갈매기는 조류가 아니다. 갈매기살은 돼지고기의 내장 안쪽에 붙어 있는 특수한 부위다. 외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내장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쫄깃한 감촉과 진한 맛 때문에 사랑받는다. 특히 저 갈매기 골목은 반할 만한 구조를 가졌다. 안으로 들어서면, Y자로 작은 골목이 갈라지는 독특한 구조, 환하게 밝혀놓은 등, 길바닥에 구이용 탁자를 늘어놓고 마음껏 떠들면서 마시는 손님들을 보면 몹시 흥분된다. 외국인에게 이 정도의 별천지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황홀한(?) 체험을 하게 된 친구며, 그의 외국인 동료들도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한데 두어 해 전에 이 골목에 가보고는 몹시 놀랐다. 내국인만큼이나 외국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유명한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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