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ARIRANG’은 그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선언문과도 같다. 수록 곡 ‘Aliens’에서 RM은 다음과 같이 랩을 한다. “눈만 또 허벌나게 큰 너희가 말하길 / Are they for real? For real?” 성공해도, 혹은 성공할수록 세상은 방탄소년단의 존재를 질문했다. “대체 뭐가 달랐냐고 자꾸 물어 / 나는 대답해, 나도 몰라”. ‘ARIRANG’의 수록 곡 ‘they don’t know ’bout us’의 가사는 서구의 기준으로 끊임없이 타자화되었던 방탄소년단의 위치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시작된 팀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은, 혹은 예상하지 못한 이변이었다. 방탄소년단이 ‘Aliens’에서 그들 스스로를 외계인에 비유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노래한다. “태생부터 다른 seven aliens / 우릴 부러워하네 저 civilians”. 그들은 이방인처럼 여겨진 자신들의 위치를 특별함으로 재정의하고, 이에 맞춰 기존의 프레임을 뒤집는다.

RM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의 예고편에서 그들을 “여전히 한국에서 온 촌놈”이라 표현했다. 그가 2021년 진행한 위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촌놈”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은 ‘ARIRANG’에서 방탄소년단이 보여주는 태도를 통해 자기 긍정의 서사로 확장된다. ‘Aliens’는 “If you wanna hit my house / 신발은 벗어놔”라며 서양과 달리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한국의 문화에 맞춰 “예의”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Hooligan’에서 이야기하는 “This that K”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2023년 RM은 ‘한국의 것’이라는 의미로 붙는 수식어 ‘K’가 지겹지 않느냐는 한 스페인 매체의 질문에 “프리미엄 라벨 같은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타향살이의 고충을 토로하는 한국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에서 모티브를 따온 앨범 ‘ARIRANG’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서구 중심의 음악 산업에 놓인 이방인이자 당사자의 시점에서 ‘K’를 재정의한다. 음악 산업에 균열을 만들어낸 접두사이자 “시대가 우릴 원”한다는 증거로.
‘ARIRANG’의 첫 트랙 ‘Body to Body’는 “I need”라는 가사의 반복으로 시작된다. 팀은 거대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스타디움, 그 공간을 채워줄 누군가에 대한 갈망은 멈추지 않았다. 이 갈망의 의미는 “총, 칼, 키보드”를 치우고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히자는 ‘Body to Body’의 메시지를 통해 재해석된다. ‘Body to Body’의 코러스 파트는 감정을 고조시키는 대신 “Somebody like you”를 반복하며 청자를 호명하는 데 집중하고, 이는 아리랑의 떼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리랑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는 한(恨)의 정서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이는 방탄소년단이 앨범 발매 전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 던진 “당신의 사랑 노래는 무엇입니까?(What is your love song?)”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Body to Body’는 “우리만의 그 style”, “솟구치는 겨레의 마음” 같은 가사를 통해 한국인 고유의 흥을 반영한다. 그러나 “인생은 짧아 증오는 비워”라며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자는 ‘Body to Body’의 메시지는 아리랑의 의미를 단순히 사랑에 대한 사무침이나 한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로 확장한다. 요컨대 ‘ARIRANG’에서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선언하는 것을 넘어, 모두가 음악으로 하나될 수 있는 연대를 노래한다.
여섯 번째 트랙이자 인터루드인 ‘No. 29’에서 대한민국의 국보 제29호로 지정된 성덕대왕신종(聖德⼤王神鍾)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방탄소년단은 무대 위에 선 아티스트로서의 열망과 애티튜드를 노래한다. 여전히 무대를 원한다는 선언으로 시작되는 첫 트랙 ‘Body to Body’에 이어, 지금까지 음악을 통해 서구 음악 산업에 도전해온 방탄소년단의 여정을 훌리건에 비유한 ‘Hooligan’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칼 소리 위에 얹힌 랩 파트가 교차되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는 때로는 대중을 매혹시키기도, 때로는 공격적으로 무대에 임하기도 해야 하는 아티스트의 이중성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한 숨소리와 엔진 소리로 시작되는 ‘FYA’는 하이퍼 저지 클럽 특유의 킥 패턴, 오토튠을 강하게 건 보컬, 반복되는 코러스 파트의 가사를 통해 마치 모두가 함께 모여 열광하며 춤추는 가상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그래 방탄처럼 그게 말은 쉽지 / 우린 뜀틀 누가 맨날 뛰어넘니”라는 가사로 대변되는,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감과 새로운 도약을 선언하는 ‘2.0’은 사실상 벌스와 코러스를 루프처럼 반복하는 구성을 통해 모두가 함께 떼창할 수 있는 챈트에 가까운 음악적 실험을 보여주기도 한다. ‘No. 29’ 이전까지 ‘ARIRANG’의 전반부는 사실상 방탄소년단이 무대에 서서 대중들을 호명하고,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관객과 하나되는 과정을 음악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처럼 보인다.

‘No.29’ 이전까지 앨범의 전반부가 아티스트로서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라면, ‘SWIM’의 서정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시작되는 후반부는 그들의 미시적인 내면에 집중한다. 수면 위에서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오며 목표를 이뤄왔다. ‘SWIM’은 그 뒤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무언가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버리고, 삶의 불확실한 흐름을 받아들이며 침잠하는 것은 어쩌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이는 ‘SWIM’의 가사가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파도를 받아들이는 행위에 대해 현재형이 아닌 희망형으로 노래하는 이유일 것이다. 회전목마처럼 멈추지 않는 인생의 굴레를 노래한 ‘Merry Go Round’는 총 세 개의 코러스를 두 번 반복하고, 그 사이에 짧은 한 개의 벌스만 둔 후 곡의 후반부에 감정적인 토로를 조금 더 길게 배치한다. 그러나 “매일 널 죽으러 가 / 꿈을 끌 순 없나 / 멈출 수 없는 춤을 추고 있잖아”라는 가사로 대변되는 이 감정은 클라이맥스를 맞이하지 않고 해소되지 않은 채 갑자기 여운을 남기며 끝나버린다. 그 어떤 열정과 성공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삶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Like Animals’의 가사가 본능대로 살아가는 자유를 꿈꾸며 결함을 긍정하거나, ‘NORMAL’에서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는 이유일 것이다.
‘ARIRANG’이 정체성과 내면을 다루는 방식은 곡의 형식에도 그대로 스며든다. 앨범의 전반부는 K-팝의 드라마틱을 내세우는 대신, 짧은 코러스 파트와 훅을 한 곡 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며 청자에게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집중한다. 반면 ‘No. 29’ 이후의 곡들은 멜로디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멤버들의 보컬은 곡의 분위기에 따라 감정의 섬세한 결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NORMAL’의 후반부가 멤버들이 노래하던 멜로디를 이어받아 일렉트릭 기타 솔로와 강한 드럼 사운드를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며 곡을 마무리하는 것을 제외하면, 감정을 극적으로 해소시키는 카타르시스적 구성은 마지막 트랙인 ‘Into the Sun’ 이전까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이제 파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SWIM’의 가사 그대로, 방탄소년단의 목소리는 감정을 담되 호소하거나 폭발시키지 않는다.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거쳐 도달한 ‘Into the Sun’에서 랩 파트를 제외한 멤버들의 화음은 느긋하지만 모든 구절을 꾹꾹 눌러 담듯 노래하다가 “Dawn”을 외치며 감정을 가볍게 날려보내고, 이어지는 랩은 나직하게 읊조려진다. 그리고 진이 “Never too far behind”의 고음을 터뜨리고 나면 잼 밴드의 사운드가 점차 추가되며 감정을 고조시키고, 멤버들은 태양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담하게 노래하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태양을 향해 뛰어도 / 가까워지진 않아도”, “어두운 밤”은 “잠시”뿐이라는 희망을 전하면서.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머금어진 감정들, 혹은 해방감과 담담함이 공존하는 이 모호한 정서의 결은 음악적 장치와 맞물리며 아티스트의 현재를 반영한다.
그래서 ‘ARIRANG’은 방탄소년단이 할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구 음악 산업 기준으로 이방인으로 여겨지던 이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이는 그들이 활동을 멈춘 기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정체성을 내세우면서 그들의 역사를 당사자의 관점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이를 보편적인 언어로 전달하며, 모두의 연대를 꿈꾼다. 동시에 그 어떤 성공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미시적인 내면을 보여주되, 그럼에도 절망을 수용하고 희망을 간직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치 인생에 흘러오는 파도를 있는 그대로 맞이하듯이, 저 태양이 멀리 보일지라도 계속 달려가듯이. 그렇게 방탄소년단의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이제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곱 명의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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