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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후령, 강일권(음악평론가), 김복숭(작가)
사진 출처에픽하이 유튜브

‘EPIKASE - 밥은 먹고 다니냐? ft. BTS RM, 슈가’ (에픽하이 유튜브)
송후령: “형, 유튜브 시대에 이렇게 적응했다고?” 유튜브 문법을 완벽히 체득한 에픽하이를 보며 RM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에픽하이의 자체 콘텐츠 ‘EPIKASE’에서 그들은 방탄소년단에게 그간 어디서도 묻지 않았고 앞으로도 묻지 않을 질문들을 능청스럽게 던진다. RM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령한 콘텐츠가 무엇인지, 멤버들끼리 일대일로 싸우면 누가 이길지 같은 유치하고 짖궂은 질문들. 이에 더해 대뜸 밥상을 물리며 RM과 슈가에게 세배까지 시키는 모습은 이들을 오래 지켜본 선배인 에픽하이만이 만들 수 있는 장면처럼 보인다. 에픽하이는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을 개척해야 했던 방탄소년단에게 거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을 테다. 그래서 이들이 풀어놓는 ‘BTS의 역사 에픽하이 버전’에는 당사자인 RM과 슈가조차 처음 듣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2010년 타블로의 작업실에서 만났던 교복 입은 슈가에 대한 기억이나, 2020년 방탄소년단이 ‘Dynamite’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던 시기 정작 RM과 슈가는 하루 차이를 두고 에픽하이를 찾아와 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일화는, 방탄소년단으로서의 화려한 모습 아래 그들의 치열한 삶을 어렴풋이 짐작케 한다. 

RM이 에픽하이가 없었다면 방탄소년단도 없었을 것이라 말할 만큼 누군가의 영원한 우상인 에픽하이가 요즘 세대에게는 ‘그냥 유튜버’가 되었다. 거창한 수식어를 내려놓은 그들은 “그냥 크리에이터”를 자처하며 ‘에픽하이 3.0’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EPIKASE’의 높은 조회 수는 그들의 진화를 증명한다. 공교롭게도 방탄소년단 역시 새 앨범 ‘ARIRANG’의 수록 곡 ‘2.0’을 통해 그들의 다음 챕터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했다. 자신만의 길을 터 나아간 선배들처럼, 방탄소년단은 앞으로 어떤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데뷔 24년 차의 에픽하이와 데뷔 14년 차의 방탄소년단, ‘에픽하이 3.0’과 ‘방탄소년단 2.0’의 시대. 끊임없이 변하고자 하는 열망, 하지만 변하지 않는 멤버들의 우정. 근 10년의 터울을 둔 두 팀이 이토록 닮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휘성 - ‘..안 되나요... (화양연화)’
강일권(음악평론가): 2002년 방송에서 휘성을 처음 봤을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는 콘로우 헤어와 힙합 패션으로 애절한 R&B 발라드 ‘..안 되나요... (화양연화)’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의 스타일은 달랐지만, 그의 모습은 갱스터 패션과 몸짓으로 소울을 부르는 디안젤로(D’angelo)를 떠올리게 했다. 정말 신선했다. 미국 R&B 음악계에서는 흔한 모습이었지만,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많은 대중은 이를 어색하게 여겼던 것 같다. 얼마 후부터는 헤어스타일과 패션 모두 단정하게 바꾸고 나왔으니까. 

파격적이었던 스타일만큼이나 휘성의 등장은 음악적으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여전히 R&B가 주류에 속하지 못하던 시기에 그는 R&B를 보다 대중적인 언어로 번역해냈다. 장르적인 완성도 또한 놓치지 않았다. 단순히 프로덕션과 창법을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의 호흡과 정서에 맞게 장르를 다시 빚어낸 것이다. 휘성의 R&B는 미국 R&B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한국 대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선을 놓치지 않은 음악이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목소리가 있다. 휘성의 보컬은 기술적으로 정교한 동시에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풀어낼 줄 알았다. 예컨대 그의 고음은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 감정이 도달한 극점과도 같다. 그리고 이러한 보컬을 중심으로 완성한 초기 3장의 앨범은 한국 주류 R&B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단지 장르를 구현하는 데 멈추지 않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갔다. 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는 성과였다. 

그러나 이제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새로운 노래로 돌아오지 못한다. 지난 3월 10일은 휘성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언젠가부터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게 되었던 아티스트, 무대 위에서는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만, 무대 밖에서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냈던 아티스트. 하지만 우리는 이제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던 보컬과 음악, 삶과 사랑을 압축하여 담아냈던 가사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한국 R&B가 한때 도달했던 밀도의 증거로서 남을 것이다. 

한국 R&B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기록될 휘성 aka Realslow, 그의 사망 1주기를 추모하며…. 

‘기쁨의 황제’ - 오션 브엉
김복숭(작가):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던 19세의 베트남계 미국인 하이는, 가상의 도시 이스트 글래드니스에서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에 서 있다. 80대 리투아니아 여성 그라지나가 그를 설득해 다리 위에서 내려오게 하고, 이후 하이가 치매를 앓는 그를 돌보게 되면서 우연처럼 맞아떨어진 이 순간은 점차 우정으로 자라난다. 시인이자 작가인 오션 브엉의 두 번째 소설 ‘기쁨의 황제’는 제1세계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번져 나오는 희미한 희망의 순간들을 집요하게 비춘다. 문장은 시처럼 흐르고 때로는 낯설며, 거의 매 순간 가슴을 저며내듯 다가와 스민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까지 아우르는 시선으로 중독, 세대 간의 상처, 자기기만 그리고 ‘선택된 가족’이라는 개념을 끝까지 파고든다. 전쟁이 찢어 놓은 과거가 환각처럼 되살아나는 장면에서부터, 소화하기 힘들 만큼 충격적이지만 그만큼의 깨달음을 남기는 도축장 장면에 이르기까지, 브엉은 이 반자전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의 연작 속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렇게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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