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장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다. 사실 이 문장은 전제부터 틀렸다. 심장은 손에 쥘 수 없으니까. 그런데도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심장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래 심장은 통제 밖의 영역이다. 통제 불능의 떨림이 마구 요동칠 땐 어찌할 방도가 없다. 얼굴을 가리거나 심장 부근에 두 손을 겹쳐 갖다 대더라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재밌는 점은 심장이 아무리 거세게 고동친다고 한들 그 소리가 외부로는 새어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장의 세차고 격렬한 아우성을 오로지 나만 느낄 수 있다. 심장 소리는 가장 내밀한 리듬이자 고요한 갈망이다.
그럼에도 심장을 통제 가능 영역에 놓아두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번의 눈빛이, 한 번의 맞닿음이 생의 전부가 된 듯 감정의 폭죽을 터뜨리고, 그 잔해가 떼어지지 않을 때. 다 잊고 살아가고 있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나 자신까지 속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누군가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는 진부한 말을 하곤 하지만, 정작 시간은 그 잔해의 유구함을 증명할 뿐이다. 폭죽으로부터 피어난 복합적인 감정의 근원은 심장에 있다.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면, 내가 아는 단어로는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이 감정들을 통제하기 위해 심장을 불쑥 꺼내 놓고 싶어진다.
원필의 첫 번째 미니 앨범 ‘Unpiltered’에는 감정의 폭죽, 그로 인한 잔해가 담겨 있다. 중독, 붕괴, 침식, 벅참, 회복, 취약함, 그리움 같은 감정의 조각들은 색의 스펙트럼을 품고 산점도를 그린다. 설렘과 즐거움으로부터 촉발되던 것이 괴로움으로 혹은 고통으로 종착하는 그림. 혹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이름의 정서. 그래프 위에 만들어지는 모양은 또다시 심장이다. ‘Unpiltered’ 속 화자는 이 감정의 근원을 떼어내기 위해 심장을 손에 쥐고 만다. 다르게 말하면, 그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감정의 근원을 그대로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일기 또는 연서를 쓰는 마음으로
2022년 발매된 원필의 솔로 앨범 ‘Pilmography’의 감정은 보들보들한 촉감에 가깝다.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을 폭신한 이불처럼 잠재웠다. “괜찮아질 거야”(‘언젠가 봄은 찾아올 거야’), “언젠간 그려질 거야”(‘그리다 보면’)라는 미래형 문장이나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 테니 기대해 줘”(‘행운을 빌어 줘’) 같은 다짐으로. 헤어지는 순간조차 “너의 내일은 훨씬 더 나을 거”(‘안녕, 잘 가’)라며 상대방의 행복을 빈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이야기가 한데 묶인 다정한 다이어리 같았다.
그와 반대로 ‘Unpiltered’는 현재형이다. 뾰족하고 산발적이다. 마구 붙여진 모자이크에 가깝다. 감정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다. 통제 욕구다. 감정에 깊게 빠지지 않게 밀어내려고도 하고(‘Toxic Love’), 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오려 성큼 다가가기도 한다. (‘Up All Night’) 고백을 앞둔 귀여운 상황에서도 “심장아, 절대 들켜선 안 돼”(‘백만송이는 아니지만’)라며 감정을 차분히 정제한다. 이러한 통제는 비단 애정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른이 되는 건 재미없어”(‘어른이 되어 버렸다’) 하며 부정하면서도 “전장 속으로 뛰어든”(‘Step by Step’)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행위는 화자가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품고 있는지 증명할 뿐이다. “나의 피아노 소리가 너를 부르고 있잖아”(‘피아노’) 하며 외치듯 고백하고, 직설적으로 “날 구해 줘”(‘사랑병동’)라 외치는 것은 감정 통제에 실패한 화자의 항복 선언에 가깝다.
이처럼 ‘Unpiltered’는 직선적이고 꾸밈없다.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써 내려가는 것은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은 일기를 쓰는 마음과 같다.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누군가 열어봐줬으면 하는 모순. 열린 일기장을 쓰는 마음은 어쩌면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는 마음과 닮았다.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뒷걸음질치는 것. 내가 꼭꼭 숨더라도 발견해줬으면 하는 마음.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 선 앞에서 나를 기다려줬으면 하는 기대. 이 모순은 사실 가장 솔직한 형태의 갈망이다. 이해받고 싶다는 것. 목격받고 싶다는 것. 내 심장 소리가 누군가에게도 들리기를 바라는 것.
심장 소리를 악보에 옮기는 법
‘Unpiltered’ 속 음악들은 규칙적이지 않고 예상을 빗나간다. 한없이 끓어오르다 금세 차분해지기도 하고 다시 울부짖듯 흘러버리는 마음을 닮았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Toxic Love’는 DAY6에서 구사하던 록 장르이지만, 곡의 바탕이 되는 드럼 패턴은 힙합을 기반으로 하고 그사이를 가로지르는 기타는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며 거친 사운드를 발산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타이틀 곡 ‘사랑병동’에서도 거친 질감은 유지된다. 다만, 사운드를 더 풍성하게 축조해 감정의 품을 빼곡히 채운다. 축조 방식은 순차적이다. 기타로 시작해 그 위에 드럼을 쌓고 키보드를 올린 후 한데 뭉쳐 폭발하는 듯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 곡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원필의 본래 역할이기도 한 신시사이저다. 한 번의 후렴이 지난 후 폭발한 감정의 잔해를 표현한 듯 날카로운 신시사이저가 절망의 격동을 그리고, 이내 사이렌 소리를 연상시키는 음이 곡 제목을 환기한다.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다 체념해 버리는 노랫말과 겹치며 감정은 더 극대화된다.

‘어른이 되어 버렸다’부터는 장르가 변주된다. 힙합 붐뱁 장르에 스크래치 사운드를 더해 분위기를 전환한다. 이는 밴드 음악을 구사하는 아티스트의 새로움을 향한 장르적 시도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와 아티스트가 과거에 애청하던 장르가 맞물려 ‘김원필’이라는 사람이 건너온 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라틴 리듬이 가미된 기타가 전면에 등장하는 네오소울 기반의 ‘Up All Night’에서는 묘한 긴장감을 묘사하는 상황을 노래하며 낯선 감각을 여는 듯하다.
모든 악기가 마구 변화하며 몰아치면서도 일관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내는 ‘Step by Step’, 펑키한 사운드에 브라스 세션이 얹어져 1980년대 R&B 장르를 연상시키는 ‘백만송이는 아니지만’은 각각의 악기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밝은 멜로디를 구축하는 듯하지만, 그 분위기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악기가 정교하게 맞물리며 제 역할을 한다. 리드미컬한 기타를 묵직한 드럼이 받치고 있다거나, 드럼을 더 강하게 내보내기 위해 브라스가 함께 달리는 식이다. 건반이 사운드 사이사이 등장하며 빈틈을 메우기도 한다. 그래서 앨범의 마지막 곡 ‘피아노’가 비교적 간소하게 들리지만, 이는 그리움과 쓸쓸함을 극대화하는 데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덜어낼수록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들이 있다.
그간 DAY6의 노래는 외부와의 관계 맺기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게 청유하거나 미래를 그리거나. 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Unpiltered’는 내부와의 관계 맺기다. 내밀한 감정을 똑바로 직시하고 감정의 윤곽을 날것 그대로 담아낸다. 그래서 직설적이고 직접적이다. 원필은 꼭꼭 숨겨 놓고 있던 심장의 소리를 음악으로 형상화한다. 그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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