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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츄 X

“아마도 난 너를 사랑하나 봐. 이런 게 사랑이란 감정일까?” 그 누구보다도 사랑을 잘 알 것 같은, 아니 사랑을 인격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녀가 꿈결 같은 목소리로 사랑을 궁금해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계절과 정처 없는 대자연 어딘가, 유독 홀로만 다르게 흐르는 프레임의 뮤직비디오는 소녀의 사랑이 이 세계의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도시의 여러 곳에서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낸 소년과 소녀는 사실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 속 스테판과 스테파니처럼, 정말로 꿈꾸고 있었다. 아날로그한 공간인 도서관에서 두근거림을 느낀 소녀는 이내 화려한 파티장에서 이질적인 인공 피부를 확인하고 당황한다. 이런 게 정말 사랑이란 감정일까? 대답은 목소리가 아니라 디스플레이 속 채팅으로 머무른다. 내 신호가 너에게 닿기를. 디지털로 열심히 진심을 전해본다. 키스와 포옹, XO, 이진법이 교차하는 지점. X와 O.

츄의 첫 정규 앨범 ‘XO, My Cyberlove’와 동명의 타이틀 곡은 환상 속의 고독을 다룬다. 그 옛날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처럼 유일한 순간도 아니고, 단지 유일한 장소도 아니다. 스파이크 존즈의 13년 전 영화 ‘그녀’가 예견한 세상이 현실로 성큼 다가온 지금, 백 마디의 소통보다 대규모 언어 모델의 ‘대답’에 위로받고 때로는 둘만의 미래까지 그려보는 이 독특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노래의 주인공이다. 지난 앨범 ‘Only cry in the rain’에서 아스키 아트 시절 오묘한 상실의 감정을 노래했던 츄가 디지털 단절의 시기를 노래하는 뮤즈로 성장한 것이다. 

츄를 수식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표현은 ‘귀엽고 사랑스러운’이다. 해맑은 미소로 주저 없이 다가가 상대의 마음을 풀어 놓는 매력은 아이돌 씬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이것이 츄가 “시간의 흐름도 모를 만큼” 강렬한 사랑 공격 앞에 운명을 약속한 ‘Heart Attack’으로 데뷔한 원인이고, 진중하고 신비로운 세계관의 이달의 소녀가 yyxy 유닛 활동의 ‘love4eva (Feat. Grimes)’와 밝은 단체 곡 ‘Hi High’를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츄의 매력이 여기서 더 한 발자국 나아가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강점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확보하며 성장의 증거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쟁취하는 덕분이다. 

2024년의 인터뷰에서 츄는 ‘귀엽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제게 더 잘하고 싶은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 제가 하는 일을 칭찬해주는 언어라고도 생각해요. 그래서 더 노련해지고 싶어요. 아직은 매번 미숙함을 느끼거든요.” 언제나 해맑은 미소로 주위의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면서 힘든 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함께하는 이들의 신뢰를 얻는 과정, 다소 난해한 음악과 메시지, 어려운 방송이라도 도전하는 자세,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는 긍정적인 태도. 이 모든 성장과 노력의 과정이 츄에게 ‘귀엽다’와 ‘사랑스럽다’라는 훈장이 되어 돌아온다.

츄는 이러한 서사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반대로 그 사랑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의도된 불일치’의 음악으로 증명해왔다.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 ‘Howl’의 첫 노래 가사는 무한한 사랑이 아니라 “이대로 세상이 망해도 잘 됐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애”라는 지독한 절망 속에서 “상처만 남은 우린 이제 서로를 구해볼까 해”라는 진실한 의미의 사랑이었다.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면을 끄집어낸 귀여운 괴물 캐릭터와 함께 돌아온 곡은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Strawberry Rush’였다. 처음에는 ‘지구를 지켜츄’였다 이제는 ‘지켜츄’로 이름을 바꾼 츄의 유튜브 채널 이름을 생각해보자. 츄는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항상 활기가 넘치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 안으로는 누군가를 지키고 응원하는 강인함을 가진 존재다. 이와 같은 주제 의식이 비가 내릴 때는 울어도 괜찮다는 ‘Only cry in the rain’의 멜랑콜리한 극복으로 넓어졌고, 이번 정규 앨범을 통해 츄가 정의하는 사랑의 면모가 다시 한번 명확해졌다. 

디지털 시대의 사랑을 쓸쓸한 메시지에 실어 보내는 타이틀 곡과 함께 ‘XO, My Cyberlove’ 앨범 곳곳에서도 사랑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운명 같은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신인 츄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빗소리에 마음을 녹여 타인에 스며들고자 하는 ‘Heart Tea Bag’에서 ‘Only cry in the rain’보다 훨씬 깊어진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상처받은 상대를 위해 굳은 다짐을 노래하는 ‘Canary’와 겨울이 끝나면 녹아 사라지는 눈사람에 이입해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사랑을 다룬 ‘첫눈이 오면 그때 거기서 만나 (Loving You!)’ 등 달콤하고 쌉싸름한 사랑의 맛이 퍼진다. 쓸쓸함을 노래하지만 우울함에 잠식당하지 않고, ‘Cocktail Dress’와 ‘Limoncello’처럼 형형색색의 사랑 스펙트럼을 펼쳐 보이는 다양한 음악은 능동적으로 사랑을 탐구하는 캐릭터와 일치한다. 그래서 'XO, My Cyberlove'가 마냥 슬프지 않은 인공지능 시대의 우화로 웃으며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은 츄가 택하는 메시지와 더불어 음악적 선택으로도 완성된다. 아프로비츠, 하이퍼팝, R&B,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보컬의 역량을 바탕으로 여러 실험을 펼쳐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츄의 음악 중심에는 신스팝이 있다.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나른한 무드와 공간감 있는 악기 구성, 이에 맞춰 목소리의 완급 조절을 유연하게 수행하는 츄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장르다. 직관적이고 폭발적이었던 ‘Heart Attack’과 신비로운 ‘Howl’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듯, ‘Strawberry Rush’와 ‘Only cry in the rain’, ‘XO, My Cyberlove’까지 츄의 노래는 신나면서도 잠시 가만히 멈춰 생각하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다가도 퍼포머의 매력에 집중하게 만든다. 댄서들의 팔동작으로 좁은 디스플레이 위에서의 소통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입체적인 퍼포먼스와 더불어 이를 노래하는 선율과 메시지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흔히 말하는 ‘사랑의 양면’ 같달까. 

‘XO, My Cyberlove’의 무대는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아련한 츄의 모습과 함께 끝이 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밴드 The 1975가 7년 전 파괴적으로 예언했던 ‘The Man Who Married A Robot / Love Theme’를 떠올렸다. “인터넷, 넌 나를 사랑하니?”, “그럼요, 저는 당신을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해요. 저는 정말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절대로, 영원히,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츄의 사랑은 다르다. 과도한 불안도, 입력된 애정도 아니다. 사랑이 궁금하고, 사랑을 알고 싶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야기가 픽셀 단위로 쪼개져 화면 너머로 날아온다. 외로운 우리들은 물론, 고독해할 가상 세계의 누군가에게까지 가닿는 온기가 따스하다. 이런 사랑이라면 꿈결이라도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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