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년 전 그들은 각자의 항해를 떠났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혹은 ‘고래’와 같은 몸집으로 너른 바다를 헤엄쳐 나갔다. 특히 이찬혁은 두 개의 솔로 앨범 ‘ERROR’와 ‘EROS’를 내놓으며 자신만의 영법으로 수영했다. 이전까지 비교적 공감하기 쉬운 메시지를 전하던 AKMU 속 이찬혁을 내려놓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써 내려간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라고 소리치기도 하고(‘파노라마’), “사랑의 종말”을 노래하기도 했다. (‘멸종위기사랑’) 이 두 앨범이 품은 메시지의 공통적인 시작점은 죽음이었다. 나의 죽음으로부터, 혹은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촉발된 이야기.
그사이 이수현은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해 갔다. 부레가 망가진 물고기처럼 나아갈 방향을 잃고 가라앉았다.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이수현은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실제로 햇빛을 안 보고 오랫동안 살았다.”라고 회상하며 “방 안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처럼 지냈다.”라고 고백했다. 시작은 일에 대한 슬럼프였다. 항해를 시작하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끝없는 밤이 이어졌다.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당도했다.
이찬혁은 본인의 생각과 감정, 상황을 음악으로 구축하던 사람이다. AKMU의 음악적 정체성은 자연스레 이찬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생인 이수현은 노래를 이해하는 데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먼저 경험한 것을 이후에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AKMU의 네 번째 정규 앨범 ‘개화’는 철저히 이수현을 위한 메시지다. 구체적으로는 이수현이 오래도록 품은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이찬혁의 답이다. 살 수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이찬혁은 죽음이라는 소재를 서랍 속에 접어두고, 삶의 조각을 하나씩 꺼내어 동생과 함께 퍼즐을 맞춘다.

TV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 수 있다.’ 또는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는 이미 어둠 속으로 잠식한 사람에게 흐리멍덩하고 텅 빈 말일 뿐이다. 세상은 많은 것을 요구한다. 더 성장할 것, 더 이룰 것,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TV 속 인물들은 대단한 서사를 써 내려가고, SNS 속 사람들은 매일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 ‘산다’라는 동사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점점 무거워지는 것만 같다. 그 무게를 등지고 커튼을 친 채 누워 있는 사람에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그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또 하나의 숙제로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이찬혁은 삶은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멋진 저녁 식사를 즐기는 것, 외투 속에 스며든 풀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는 것(‘벌레를 내고’), 뜨거운 햇볕에 땀을 흘리거나 가끔 맹해도 괜찮은 것(‘햇빛 bless you’). 이런 사소한 것들이 삶을 채운다고. 오히려 기쁨도, 슬픔도, 모두 겪어내야 단단한 돌이 될 수 있고(‘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세상엔 못되기만 한 사람은 없는 데다(‘옳은 사람’), 우리는 모두 비슷하게 태어났다는(‘봄 색깔’) 삶의 진리를 노랫말 속에 담아 이수현의 입으로 직접 노래하게 한다. 말로 내뱉고 귀로 들으며, 꼭 이수현이 자신을 다독이는 것처럼.
이러한 삶의 진리는 ‘소문의 낙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말로만 듣던 ‘소문의 낙원’은 화려하고 대단한 걸 쥐여 주며 마냥 행복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그저 지친 마음에 따뜻한 수프와 고기를 먹일 수 있는 곳이자, 오랜 걸음으로 물집이 잡히지만 도시를 떠나왔기에 알 수 있는 깨달음이 있는 곳이다. 최종 목적지에 1등으로 도착했어도, 제일 늦게 도착했어도 모두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동일해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와 무관하게 우리는 각자의 걸음으로 생을 걷는다. 문득 스치는 봄꽃 냄새, 오늘 먹은 맛있는 저녁 식사, 우연히 들은 좋은 음악. 이런 사소한 것들로도 삶은 충만하다. 이러한 메시지는 그들이 직접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와 맞물리며 진정성을 덧칠한다. 이찬혁이 쓰고 이수현이 부르는 위로의 이야기는 그렇게 듣는 이들에게까지 향한다.

초원에서 피어난 음악
AKMU는 사실 장르로 구분될 수 있는 뮤지션은 아니다. 대중에게 처음 각인된 모습은 기타 하나 메고 노래하는 어쿠스틱 듀오였다. 그러나 이후 보여준 모습은 전혀 달랐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같은 댄스 곡을 소화하기도 하고, 재즈풍의 ‘RE-BYE’를 부르기도 했다. ‘DINOSAUR’는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애절한 발라드다. 구태여 정의하자면, 그들은 메시지를 설계하고 그 말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장르를 덧입히는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개화’에서 선택한 음악은 아메리칸 루츠 뮤직(American Roots Music), 다시 말해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는 장르들이다. 나른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문의 낙원’, 웨스턴 스윙이 가미되어 귀여운 멜로디를 연출한 ‘벌레를 내고’는 컨트리 장르에 가깝고, 비교적 빠른 비트에 신나는 ‘봄 색깔’과 ‘햇빛 bless you’는 로큰롤의 초기 장르인 스키플(Skiffle)을 떠올리게 한다. 기타와 피아노 등 최소한의 악기만 자리한 ‘Tent’는 포크, ‘옳은 사람’과 ‘얼룩’은 빠른 템포가 특징인 로커빌리(Rockabilly)의 향이 느껴진다. 피아노 선율의 서정적인 발라드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나 빅 밴드 편성의 ‘우아한 아침 식사’ 같은 곡들은 아메리칸 루츠 뮤직과 비교적 거리가 있지만, 그 뿌리에서 비롯된 가공되지 않은 음악들이라는 점에서 앨범의 결은 하나로 모인다.
20세기 초, 미국의 척박한 토양에서 탄생한 이 장르들은 화려한 산업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블루스, 컨트리, 포크로 대표되는 아메리칸 루츠 뮤직은 고된 노동 끝에 얻은 짧은 휴식, 상실의 고통,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하던 보통 사람들의 언어나 마찬가지였다. 값비싼 음향 장비가 아닌 통기타 한 대와 투박한 목소리, 일상의 말들로 완성되던 이 음악들은, 거창한 서사보다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두던 시대의 기록이다.
이처럼 투박한 질감의 음악은 이찬혁이 써 내려간 위로에 청각적 근거가 된다. 동시에 이찬혁은 가공되지 않은 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바닷속으로 깊이 침잠하고 있던 이수현을 초원 위에 일으켜 세우는 것만 같다. ‘뿌리’로 돌아간 음악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삶은 거창한 성취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감각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라고. 피부에 맞닿는 바람을 느끼는 것, 뜨거운 햇볕에 땀 흘리는 것, 계절마다 꽃향기를 맡는 것, 식탁에 앉아 음식을 씹고 삼키며 나를 돌보는 것. 삶은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기 이전에 감각하는 것이다. 뿌리가 있는 한, 꽃은 언제든 다시 피어난다. 뿌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햇빛, 물, 흙 같은 당연한 것들이다. ‘개화’는 그 자명한 자연의 섭리를 오래 곱씹으며 이수현을, 그리고 우리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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