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올해 ‘서재페’에서 주목할 R&B/소울 아티스트
제네비브부터 유라까지, 당신이 기억해야 할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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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Interscope Records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선 거대한 도시형 음악 축제로 진화했다. 재즈는 물론이고 팝, R&B/소울 등의 장르가 가장 매력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매해 ‘유명한 이름’ 이상의 의미를 지닌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대거 포함되어 장르 음악 팬들을 즐겁게 해왔다. 

2026년 라인업 역시 마찬가지다. 가슴을 뛰게 하는 연주자, 밴드, 싱어송라이터가 ‘서재페’를 찾을 예정이다. 그중 반드시 주목해야 할 R&B/소울 아티스트를 엄선해 소개하려 한다. R&B를 가장 흥미로운 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이름들이다.

제네비브(Jenevieve) 
밤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감정을 드러내는 도시처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에 더 다양한 감정을 자아내는 음악이 있다. 낮에는 스쳐 지나간 감정의 결이 새벽 공기 속에서는 갑자기 선명해지듯 말이다. 제네비브의 음악이 그렇다. 

그의 노래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종종 시간을 착각한다. 분명 2020년대에 발표된 곡임에도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공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네비브는 당대의 음악은 물론 옛 소울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부모님 덕분에 올드팝으로 가득 찬 유년기를 보냈고, 자네이(Zhané)와 조(Joe) 같은 1990년대 R&B 아이콘의 음악에 심취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음악이 단순히 복고를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질감을 현재의 감정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는 새롭게 들리고, 이전 세대에게는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을 환기시킨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안리(Anri)의 ‘Last Summer Whisper’(1982)를 샘플링한 히트 싱글 ‘Baby Powder’가 대표적이다. 몽환적인 신스와 부드러운 베이스라인, 속삭이듯 흘러가는 보컬이 조화로운 이 노래는 마치 오래된 네온사인 같다. 흐릿하지만 매혹적이며, 낡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다.

제네비브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음악 산업의 문을 두드렸다. 열세 살 무렵, 가족에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후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데모를 계기로 관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오늘날 팝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대한 스타 메이킹 서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제네비브의 등장은 조용했고,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의 음악도 그렇다. 사운드를 빽빽하게 채우기보다 적절한 여백을 남겨두고, 그 빈 공간 속으로 듣는 이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다. 보컬의 매력도 상당하다. 제네비브는 한 음절을 길게 끌며 분위기를 만들고,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곡의 온도를 바꾼다. 어떤 순간에는 노래라기보다 귓가에 가까이 다가온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오늘날 알고리즘은 음악을 점점 더 세분화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할 만한 곡만 추천받고, 익숙한 취향 안에서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제네비브의 음악은 이상하게도 그런 소비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대신 한밤의 공기처럼 천천히 방 안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잊고 있던 감각을 조용히 되살린다. 

엘라 마이(Ella Mai)
사랑이 언제나 거대한 사건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새벽에 혼자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순간처럼 작고 사소한 형태로 기억된다. 엘라 마이의 음악은 바로 그런 감정의 잔향 위에서 시작되어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가 담아내는 사랑 이야기 속에는 복잡한 은유나 과장이 없고 불필요한 비극도 없다. 대신 솔직함이 남는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오늘날 R&B 씬에서 생각보다 훨씬 드문 감정이다. 엘라 마이를 단숨에 세계적인 이름으로 끌어올린 ‘Boo’d Up’ 역시 단순함과 솔직함이 곡의 핵심이었다. 트랩 리듬 위에 우울과 허무를 얹는 스타일이 주류 R&B의 공식처럼 자리 잡던 시기. 그는 사랑에 빠졌을 때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감정의 온도를 있는 그대로 노래했다.

보컬 역시 감정의 밀도를 조절하는 데 능숙하다. 목소리를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적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편안하게 들리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롤링스톤’ 매거진이 그를 두고 “현대의 R&B 전통주의자(a modern R&B traditionalist)”라고 표현했듯이 엘라 마이의 음악에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R&B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음악적으로 제네비브와 동일한 시대성을 공유한다. 다만 엘라 마이가 주류 R&B 프로덕션을 끌어안는 것에 좀 더 적극적이다.

그는 2014년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더 엑스 팩터(The X Factor)’에 걸그룹 멤버로 출연한 바 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마이에게 이 실패는 경력의 끝이 아닌 다른 시작이었다. 이후 SNS에 노래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했고, 바로 그 영상들이 스타 프로듀서 DJ 머스타드(DJ Mustard)의 눈에 들어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과거 음악 산업이 거대한 방송 시스템과 오디션 프로그램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엘라 마이는 비교적 사적인 공간인 SNS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냈다. 그리고 오래 스며들어 잔향을 남기는 음악을 통해 현대 대중음악계를 통과하고 있다. 

에밀리 킹(Emily King)
오늘날 대중음악 산업은 아티스트에게 끊임없이 확장을 요구한다. 더 빠르게 시선을 붙잡아야 하고, 더 즉각적으로 감정을 자극해야 하며, 더 강렬하게 존재를 각인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팝스타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볼륨을 키운다. 더 강한 비트, 더 선명한 후렴, 더 거대한 퍼포먼스.

그러나 어떤 아티스트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소리를 낮추고, 감정을 절제하고, 좀 더 차분한 공간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 에밀리 킹은 그런 유형의 아티스트다. 그의 보컬과 음악에서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절제라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성숙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에밀리 킹의 음악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정의 파고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악기와 악기 사이, 목소리와 침묵 사이에 남겨진 공기가 느껴진다. 마치 오래된 재즈 혹은 소울 클럽의 호흡과 닮아 있다. 아티스트의 숨소리마저 자연스럽게 음악의 일부가 되는 공간 말이다. 그래서 에밀리 킹의 음악은 현대적인 R&B와 팝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오래된 감각을 품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사운드임에도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체온이 남아 있다.

열여섯 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에 몰두했던 그는 뉴욕의 작은 공연장들을 돌며 노래했고, 힙합 전설 나스(Nas)의 ‘Street’s Disciple’(2004)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2007년에 발표한 정규 데뷔작 ‘East Side Story’가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컨템포러리 R&B 앨범’ 부문 후보에 오르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에밀리 킹은 이후 전형적인 메이저 팝스타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메이저 레이블 시스템에서 벗어난 뒤 프로듀서 제러미 모스트(Jeremy Most)와 함께 보다 자급자족에 가까운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이 시기의 독립적인 행보는 그의 음악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중 하나다. 

많은 팝 음악은 발표 당시의 유행을 붙잡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에밀리 킹의 노래는 특정 시대의 트렌드보다 인간이 지닌 감정의 결을 우선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많은 의미를 얻는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들어도 쉽게 낡지 않는다. 삶의 다른 순간과 다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에밀리 킹의 음악이 시간을 견디는 방식은 이토록 인상적이다. 

갈다이브(Galdive)
동남아시아 대중음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내재적인 가치를 발달시켜왔지만, 그 가치가 다소 대상화되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출신 듀오 갈다이브는 그런 익숙한 구도를 자연스럽게 비껴간다. 

싱어 티샤(Tisha)와 프로듀서 오스발도 리오(Osvaldo Rio Nugroho A.)로 이루어진 갈다이브는 2018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덴마크의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갈리마티아스(Galimatias)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팀명 역시 ‘Galimatias’와 ‘Maldives’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름은 의외로 그들의 음악 세계를 잘 설명한다. 갈리마티아스 특유의 세련된 전자음향 감각, 그리고 몰디브를 떠올리게 하는 유영감. 갈다이브의 노래에는 늘 물결 같은 움직임이 존재한다. 비트는 유연하게 흐르고, 신시사이저는 안개처럼 퍼지며, 티샤의 목소리는 감정을 속삭이듯 떠다닌다. 현대 R&B 특유의 미니멀한 구조 위에 더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질감을 덧입힌 셈이다. 

나아가 글로벌 인터넷 세대의 감각과 스트리밍 시대 이후의 청취 습관,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흐리는 얼터너티브 R&B의 문법까지 유연하게 흡수했다. 때로는 자신들의 문화적 배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두 번째 앨범 ‘Blue’에서의 시도가 좋은 예다. 듀오는 수록 곡 ‘Night Charade’를 만들면서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인 술링, 탈렘퐁, 켄당, 앙클룽을 활용했다. 

인터넷과 스트리밍 플랫폼은 음악 산업의 중심 구조 자체를 바꿨다. 이제 많은 음악 팬은 국적보다 분위기와 알고리즘을 통해 음악을 만난다. 그리고 갈다이브는 바로 그 변화 위에서 성장한 팀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동안 갈다이브가 인도네시아 팀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23년 한국 R&B 스타 딘(DEAN)과의 협업(‘Die 4 You’)도 듀오의 음악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R&B, 드림팝, 일렉트로닉, 네오 소울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며 몰입을 유도하는 갈다이브의 음악은 앞으로도 쉽게 소모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루 중 가장 솔직해지는 시간에 조용히 흘러나와 마음을 어루만져줄 것이다.

유라(youra) 
음악이 언제나 감정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분위기를 흔들고, 이미지를 남기거나 사유할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종종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때가 있다. 싱어송라이터 유라의 노래들처럼 말이다. 

더 선명한 후렴, 더 직관적인 메시지, 더 즉각적인 반응 등 명확함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한국 주류 대중음악의 방향이라면, 유라는 대부분 정반대 지점을 향하고 있다. R&B, 얼터너티브 팝, 실험적인 재즈, 아방가르드 팝을 넘나들면서 오히려 흐릿함을 자신의 언어로 만들었다. 마치 감정을 너무 쉽게 소비해버리는 시대에 대한 조용한 저항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독창적 시도가 거리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라의 음악은 복잡하고 난해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유라의 음악이 지닌 가장 큰 힘일 것이다. 특히 양가적 감정을 자아내는 보컬과 가사는 미세한 균열처럼 다가와 어느 순간 마음 깊숙한 곳까지 번져 들어간다. 2022년 재즈 트리오 만동과 협업한 EP ‘이런 분위기는 기회다(The Vibe is a Chance)’와 2023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는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유라는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의 감각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한국 대중음악 안에서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때로는 차갑고 몽환적이며, 때로는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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