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아일릿의 확장 공식
2026년 상반기, 아일릿이 확장한 팀의 언어
Credi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빌리프랩

지난 4월 30일, 아일릿은 미니 4집 ‘Mamihlapinatapai’와 타이틀 곡 ‘It’s Me’로 돌아왔다. 데뷔 곡 ‘Magnetic’부터 이 팀을 감싸온 몽환적인 소녀적 판타지의 세계 대신, 차갑고 기계적인 테크노 비트가 쏟아져 나왔다. 발매 직후에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낯설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리나 활동 종료 후인 발매 6주 차에 접어들며 음악 방송 1위 트로피를 연이어 거머쥐었다. 이러한 시차는 아일릿의 2026년 상반기를 요약하는 주요 지표다. 과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이 팀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It’s Me’는 의외의 경로로 살아남아 증식했다. tvN 예능 ‘놀라운 토요일’에서 진행자 붐이 곡에 얹은 추임새는 밈이 되어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는 곧 댄스 챌린지로 발전했다. 특히 이정현의 ‘와’에 ‘It’s Me’의 안무를 결합한 매시업 유행은 세대를 넘나드는 화제성을 입증했다. 곡을 둘러싼 대중의 모든 반응이 곧 흥행의 연료로 작용한 셈이다. 예상하지 못한 장르와 분위기라 할지라도 이를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연결 고리가 주어지자 노래가 밈으로 확산되면서 그 자체의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한 흥미로운 사례다.

변화의 징후는 앞서 2025년 11월에 발매한 ‘NOT CUTE ANYMORE’에서부터 감지되었다. 이 곡에서 아일릿은 주어진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겠다며 ‘귀여움은 죽었다.’고 묘비를 세웠다. 이는 데뷔 초의 출발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적으로 전파된 이미지의 이면에서 다채로운 자아를 꺼내 보이겠다는 선언이자 앞으로 전개될 모험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였다. 팀 스스로 ‘It’s Me’를 두고 “스펙트럼이 한 뼘 더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팀 고유의 문법을 확장하는 기류 속에서 멤버 개개인의 매력도 뚜렷하게 드러난 것 역시 이 시기의 성과다. 일례로 윤아는 강렬한 비트 위에서 당돌하게 애정을 선언하는 ‘It’s Me’의 콘셉트를 통해 자기에게 완벽히 들어맞는 옷을 찾았다. 윤아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의 중심을 탄탄히 지키면서, 높은 조회 수의 단독 직캠 영상들을 탄생시켰다.

동시에 원희는 팀에 독특하고 유쾌한 서사를 불어넣었다. 그가 예능을 통해 보여준, 겉보기엔 순하지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특성은 이른바 ‘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로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예능적 페르소나는 ‘It’s Me’의 훅인 “Who’s your bias? I’m your bias!”가 내포한 유쾌한 공격성과 맞물린다.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스스로 대답을 규정하는 화법은, 연애 관계에서의 직진을 넘어 팬덤 문화의 언어를 차용해 “너는 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대중적 이미지를 견인하던 멤버의 리얼리티에서 구축한 캐릭터가 팀의 음악적 서사와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면서, 대중은 팀 전체를 더욱 입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두 사례 모두 팀의 확장과 멤버의 성장이 잘 맞물려 돌아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러한 기세 속에서 르세라핌, KATSEYE와 함께한 합작 싱글 ‘ICONIC BY MISTAKE’가 등장했다. 일부 멤버의 유닛 조합이 아닌, 세 팀 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프로젝트는 흔한 일이 아니다. 발매 직전 세 팀이 각자의 활동에서 선보인 음악적 지향점에는 테크노라는 하나의 장르로 뭉뚱그릴 수 없는 뚜렷한 개성이 담겨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 곡 안에서 거대한 서사로 모였을 때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까? ‘ICONIC BY MISTAKE’는 이 질문에 매끄러운 조화 대신 과감한 추진력으로 응답한다. 

‘ICONIC BY MISTAKE’는 정제된 사운드보다 거칠고 변칙적인 하이퍼팝을 앞세운다. 더불어 아티스트를 향한 비판마저 자신을 비상하게 하는 동력으로 삼는다(“Thank you for the comments, it's because of all your hate / I am iconic by mistake”). 사운드와 주제 의식 모두 K-팝 걸그룹에 통용되던 일반적인 기대치를 뛰어넘는다. 이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아일릿은 자신들의 콘셉트가 얼마나 파괴적으로 넓어질 수 있는지를 입증했다. 아일릿의 평소 활동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과감한 미학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이들은 본연의 캐릭터를 기괴한 호러로 변주하는 해법을 찾아냈다. 아일릿은 본인들의 파트에서 ‘Cherish (My Love)’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치과와 금니의 이미지를 변주하며 KATSEYE에게 순서를 넘긴다. 이로써 기존의 발랄했던 정서는 서늘하고 기괴한 반항심으로 흥미롭게 비틀린다. 요란하게 질주하는 혼돈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멤버들의 표정은 ‘It’s Me’로 구축한 정서를 팀의 확고한 자산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 아일릿은 ‘ICONIC BY MISTAKE’에 뛰어들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세 팀이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는 가운데, 아일릿은 그 주제를 자신들의 디스코그래피 속 서사와 자연스럽게 접목했다.

결과적으로 ‘ICONIC BY MISTAKE’는 이벤트성 합작을 넘어, 글로벌 팝 음악으로서 괄목할 만한 상업적 성취를 거두었다. 아일릿의 입장에서는 데뷔 곡 ‘Magnetic’으로 세웠던 K-팝 데뷔 곡의 최단 기간 빌보드 핫 100 차트 진입이라는 성과에 이어, 음악적 결이 완전히 다른 실험적 트랙으로 또다시 빌보드 상위권에 진입하며 글로벌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됐다. ‘NOT CUTE ANYMORE’로 예열하고 ‘It’s Me’로 쏘아 올린 시도가 팀의 영토를 실질적으로 넓힌 것이다.

‘It’s Me’부터 ‘ICONIC BY MISTAKE’로 이어진 아일릿의 상반기 서사가 최종적으로 수렴하는 곳은 트로피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도다. 이들의 라이브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균형 잡힌 레코딩 음원에서는 돋보이지 않지만 라이브에서만 체감할 수 있는 묵직한 음압의 외침(“It’s Me!”), 무릎 보호대를 차고 비트마다 뛰어오르는 안무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체력, 그 안에서도 능청스러운 표정을 잃지 않는 여유까지.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단어로 요약하면 ‘씩씩함’일 것이다.

아일릿의 씩씩함은 K-콘텐츠의 익숙한 미덕과 결을 달리한다. 기존의 문법은 대개 드라마 여주인공이 역경과 결핍을 딛고 마침내 극복에 이르는 서사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아일릿은 대중 앞에 서서 마주해야 하는 시선에 비장한 태도로 임하는 대신 흔들림 없는 자기 확신, 특유의 명랑함과 능청으로 점점 더 많은 팬들을 무장해제시켜 왔다. ‘It’s Me’와 ‘ICONIC BY MISTAKE’는 그 기질을 팀의 새로운 언어로 자리매김하게 한 전환점이다. 이제 이 팀은 귀여움과 공격성, 판타지와 “안 나오면 쳐들어 간다”, 마법 소녀의 손동작과 테크노 비트를 한 몸에 담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아일릿이 손에 넣은 것은 확장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이제 이들이 무엇을 시도하든 무대 위에서 작동하리라는 신뢰다. 이것이 2026년 상반기에 아일릿이 손에 넣은 성과다.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