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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천하: 여제의 탄생 Ⅱ’, 게임적 숏폼의 미래
역사와 이탈의 경계에서 유저는 어떻게 스스로의 길을 고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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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몽(게임문화연구자)
사진 출처‘성세천하: 여제의 탄생 Ⅱ’ 공식 홈페이지

지난해 가을, 화려한 중국풍 장식을 한 채 화면을 응시하던 한 여성이 게임 유튜브를 휩쓸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화면 속 주인공이 등장하는 게임 ‘성세천하: 여제의 탄생’은 2025년 9월 1편 출시에 이어 2026년 6월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성세천하: 여제의 탄생 Ⅱ(이하 ‘성세천하Ⅱ’)’는 스팀과 iOS, 안드로이드에 동시 출시된 지 닷새 만에 100만 장, 12일 만에 200만 장을 돌파했고, 전작을 포함한 시리즈 누적 판매량은 500만 장을 넘어섰다. 약 1,500분에 달하는 실사 촬영 분량과 멀티 엔딩 구조를 갖춘 이 작품을 단순히 전작의 흥행 공식을 반복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서사와 인터랙션, 그 바깥의 산업적 지형까지, 후속작인 2편은 세 층위 모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층위의 성과는 전작이 열어젖힌 ‘게임적 숏폼’이라는 장르가 다음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후궁 암투를 넘어선 여성 서사
대부분의 후궁 암투물은 익숙한 문법을 공유한다. 여성들 사이의 알력 다툼, 황제의 총애를 얻기 위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그 다툼의 승자가 곧 서사의 승리자가 되는 구조다. 이 문법 안에서 여성 캐릭터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존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성세천하 Ⅱ’는 이 전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주인공 무원조에게 황후의 자리는 더 이상 총애의 정점이 아니다. 오히려 황후의 자리는 정치적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 된다. 2편에서는 총애와 생존이 더 이상 같은 의미를 갖지 않게 되면서, 무원조는 권력을 계산하고 동맹을 설계하는 주체로 자연스럽게 재배치된다.

‘성세천하 Ⅱ’의 첫 번째 선택지. 이치 루트와 이태 루트 중 어떤 루트로 이야기를 진행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 재배치는 게임의 분기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성세천하 Ⅱ’에서는 정사에 해당하는 이치(진왕) 루트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이태(위왕) 루트가 나란히 존재한다. 두 루트 모두 나름의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사랑받는지가 아니다. 정사가 아닌 이태 루트가 별도의 서브 스토리로 온전히 서사화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다. 드라마였다면 정사에서 벗어난 갈래를 이렇게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남겨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드라마가 아니라 게임이고, 그중에서도 분기와 선택을 전제로 한 인터랙티브 숏폼 드라마 형식을 차용한 게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정해놓은 하나의 결말 옆에, 유저가 고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완결된 결말을 나란히 세워둘 수 있는 것이다. 무원조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인물이듯, 유저 역시 정해진 정사만을 따라가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골라 완결까지 지켜볼 수 있다. 캐릭터의 주체성과 유저의 선택권이 같은 방향으로 포개지는 지점에서, 이 작품은 후궁 암투물이라는 장르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수동성의 문법으로부터 한 발 비켜서 있다.

‘이태 루트’에서는 기존의 정사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실패를 몰입으로 바꾸는 배드엔딩 설계
전작이 호평받은 지점 중 하나는 실패가 곧바로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면 죽음이나 추방 같은 배드엔딩을 맞이하지만, 그 실패의 무게가 가볍게 설계되어 있어 유저는 부담 없이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2편은 이 구조에 ‘선택의 누적’이라는 차별점을 도입했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1편은 그 순간 주어진 선택지만 잘 고르면 됐는데, 2편은 과거의 선택이 업보처럼 돌아와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반응이 나온다. 선택지가 나타나면 정답을 맞히는 게임에서, 선택의 결과가 시간을 두고 누적되는 게임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는 유저로 하여금 매 순간의 선택을 더 신중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어떤 선택지를 골랐을 때 그 선택이 훗날 어떤 식으로 되돌아올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1편에서처럼 배드엔딩이라는 형태로 실패가 서사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대신, 2편에서는 유저가 한 선택이 다른 형태로 이야기 속에 남는 셈이다.

스토리 바깥의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게임의 설계도 존재한다. 게임에는 인내력, 책략, 야망, 결단력, 명성이라는 다섯 가지 능력치가 존재하고, 선택지에 따라 이 수치들이 성장한다. 스토리 진행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다섯 항목을 모두 최대치로 올리면 ‘만능 황제’라는 도전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 서사적 실익이 없는 이 업적 시스템이 오히려 유저가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게임을 반복 탐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동기를 제공한다.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좋고, 다른 루트를 선택해도 좋다. 능력치를 채우는 재미와 도전 과제를 완성하는 재미가 실패에 대한 불안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저들은 스토리의 정답과는 무관하게 ‘결단력’을 높이기 위한 선택지를 일부러 고르거나, 이미 엔딩까지 확인한 챕터를 능력치만을 위해 다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답을 맞히는 여정과는 별개로, 업적을 위해 능력치를 채우는 또 하나의 여정이 존재하는 셈이다.

매 챕터의 선택지에 따라 5개의 능력치를 성장시킬 수 있다.

게임의 영역을 넘나드는 팬덤과 산업
‘성세천하’ 시리즈의 산업적 파장은 게임 바깥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주연 및 조연 배우들은 게임 출시 이후 국내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팬미팅을 진행할 만큼 독자적인 팬덤을 형성했다. 지난 6월 22일 서울 가빈아트홀에서 열린 팬 미팅에는 약 300명의 팬이 모여 주연 배우 4명과 시간을 보냈다. 이는 난창, 우한, 상하이 등을 순회하며 1편과 2편 사이의 공백기를 채워주는 팬 미팅 투어의 연장선이었다. 게임이 단발성 콘텐츠가 아니라 지속적인 오프라인 이벤트 생태계로 확장된 셈이다.

‘성세천하 Ⅱ’ 출시를 기념하면서 개최된 팬미팅. (사진출처: ‘성세천하: 여제의 탄생 Ⅱ’ 공식 X)

여기서 눈여겨볼 만한 장치가 하나 더 있다. 전작에서는 좋아하는 캐릭터에게 꽃을, 싫어하는 캐릭터에게 달걀을 던지는 투표 시스템이 존재했는데, 2편에서는 여기에 흥미로운 요소가 추가됐다. 꽃을 몇 송이 주는지, 연속으로 주는지에 따라 배우들의 반응 영상이 나타나고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이돌의 콘서트 감사 영상이나 인기 스트리머의 후원 감사 영상과 같은 팬덤을 겨냥한 새로운 장치다. 99송이나 9999송이를 연달아 선물하면 각기 다른 영상이 재생되고, 팬들 사이에서 커플명을 숫자로 표현한 4599나 9599 같은 개수를 주면 또 다른 반응이 나온다. 4는 4황자 이태, 9는 9황자 이치, 5는 무원조를 뜻하는 병음식 암호다. 팬덤의 언어를 게임 시스템이 흡수해 다시 콘텐츠로 되돌려주는 이 구조야말로, ‘성세천하’가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거의 없는 방식으로 산업적 흥행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사례다.

나가며: ‘성세천하’가 증명한 것
게임의 서사는 총애를 둘러싼 경쟁에서 정치적 주체의 이야기로, 인터랙션은 정답 맞히기에서 누적된 선택의 설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산업은 배우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독자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그 팬덤이 다시 게임 바깥의 이벤트와 ‘이스터에그’ 찾기로 되돌아오는 순환 구조로까지 확장되었다. ‘성세천하 Ⅱ’는 전작이 예고했던 ‘게임적 숏폼’이라는 장르가 우연한 성공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설계였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설계가 다음 작품에서 또 어떤 방식으로 정교해질지, 지금으로서는 지켜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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