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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brat’ 시대의 다섯 아티스트
레이브는 어떻게 새로운 팝의 문법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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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게티 이미지

2026년 2월, 찰리 XCX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brat summer’가 끝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세상이 판단할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이미 끝났다고 답했다. 다섯 달 뒤 나온 그의 새 앨범 ‘Music, Fashion, Film’에는 클럽이 없다. 라임그린도 밈도 더 이상 없다. 하지만 ‘brat’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았나. ‘brat’은 레이브 사운드를 팝에 처음 소개한 앨범이 아니다. 레이브의 문법은 이미 팝 안에 있었다. ‘brat’이 증명한 것은 반대 방향이다. 레이브 안에 팝의 자기 고백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왜 중요한가.

레이브는, 적어도 그 시작에서는, 익명의 음악이었다. 무대가 없는 음악이었고, 얼굴을 지우는 어둠과 자아가 흐릿해지는 새벽 다섯 시가 그 배경이었다. 이는 타인의 재능에 대한 찬탄, 아이를 낳을지에 대한 망설임, 죽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하지만 ‘brat’은 번들거리는 땀과 심장을 때리는 저역 속에서도 한 사람의 얼굴이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증명이 완결되자 판이 움직였다. 언더그라운드 클럽 사운드에서 출발한 아티스트가 본류를 떠나 팝으로 건너가지 않고도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brat’은 음악을 대중에 맞춰 바꾼 것이 아니라, 대중이 그 음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같은 시기 K-팝이 댄스 음악으로서의 장르성이 짙어지고, 그것이 대중적으로 무리 없이 소화된 것도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post-brat’을 가리켜, 단순한 사운드의 유행이 아니라 확장의 문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다음의 다섯 아티스트도 각자의 방식으로 답했다.

슬레이터(Slayyyter)
슬레이터는 2010년대 말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출발해 거칠게 압축된 인터넷 팝의 전자음, Y2K 셀러브리티 문화, 과장된 성적 페르소나를 결합해 대중적 취향과 품위에 시비를 걸어왔다. 당시 슬레이터의 과잉은 인터넷 안에서만 통용되는 농담, 혹은 메인스트림의 문 앞에서 멈춘 컬트 캐릭터로 취급되었다. 2026년 그가 발표한 ‘WOR$T GIRL IN AMERICA’에서 달라진 것은 그의 본질이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환경이다.

전작 ‘STARFUCKER’가 할리우드의 번쩍이는 표면을 연기했다면, ‘WOR$T GIRL IN AMERICA’는 그 광택을 일부러 벗겨내고 미주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슬레이터는 10대 시절 아이팟에 담아 듣던 블로그 시대의 댄스록을 들고 나왔다. ‘CRANK’와 ‘CANNIBALISM!’의 찌그러진 저역, 구호에 가까운 보컬, 매끈함을 거부하는 분절적인 편곡을 보자. 여기서 소음은 그의 캐릭터를 숨기는 그늘이 아니라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조명이다.

그래서 앨범의 핵심은 난폭함이 아니다. ‘UNKNOWN LOVERZ’의 일방적인 갈망, 아버지에게 버려졌던 기억을 되짚는 ‘GAS STATION’, 명랑한 표면 아래 자기파괴를 남긴 ‘BRITTANY MURPHY.’가 이어진다. 슬레이터는 ‘나쁜 여자’라는 캐릭터 안에 수치심과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결합한다. ‘brat’이 레이브의 압력 속에서도 한 사람의 고백이 소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면, ‘WOR$T GIRL IN AMERICA’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백을 들려주기 위해 소리를 누그러뜨리는 대신, 더 거칠고 더 천박하며 더 시끄러워진다.

‘WOR$T GIRL IN AMERICA’는 빌보드 200 차트 22위로 데뷔했다. 톱 댄스 앨범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앨범 발매 직후에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데뷔 공연을 치렀다. ‘post-brat’은 모두가 찰리 XCX처럼 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랫동안 거칠고, 인터넷에 가깝고, 퀴어 문화에 기반을 두어 대중적이지 않다고 여겨진 아티스트가 자신의 모서리를 깎지 않은 채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경계가 이동했다.

코브라(Cobrah)
코브라에게 스톡홀름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자아를 잊는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자아를 발명하는 무대였다. 그는 차가운 테크노와 인더스트리얼 사운드 위에서 상대에게 복종을 요구하거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법을 가르치는 화자를 내세웠다. 쾌락은 승인이 필요한 감정이 아니라, 군중과 공간을 지배하는 물리적 힘이 됐다.

그런데 2026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Torn’에서 그간 그가 내세운 단단한 페르소나에 균열이 생긴다. 제목처럼 앨범은 강함과 취약함, 실제 인물과 무대 위 캐릭터 사이에서 찢긴 상태를 다룬다. 이전의 코브라가 극단적인 인물을 창조하고 그 뒤에 숨었다면, ‘Torn’은 실제 삶에서 가져온 감정을 캐릭터의 일부로 제시한다. 그는 여전히 과장된 몸짓과 폭발적인 전자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앨범의 타이틀 곡을 비롯한 노래들에는 불길함과 의심, 상대가 감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불안이 스며든다. 코브라는 직접 앨범을 쓰고 크리에이티브 전반을 총괄했다. 그 결과 드러난 것은 통제력을 잃은 사생활이 아니라 스스로 연출한 취약성이었다.

코브라는 클럽에서 벼려낸 갑옷을 벗지 않은 채 그 안의 사람을 보여준다. 땀과 성적 긴장, 반복되는 저역은 강한 여성 캐릭터를 증명하는 장치인 동시에 불안과 상처가 신체를 통과해 빠져나가는 통로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활동 반경의 확장과도 맞물린다. ‘Torn’ 이후 북미 투어를 돌고 ‘코첼라’ 무대에 오른 그는 데미 로바토 같은 팝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한때 퀴어 클럽 내부의 강렬한 코드로 여겨졌던 사운드가 희석되지 않은 채 더 넓은 팝의 네트워크로 진입한 것이다.

아마레이(Amaarae)
아마레이가 2025년 8월 발표한 세 번째 앨범 ‘Black Star’는 유럽과 미국의 클럽 음악을 가나와 브라질에서 발전한 지역적 댄스 음악과 연결한다. 레이브는 더 이상 베를린이나 런던에서 세계로 수출되는 단일한 양식이 아니라, 흑인 디아스포라의 음악이 대서양을 오가며 변형되어온 네트워크가 된다. 그래서 앨범 제목은 가나 국기의 검은 별이자, 자신이 되고자 하는 글로벌 팝스타, 그리고 댄스 음악을 만든 흑인 문화의 계보를 함께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아마레이는 ‘S.M.O.’의 가나 리듬과 카리브해 선율, ‘Starkilla’의 잘게 끊기는 베이스, ‘B2B’의 몽환적인 하우스 등 서로 다른 원산지의 샘플과 대중음악의 기억을 뒤섞는다. 하지만 이를 매끈한 글로벌 시장용 사운드로 중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질적인 요소가 맞부딪히는 순간이 훅을 만든다.

아마레이는 이전부터 아프로팝, 얼터너티브 R&B, 록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지만, 이번에는 클럽을 앨범의 중심 무대로 삼고 그 안에 권력과 자유, 과시와 고독을 동시에 넣는다. ‘Fineshyt’의 화려한 외형 뒤에는 진짜 관계에 대한 갈망이 남고, ‘B2B’의 주문 같은 반복은 돌연 기타와 현악의 여백으로 쾌락 뒤의 허무함을 드러낸다. 그에게 레이브는 정체성을 뭉개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과 몸의 정체성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장소다.

그 결과는 음악이 주는 인상에 머물지 않았다. 아마레이는 2025년 ‘코첼라’에서 가나 출신 아티스트 최초로 단독 세트를 선보였다. ‘BLACK STAR’는 그해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남았다. ‘post-brat’은 개념적인 장르와 시장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아마레이는 구체적으로 어느 대륙과 어느 도시가 뜨거운지, 그것이 얼마나 빠르게 세계의 중심으로 옮겨 붙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니아 아카이브스(Nia Archives)
니아 아카이브스는 다섯 아티스트 중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DJ이자 프로듀서로 출발하여 정글 장르 부활의 최전선에 섰다는 평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멜로디와 기타, 자신의 삶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노래할 줄 알았다. 2024년 데뷔 앨범 ‘Silence Is Loud’부터 그가 가진 두 강점의 결합은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post-brat’의 맥락에서 더 중요한 작품은 2026년 7월 발표한 두 번째 앨범 ‘Emotional Junglist’다.

앨범 제목을 통해 그가 오래 사용해온 정체성은 하나의 선언이 되었다. 앨범은 사랑에 빠지고, 배신과 이별을 통과하는 감정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Almost Always’의 상처 입은 마음과 ‘Lovers Grief’의 이별 후 피로, ‘Boys In Blue’의 분노 섞인 카타르시스는 서로 다른 강도의 리듬 위에서 연애 서사를 완성한다. ‘Emotional Junglist’는 정글의 브레이크비트를 중심에 두되, 일부 곡에서는 속도를 낮추고 2000년대 영국 인디록을 연상시키는 기타, R&B 멜로디와 라이브 밴드의 질감을 겹친다. 니아 아카이브스에게 ‘감정적인 정글리스트’란 행복과 슬픔을 차례로 통과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반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속도를 견디는 사람이다.

‘Emotional Junglist’는 ‘post-brat’의 가치를 특정 팝스타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가 새롭게 살아남는 방법론으로 옮긴다. 니아 아카이브스는 거센 비트와 감정적 동요, 관객의 육체적인 에너지와 싱어송라이터의 내밀함을 처음부터 함께 태어난 듯 붙여놓는다. 장르를 깊게 추구할수록 그 안에 담길 수 있는 감정과 청중의 범위는 넓어진다.

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
핑크팬서리스는 2021년 ‘to hell with it’에서 이미 정글과 드럼앤베이스, UK 개러지의 속도를 베드룸 팝의 작은 목소리와 결합했다. 2023년에는 ‘Boy’s a liar Pt. 2’로 빌보드 핫 100 차트 3위까지 올랐다. 클럽 장르 위에 관계의 불안과 소외를 얹는 그의 방식은 ‘brat’보다 먼저 대중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핑크팬서리스가 문자 그대로의 ‘post-brat’이라는 구분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post’는 영향의 선후 관계가 아니라, ‘brat’ 이후 클럽 음악의 계보가 더 이상 팝 음악의 주변부로 설명될 필요가 없어진 환경을 뜻한다. 2025년 믹스테이프 ‘Fancy That’에서 핑크팬서리스 역시 자신의 성공적인 문법을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초기 작품의 빠른 브레이크비트가 수줍음과 고독을 감싸는 배경이었다면, ‘Fancy That’에서는 목소리와 욕망이 한층 앞으로 나온다. 불법적인 거래를 은밀한 만남처럼 묘사하는 ‘Illegal’, 유혹을 장난스럽게 밀어붙이는 ‘Tonight’에서 그는 비트 뒤에 숨지 않는다.

과거 음악에 대한 참조도 한층 더 체계적이다. 언더월드, 베이스먼트 잭스, 그루브아마다 등 1990~2000년대 영국 댄스 음악의 샘플은 외향적인 팝의 언어와 맞닿는다. 동시에 그는 이전 세대의 레이브와 빅비트의 역사를 취향으로 전시하지 않고, 지금 막 도착한 문자와 엇갈린 욕망을 담는 개인적인 장면으로 다시 편집한다. 거대한 역사를 20분 남짓한 아홉 곡의 일기장에 접어 넣은 셈이다.

그 안에서 곡들은 대개 3분을 넘기지 않는다. 전개를 오래 끌기보다 핵심적인 훅과 감정, 샘플의 잔상만 남기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클럽에서 들은 노래의 제목은 모르지만 특정한 사운드와 당시의 감정만 남는 방식과 닮았다. 레이브는 작은 목소리가 자신감을 얻는 장소가 된다. 대중적 성과도 따라왔다. ‘Fancy That’은 영국 앨범 차트 3위와 빌보드 200 차트 72위에 올랐고, 2025년 ‘머큐리 프라이즈’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이듬해 핑크팬서리스는 ‘브릿 어워드’에서 여성 최초이자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올해의 프로듀서’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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