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 팬들에게 앤더슨 팩(Anderson .Paak)은 한국에서도 인지도 높은 미국 대중음악가 이상의 존재다. 그가 활동명으로 삼은 미들 네임 ‘Paak’은 한국계 혼혈인 어머니의 이름 ‘박’에서 왔다. 자신은 흑인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두 아들의 어머니가 한국계로 양쪽 문화에 익숙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음악 활동에서 K-팝과의 연결 고리도 상당하다. RM의 솔로 앨범 ‘Indigo’에 수록된 ‘Still Life’, G-DRAGON의 복귀작 ‘Übermensch’에 실린 ‘Too Bad’ 등은 대표적인 예시다. 그는 송라이팅, 보컬, 드럼 연주 등 자신의 장르적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방면에서, 두 아티스트가 원한 개인적인 메시지의 전달과 음악적 야심의 표현을 도왔다.
그런 앤더슨 팩이 영화 ‘K-POPS!’를 통해 감독, 각본가, 그리고 주연 배우로 데뷔하며 자신의 예술적 영토를 스크린으로 확장했다. 이 영화와 사운드트랙 앨범이 K-팝의 거대한 인기 위에 등장했다고 보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난 1~2년 사이 할리우드와 미국 방송계가 직간접적으로 쏟아낸 K-팝 관련 콘텐츠와 명확하게 차별화된다. 해외 팝스타의 일시적인 편승이 아니며, K-팝을 이국적 풍경으로 대상화하지도 않는다. 앤더슨 팩은 한국계 혼혈이자 흑인 아티스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여기에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K-팝에 대한 특유의 코멘트를 남긴다.

영화 ‘K-POPS!’의 서사는 앤더슨 팩 개인의 삶과 깊게 닿아 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아들 소울 라시드(Soul Rasheed)가 유튜브와 K-팝에 심취하는 모습을 봤다. 영화의 미국 개봉 이후 공개된 ‘NAACP(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 인터뷰를 보자. “격리 기간 동안 아들의 유튜브 채널을 위한 짧은 영상을 만들면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에게 K-팝 스타가 될 수 있는 숨겨진 아들이 있다면? 그가 나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내가 그에게 흑인 문화를 가르친다면 어떨까?”
영화에서 LA의 무명 음악가 BJ(앤더슨 팩 분)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한국의 K-팝 경연 TV 쇼 ‘와일드카드’의 하우스 밴드로 합류한다. 그는 쇼의 참가자 중 아들 태영(소울 라시드 분)과 옛 여자친구 예지를 만나 가족으로 성장한다. 영화에는 온갖 카메오가 등장해 영화의 현실성을 더한다. 박재범, 버논, 제시 등 K-팝 유명 아티스트부터 제이든 스미스, 사위티 같은 미국 팝 아티스트, 피식대학, 아이쇼스피드 등 양국의 유튜버까지 이른다. 하지만 영화의 가치는 볼거리와 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중의 디아스포라에 속하는 앤더슨 팩이 문화적 충돌을 다루는 태도에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가 평소 미처 인식하지 못한 방식으로 K-팝에 대한 고민을 확장한다.
극중 CJ는 ‘와일드카드’ 우승을 노리는 태영에게 흑인 음악의 뿌리를 알려준다. 한국 골동품 상가의 레코드 가게에서 음악은 위대한 소통 수단이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음을 설명한다. 흑인 음악이 가스펠로, 가스펠은 블루스로, 블루스가 로큰롤로, 그리고 펑크, 소울, R&B, 힙합, 하우스, 컨트리 등 온갖 장르로 이어짐을 말한다. K-팝이 보이밴드와 걸밴드에 관한 것이라면, 잭슨 5는 역사상 최고이고 이 역사는 방탄소년단이 이어받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해.(In order to know where you’re going, you gotta know where you’ve been.)”
이 장면 때문에 ‘컴플렉스’ 인터뷰는 앤더슨 팩에게 존중(appreciation)과 전유(appropriation)의 차이를 물었다. 그에 따르면 음악 산업에서 누군가의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하는 일은 피할 수 없지만, 해당 장르를 존중하려면 철저한 학습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문화에 대한 무례라는 것이다. 그는 K-팝이 본질적으로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고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이는 극중 CJ가 태영에게 알려주는 것과 같다. 좋은 K-팝을 하기 위해서는 대중음악 자체를 이해해야 하고, 그것은 흑인 음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화는 K-팝의 오래된 토론 주제 중 하나와 직접 닿아 있다. K-팝의 흑인 음악 전유에 대한 지적은 K-팝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대응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여기서 내부의 자생적인 통찰이나 학습은 개인의 미덕은 될 수 있지만, 논란의 해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앤더슨 팩은 흑인-아시아 혼혈인 블래시언(Blasians)이자 흑인 문화에서 자라 K-팝에 익숙한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두 문화권과 세대 사이의 치유와 연대라는 예술적 답변을 내놓는다.
BJ는 태영에게 K-팝 고유의 멤버 포지션 등을 배우고 그에 어울리는 무대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앤더슨 팩이 과거부터, 그리고 ‘K-POPS! (Music from and inspired by K-POPS! Motion Picture)’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직접 실행해온 바와 같다. 이러한 태도는 ‘K-POPS!’가 미국 영화에서 아시아인을 표현해온 방식을 일신한 것과도 맥락을 함께한다. 예지 역의 한지영(Jee Young Han)이 ‘TAAF(아시안 아메리칸 파운데이션)’ 기사에서 말한 바와 같다. “많은 시나리오에서 한국 캐릭터는 세상의 유일한 아시안이거나 아시안 세계의 아시안이다. 하지만 예지는 내가 2009년에 코리아타운에서 봤던 그 여자다. 내가 알고 있지만, 보여진 적 없는 풍부한 캐릭터를 연기한 것에 감사하다.”
이 영화가 한국의 관객에게는 어떨까? 많은 이들이 충실한 한국적 묘사와 어색한 미국적 변용의 충돌에 혼란스러워 할 가능성이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적 풍경을 재현한 완성도로 유독 환영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그에 비하면 ‘와일드카드’는 1위 연습생이 데뷔한다는 규칙 외에는 미국의 TV 쇼처럼 보인다. 서울의 하드 록 카페에서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장기 공연을 볼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을 미국의 블랙-아시안 디아스포라가 이해하는 한국과 K-팝의 표현형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 영화의 도입부로 돌아가자. 2009년, 친구들이 예지에게 노래를 하라고 부추긴다. TLC, 데스티니스 차일드, 아니면 차라리 N.W.A를 하자고 한다. 소녀시대, 2NE1,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니다. 그리고 제목이 뜬다. ‘K-POPS!’ 복수형이다. 예컨대, 또 다른 K-팝의 가능성에 대하여.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한국 문화를 소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놓았다. 20년 전의 K-팝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변형, 심지어 몰이해라고 몰아붙이고 싶지 않다.
앤더슨 팩은 ‘TAAF’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새로운 곳으로 가져가는 일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주고 싶다.” 이건 아마 ‘K-POPS!’만이 아니라 그의 경력 전체를 관통하는 말처럼 읽힌다. 그가 솔로 아티스트일 때, 미국 팝계의 환영받는 협업자일 때, 그 입지를 K-팝으로 넓히고, 심지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찾았을 때에도. 영화는 K-팝에 대하여 픽션으로 쓰여진 보기 드문 텍스트로 남을 것이다. 사운드트랙은 엔믹스, 딘, 에스파, G-DRAGON 등과의 협업으로 앤더슨 팩이 영화로 선언한 바를 재차 음악으로 구현한 사례다. 그는 2019년 4번째 앨범 ‘Ventura’ 이후 솔로 앨범을 낸 적이 없다. 한국의 대중은 자신에게 유독 복잡한 의미를 담은 5번째 앨범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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