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이 발견한 싱어송라이터 너머
미디어 환경이 SNS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된 2020년대. 하이라이트 중심으로 가공한 숏폼 포맷은 플랫폼을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가 하면, 잘파세대의 참여 욕구를 캐치한 챌린지 문화는 필수불가결한 프로모션 요소가 됐다. 이 흐름을 타고 등장한 것이, 바로 자작 곡의 ‘일부분’만 올려 대중의 반응과 함께 성장해 가는 ‘틱톡발 아티스트’들이다. 이마세의 ‘NIGHT DANCER’가, 츠키.(tuki.)의 ‘晩餐歌’가 그랬듯, 지금 소개할 나토리 역시 ‘Overdose’의 바이럴 히트로 ‘202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명단에 신성처럼 등장한 케이스다.
어느덧 데뷔 6년 차를 맞이한 나토리의 근간에는 획일화된 가치관과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취향이 맞는 이들과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는 인터넷 세대 특유의 정서가 있다. 여기에 진이나 키타니 타츠야, 요네즈 켄시 등 보카로 문화에 뿌리를 둔 뮤지션의 영향과 어렸을 때 즐겨 들은 오렌지 렌지로 대표되는 J-팝의 대중성을 동시에 지녔다는 점이 그를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부정적인 채로 있어도 괜찮다는 태도와, 어떤 사람이 들어도 괜찮은 음악이어야 한다는 철학. 이 두 축이 맞물려 완성된 것이 그의 독자적 음악론인 셈이다. 이는 단순히 그의 창작 세계를 ‘Overdose’에 한정해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토리를 세상에 알린 대표 곡 ‘Overdose’는 비슷한 시기에 히트한 이마세의 ‘NIGHT DANCER’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멜로우한 사운드와 말을 건네듯 흘러가는 보컬, 짧고 반복적인 후렴은 일상 속 BGM을 찾는 젊은이들의 수요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다만 그는 이 곡을 두고 “자신의 음악 색을 벗어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을 추구한 결과”라 말하며 오히려 제작 방향에 혼란을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정립하기도 전에 대중적 성공을 경험한 신인에게, 그 성공은 기회인 동시에 이후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5년여가 지난 지금, 그러한 혼란을 뛰어넘어 나토리가 ‘프로 뮤지션’으로 정착한 중심축에는 역시나 ‘음악’이 있다. 그가 ‘원 히트 원더’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팬덤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 폭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형식과 스타일을 택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인트로를 최소화하고 핵심 멜로디를 빠르게 등장시키며, 베이스를 필두로 한 리듬이 그렇다. 무게감 있게 반복되는 구조 덕분에 짧은 구간만으로도 곡의 핵심적인 매력이 즉각 전달된다. 그야말로 숏폼 시대에 최적화된 형태다. 그런가 하면 R&B나 펑크(Funk), 베드룸 팝 등 다양한 요소를 적극 반영한 독자적인 믹스처 음악을 개진함으로써 자신의 소구력이 그저 일본에만 머물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음악적 개성을 통해 활동 초반 비교적 애니메이션 타이업에 크게 기대지 않고도 자생적으로 청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그 기반은 글로벌 시장에서 ‘믿고 듣는 나토리’라는 신뢰를 쌓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카로 문화와 인터넷 서브컬처를 오래전부터 향유해온 국내 리스너들 역시, 웹 컬처의 감성을 보유함과 동시에 K-팝마냥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그의 음악을 친숙하게 느껴왔을 것이다. 작년 가을 첫 한국 공연에 이어 두 번째 내한 라이브 또한 빠르게 매진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라이브로 증명한 나토리의 다음 단계
‘行進’이라는 타이틀로 펼쳐진 이틀간의 퍼포먼스는 그의 현 지점이 어디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만약 ‘Overdose' 하나만 알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 있었다면, 두 시간 남짓한 세트리스트를 거치며 전혀 다른 크기의 음악 세계와 마주쳤을 것이다. 앨범이 그의 세계를 소개하는 지도라면, 라이브는 그 지도 위 실제 풍경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여행에 가까웠다.
빨간 조명과 함께 그루브하게 포문을 연 ‘EAT’에 이어, 두 번째 곡으로 울려 퍼진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3기 엔딩 곡 ‘セレナーデ’는 그야말로 그의 ‘지금’을 상징하는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츠미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이 일렉트로 스윙 기조의 곡에는, 자신의 뿌리인 보컬로이드 음악을 근간으로 두고 그 외피를 ‘팝’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그의 지향점이 오롯이 담겨 있다. 동시에 여러 뮤지션과의 협업을 통해 영토를 넓히면서도, 그 대상만큼은 ‘교실 전체’가 아닌 ‘창가 쪽에 있는 사람들’로 회귀하겠다는 맹세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어 등장한 ‘金木犀’는 더 근원적인 발견이다. 처음으로 인터넷에 올린 자작 곡이 5년 뒤 격정적인 밴드 사운드를 거느린 무대를 통해 재탄생하는 순간, 나토리의 음악이 어디서 출발했는지가 선명히 떠오른다. 리얼 세션의 섬세한 역동성을 기저에 깔고, 음절의 타이트한 배치가 도드라지는 후렴으로 선보이는, 그야말로 이 시대이기에 탄생할 수 있는 음악이다. 공연장에서는 관객을 압도하는 현장감까지 더해져 있다. 이쯤 되면 그가 틱톡의 방법론을 이용해 발굴된 트렌드세터가 아니라, 틱톡 덕분에 알려진 역량 있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그의 또 하나의 강점은 노랫말이다. 인터넷 문화에 기반해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기를 촉구하는 작사관은, 동세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 설사 그것이 모순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현실에서의 소외감이 결국 다른 세계의 공동체에 편입되는 루트가 될 수 있음을 무심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Cult.’, 절망이 있기에 희망이 있고 결핍이 있기에 설렘이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사랑관이 팝록 사운드를 타고 울려 퍼지는 ‘帰りの会’은 관객에게 다양한 각도의 해석을 전하고 있었다. 차분하고도 선명히 감정을 풀어내는 보컬 중심의 ‘恋する季節’와 ‘プロポーズ’ 역시, 라이브이기에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매력으로 몰입을 이끌어냈다.
라이브이기에 목격할 수 있는 값진 발견은 후반부에 있었다. ‘非常口 逃げてみた’부터 ‘絶対零度’까지 이어지는 대단원의 6곡에서, 그는 음원으로 익숙해진 인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였다. 전자음악으로의 잠재력을 심어놓은 ‘非常口 逃げてみた’은 거친 디스토션을 더해 광란에 가까운 호응을 이끌어냈고, 그를 세상에 알린 ‘Overdose’로 절정을 이어가는 일종의 경유지를 마련했다. 분위기 고조를 의도한 ‘IN_MY_HEAD’와 ‘ポルターガイスト’, ‘ヘルプミーテイクミー’는 그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며 관객의 완전연소로 몰아갔다. ‘록 뮤지션’으로서의 아우라가 숨김 없이 드러난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뒤 ‘絶対零度’로 열기를 이어간 끝에, 놀랍게도 관중들의 아드레날린이 최고조로 치달은 상태로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Overdose’ 하나로는 그를 설명하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것, 그 외의 곡들이 더 큰 함성을 이끌어냈다는 것, 나아가 그의 음악 세계에는 아직 한계가 정의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이 공연에서 발견한 가장 명백한 진실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틱톡발 아티스트에게 데뷔는 도착점이 아닌 진정한 출발점이다. 재미로 시작했든, 인정 욕구에서 시작했든,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했든, 실력과 자본이 앞섰던 과거와 달리 마음이나 의지만으로도 데뷔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한 SNS를 타고 많은 아티스트가 대중과 만날 기회를 잡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금 이 ‘틱톡발 뮤지션’이라는 키워드에서 더욱 중요해진 조건은, 발굴보다는 정착이다. 즉, 순간의 화제성을 넘어 얼마나 오래 무대 위에 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토리는 바로 그 정착의 방법을 스스로 증명해온 사례다. 그는 갑작스레 ‘프로’라는 칭호가 부여된 그 무게감을 화려하게 짊어지지 않는다. 대신 힘들면 힘든 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대로 머리를 싸매고 자신을 탓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결국 생존이란 누군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 스스로 성취한 자기 탈피가 닿은 목적지라는 것을, 그는 음악과 라이브로 거듭 증명하며 2020년대 음악 씬의 이상향으로 거듭나 있다. 그렇게 그가 꾸었던 해상도 낮은 꿈은, 어느덧 자신을 찾아온 관객들의 얼굴 하나하나로 구현된 선명한 현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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