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패션, 영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존 케일,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앨범 커버 촬영을 위해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앨범의 주인공은 사진에 없다.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거장들을 앨범 커버 안에 세우고,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으로 음악적 지향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찰리 XCX의 8번째 정규 앨범 ‘Music, Fashion, Film’이다. 2024년 ‘brat’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빌보드 200 3위에 오른 상업적 성과와 그래미 어워드 3관왕을 거머쥔 슈퍼스타가 인기의 정점에서 내놓은 새 앨범으로는 독특한 시도다.
댄스 플로어를 닫고 자아를 쇼핑하다 카메라 앞에 서 죽음과 마주 앉는 찰리 XCX. 앨범 제목의 세 가지 예술을 중심으로 이번 앨범의 트랙들을 살펴보면서 현재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보자.

MUSIC : 댄스 플로어를 닫고, 친구에게 록으로 말을 걸다
11곡 30분 5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찰리 XCX는 자신이 활짝 열었던 댄스 플로어의 문을 닫고 있다. 이미 ‘brat’이 팝의 최전선에서 인터넷과 언더그라운드의 파괴적인 흐름을 포착하고 개척했던 선구자의 완결작이었다. 화려한 장례식이 어찌나 눈부셨는지 주류 팝은 하이퍼팝과 일렉트로클래시의 네온색 노스탤지어에 몸을 맡겼다.

‘Rock Music’
“댄스플로어는 죽은 것 같아. 그러니까 록을 하자.” 찰리 XCX가 ‘brat’에 보내는 완전한 퇴장 선언이다. 이미 우리는 메인스트림 입성작 ‘SUCKER’에서 찰리가 록도 잘하는 음악가라는 사실을 알았다. 완연한 록의 양식이지만, 록이 아니다. A.G.쿡, 핀 킨과 함께 시퀀싱 드럼과 기타 루프, 스트링 조각을 겹겹이 쌓았다.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나를 받아주어도,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찰리가 ‘브랫 에라’에 내리는 사망 선고이자 창의성의 생존 확인이다.

‘Magic Metal Montana’
‘Music, Fashion, Film’은 뉴욕 아방가르드 펑크(Punk)와 뉴웨이브를 기반으로 미니멀하게 찰리의 록 시대를 펼친다. 블러(Blur)의 ‘Song 2’가 연상되는 리프 하나로만 미니멀하게 운용되는 ‘Yeah’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 찰리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다. PC 뮤직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A.G. 쿡을 위해 노래하는 이 곡에서 그 사실은 분명해진다. “넌 내 가장 친한 친구야.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 우리는 음악을 만들고 음악으로 소통하니까.”
FASHION : 자아를 구매하고 착용하다
‘브랫 서머’의 라임그린 색은 그해 여름을 지배했다. 캐주얼한 그래픽 티셔츠와 시스루 블랙 타이츠, 랩어라운드 선글라스 등 우리가 생각하는 패션 아이템은 ‘brat’ 시대의 잇 걸(It Girl)로 남아 있다. 찰리의 패션은 창의성을 발현하는 도구다. 편안한 옷차림부터 오트쿠튀르의 고전까지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찰리는 누구든 될 수 있다.

‘SS26’
토르소가 연출한 뮤직비디오에는 카린 로이펠드, 생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 슈퍼모델 파리다 켈파 등 업계 거물들이 찰리의 런웨이를 만들고 있다. “지옥으로 향하는 런웨이”에 선 심경은 복잡하다. 음악, 패션, 영화 무엇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정치적 입장과 개인의 서사가 셀링 포인트로 소비되고, 이미지가 과잉되는 시대에 예술은 너무도 작아진다. 스스로를 변호하며 동시에 그 변호를 비웃는다. 팝스타의 슬픈 자화상이다.

‘Card Declined’
쇼핑하러 가자. 핸드백, 향수, 구두, 시계… 카드 결제 거절이 뜰 때까지. 자기 상품화와 물질주의 사회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그 정점에 서는 것이다. 마구마구 구입하고 고민 없이 버린다. 끔찍한 시대로부터 탈출하는 런웨이 위에서 발걸음은 계속 빨라진다. 지옥으로 향하는 런웨이의 퍼즈 기타가 불길함을 부추기고, 끝내 휘어지는 소리의 혼란이 찾아온다.

‘Wink Wink’
찰리 XCX의 파티 걸 선언은 지난한 메인스트림의 논리를 거부하고 음악의 피난처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과 경험이 있었기에 진실했다. SNS를 통해 가공된 취향과 무서운 유행의 관습은 우리 모두를 아티스트가 한때 걸쳤던 의상을 피부처럼 착각하고 이식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인디 슬리즈풍의 이 곡에서 찰리는 그 가면을 벗어 던지고자 한다. 미디어가 환호하는 흥청망청 쾌락을 좇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 또한 패션이다.
FILM : 연기하는 나, 사라지는 나
팝은 불멸을 판다. 영원한 젊음, 끝나지 않는 순간, 넘치는 사랑을 약속한다. 팝스타는 숨 가쁘게 페르소나를 갈아치우며 선지자를 연기한다. 음악, 패션, 영화, 예술로 현실을 속인다. 때로는 나 자신까지도.

‘Camera’
“난 정말 음악을 만들고 싶은 걸까? 서른 넷이 되어가는데도 스크린 속 소녀가 되고 싶은 건 바보 같은 짓일까?” ‘브리티시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찰리 XCX는 연기를 하면서 “새롭고 미지의 무언가, 그리고 약간은 폭력적인 무언가”를 느꼈다고 말했다. 나를 나처럼 느끼지 않으려는 체계적인 훈련은 역설적으로 대중에게 선명한 주체성을 각인한다. 이게 찰리 XCX야. 이게 팝스타야.
찰리는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마치 총구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라는 흥분이 공존한다. “내가 진짜 내가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노래한다. 평범한 인간의 내면과 슈퍼스타의 마음가짐이 만난다. 연기를 할수록, 카메라에 포착당할수록 실체에 다가간다.

‘Persona’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1966년 작 ‘페르소나’는 서로에게 녹아드는 두 자아를 다룬다. 해당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동명의 곡은 ‘brat’의 혁명가, 신을 개척한 팝스타, 흥 넘치는 파티 걸과 같은 수많은 분신 가운데 가장 내밀한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I’m Afraid’
무대 위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의 찰리는 고독하다. ‘brat’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찰리는 그의 경력 내내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을 다시 한번 토로한다.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지만 아직은 나만의 세계를 다지고 싶다는 불안도 있다. 신체와 정신을 불태우는 창작가와 평범한 인간의 삶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No One Lasts Forever’
앨범의 문은 충격의 시네아스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닫는다. 어쩔 수 없이 찰리 XCX의 2022년 작 ‘CRASH’와 동명의 1996년 영화가 겹친다.
달리는 자동차 위로 추락해 피투성이가 된 찰리의 앨범 커버를 기억한다면, 크로넨버그가 해당 작품에서 제임스 딘의 죽음을 재현하는 신을 넣은 이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극중 등장인물들은 스물네 살의 제임스 딘은 목이 부러져 죽었기에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신화를 다시 만들고 모방한다. 낭만적 관념주의를 신봉하며 역사적인 자동차 사고로 죽기를 갈망한다. 그런 죽음은 허영심이다.
모두가 기억할 예술을 만들겠다는 열망 속에서도 그 예술을 즐기는 나를 진실하게 바라보고 현재를 아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찰리의 철학이다. 늘어나고 뒤틀리며 끝없이 반복되는 크로넨버그의 독백이 시곗바늘을 멈춰 세운다. “아무도 영원하지 않아. 그들은 죽었고,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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