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노아 칸, 분수령에 선 노래
능선 위에 선 싱어송라이터
Credit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Netflix

노아 칸의 네 번째 정규 앨범 ‘The Great Divide’는 4월 24일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200 차트 정상에 올랐다. 2억 1,537만 스트리밍 횟수는 올해 최고의 성적이며, 빌보드가 단위 환산 체제를 도입한 2014년 이래 록 앨범 기준으로 데뷔 주간에 가장 높은 38만 9,000 환산 단위를 기록했다. 1991년 이후 록 앨범으로서는 가장 많은 11만 장의 바이닐을 판매한 작품이기도 하다. 싱글 파워도 훌륭하다. 선공개 곡 ‘Doors’와 ‘The Great Divide’는 빌보드 핫 100 차트는 물론 컨트리, 어덜트 얼터너티브 에어플레이 차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2년 틱톡 바이럴 히트 곡 ‘Stick Season’으로 주목받으며 그래미 어워드 신인 후보로 지목되는 등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던 음악가가 마침내 정점을 찍은 것이다. 우리는 뉴잉글랜드의 어퍼 밸리에서 온 청년이 음악의 분수령을 만드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북미 대륙의 대분수계(Continental Divide)는 로키산맥과 안데스산맥을 떠나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태평양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노아 칸이 노래하는 거대한 분열(‘The Great Divide’)도 마찬가지다. 그가 나고 자란 작은 도시로부터 배운 전통의 노래,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슈퍼스타로 거듭난 후 음악에 대해 품었던 모든 고민과 성공 이후 어떤 인간으로 거듭나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가 음악의 능선 위에서 양쪽으로 흘러내린다. 4남매 중 무언가 특별한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싶어 노래를 시작한 노아 칸은 이제 펜웨이 파크, 시티 필드, 매디슨 스퀘어 가든과 같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만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무대를 펼치는 슈퍼스타다. 그 무대 뒤에는 불안, 강박 장애, 폭식과 싸우는 불완전한 자아가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노아 칸: 아웃 오브 바디’에서 숨김없이 보여주는 일상과 성장의 과정은 팬데믹을 경험한 신세대 싱어송라이터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나가는 가운데 그 성공을 뒤로한 채 떠나가야 하는 탕아의 운명이다. 고향에 머무르고자 하는 마음과 달리 그의 재능은 더 큰 성공을 향해 등을 떠밀고, 커다란 성취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현재의 나를 교차시키며 불확실한 감정만을 남긴다.

모순을 해소하는 건 새로운 음악밖에 없었다. 노아 칸이 도움을 요청한 인물은 더 내셔널의 아론 데스너다. 컨트리와 블루스 기반의 포스트 펑크로 사색하는 밴드의 소리 설계자로서 아론은 2020년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folklore’를 통해 팬데믹 시기 가라앉음으로써 깊이 호흡하는 법을 함께 완성한 경험이 있다. ‘The Great Divide’ 역시 ‘folklore’가 만들어졌던 롱 폰드 스튜디오에서 일부 곡을 녹음했으며, 해당 앨범에도 참여한 본 이베어의 저스틴 버논 역시 ‘Downfall’에 참여했다. ‘Stick Season’에서 두드러졌던 멈포드 앤 선즈 등 인디 팝 스타의 스톰프 클랩 헤이(Stomp Clap Hey) 스타일이 아론 데스너 특유의 절제된 감정선과 층진 분위기로 대체되고,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서정적인 정서와 진솔한 독백을 남성 싱어송라이터에 차분히 이식한다. ‘롤링스톤’지가 노아 칸의 신보에 대해 아론 데스너를 “슬픈 포크의 필 스펙터”라 극찬한 이유가 있다. 

변경의 음악으로 능선을 넘는 ‘The Great Divide’의 17곡은 두 방향으로 노아 칸의 오늘을 고백하고 있다. 단출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End of August’에서 다시 돌아온 그의 고향은 죽어가는 도시다. 뉴욕 번호판을 따라 카운티의 경계선까지 도착했을 때, 매번 당선되는 그 사람을 뽑고 부자들을 위한 집을 짓는 아이를 낳는 곳에서 완전히 출세한 싱어송라이터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노아 칸의 여동생 아나스타샤의 관점에서 쓴 ‘American Cars’는 깨진 가정을 떠맡고 남겨진 형제자매가 슈퍼스타 오빠를 바라보는 양가적인 감정과 날선 환대의 감정을 들려준다. ‘Haircut’은 더 직접적이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온 달라진 모습의 노아 칸에게 남아 있던 사람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넌 머리를 기르고는 이제 네가 예수 그리스도인 줄 아나 봐. 너의 죄책감을 위대한 희생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하지만 네가 머리를 자른 게 기쁘고,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되어 다행이야”.

허락도 없이 고향 이야기로 부자가 됐다고 따지는 사람들의 ‘Porch Light’와 같은 수군거림 속에서 노아 칸은 “도망치고, 우편 번호를 바꾸려고 해도 결국 넌 개자식이야”라는 ‘Dashboard’로 고뇌하며 긴 한숨을 내뱉는다. 성공하고 나서야 보이는 아픔,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올랐을 때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상흔을 확인하고 괴로운 마음. 정치 토론, 중독, 허세와 자조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무력하게 TV를 보며 죽은 채로 흘려보내는 시간이 부유하는 컨트리, 포크, 포크트로니카의 잔향을 타고 잔잔하게 흐른다. NPR 뮤직의 앤 파워스가 이 앨범을 메릴린 로빈슨의 소설 ‘홈’에 빗대어 ‘탕자의 우화’라 평한 내용이 정확하다. 굳이 정정하자면, 미국을 정복하고 돌아와 고향에 비해 너무 커져 버린 자가 고향의 시간을 흔들고자 하는 외침이다. 

노아 칸은 성공의 죄책감과 남겨진 이들의 원망, 치유되지 않는 내면의 불안 가운데 애타게 소속감을 찾고 있다. 개인의 성공과 집단의 실패 가운데 균형을 찾는 방법은 1997년생 싱어송라이터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과제다. 그래서 그는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입체적인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며, 끝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노아 칸이 Z세대 소셜 미디어 음악 팬뿐 아니라 아메리카나, 포크의 애호가들에게도 높은 지지를 받는 비결이다. 에드 시런의 섬세한 멜로디와 잭 브라이언의 날것 그대로인 미국의 정서, 테일러 스위프트와 아론 데스너가 제시한 ‘슬픈 포크’ 음악의 사색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연약한 자아를 내비치는 남성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독백이 낯설기에 또한 의미가 있다.

17곡 77분으로 진행되는 앨범이 때론 길게 느껴지고, 유사한 음악과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약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약점 또한 앨범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길고 긴 이야기 가운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제 막 슈퍼스타와 평범한 뉴잉글랜드 청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깨치고 있는 음악가의 혼란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기에 더욱 진솔한 작품이다. 이제 노아 칸 앞에 놓인 과제는 개인의 상처를 더욱 커다란 사회적 맥락 안에 조화롭게 놓는 것이다. 고향과 자아를 배회하는 가운데, 마을을 둘러싼 시대와 구조에 대한 노래를 부를 때 비로소 노아 칸의 노래는 시대를 대표하는 시가 된다. 가장 높은 능선 위로 올라간 이야기꾼은 과연 어느 쪽으로 능선을 내려갈 것인가. 강가인가, 산맥인가, 화려한 불빛의 도시인가. 분수령은 머무는 자리가 아니다. ‘The Great Divide’의 흐름이 어디로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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