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누구죠?”
2019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개봉 당시, 미스테리오 역으로 공연한 제이크 질렌할이 한 스페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 버전의 ‘스파이더맨’이 궁금하다”고 말한 직후 그 옆에 있던 톰 홀랜드가 한 대답이다. 홀랜드의 발언은 온라인상에서 뭇매를 맞았다. 어떻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세계적인 거장의 이름을 모를 수 있느냐고, 무지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게 무례하다고 말이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도 존재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솔직히 나는 홀랜드의 실언 아닌 실언이 조금 통쾌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모두가 그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건 꼭 알아야 한다’라고 자신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싶다. 아는 척할 바엔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게 담백하지 않나. 더군다나 영화계에는 타인의 취향과 식견을 테스트하려 드는 이들이 즐비하다. 적어도 톰 홀랜드는 그런 헛짓거리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물론 낯선 이름을 듣고 대뜸 누구냐고 되묻기보다는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는 게 더 어른스러운 행동이다. (영국인이기는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속 스타가 유럽 아트하우스에 무관심하게 구는 모습이 가벼워 보이는 것도 맞다. 그러나 톰 홀랜드야말로 누구인가. 그때도 지금도 그는 피터 파커다! 엄청난 능력을 지녔지만 서툴게 발현하고, 의협심은 강하지만 때로 미숙하게 일을 그르치던 소년. 그는 우리 앞에서 늘 어설펐고, 그걸 숨기지 않았다. 대중이 스파이더맨을 친근하게 여겨온 이유다. 말하자면 자신의 신분을 고려해 침묵하기보다 스스로 무지를 폭로해 버리는 쪽이 더 피터답다. 톰 홀랜드는 얼떨결에 현실에서 그 캐릭터를 재현해버렸고, 잠시 욕을 먹었을지언정 왜 자신이 지금 세대의 스파이더맨인지 증명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리 보였다.

낙하의 감각, 성장의 질료
지난 7월 29일 개봉해 3주 만에 750만 관객을 만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이하 ‘브랜드 뉴 데이’)의 주인공은 달랐다. 피터도, 그를 연기한 톰 홀랜드도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이해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피터의 동년배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 중이다. 홀랜드는 이제 수백억 원대 출연료를 받으며 지난 세대의 ‘어벤져스’가 떠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새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무게를 마땅히 내면화한 이야기는 시작부터 울적하다. 전편에서 다중우주의 스파이더맨들과 합심했던 피터는 유일한 가족인 큰엄마 메이(마리사 토메이)를 잃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부탁해 모두의 뇌리에서 잊히기까지 했다. 지극히 일방적인 상실이다. 오직 피터만이 메이의 묘소, MJ(젠데이아)와 네드(제이콥 배덜런)의 인스타그램을 응시한다.
그 상태로 ‘브랜드 뉴 데이’를 여는 톰 홀랜드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얼마간 능청스럽기도 하다. 큰일을 겪은 뒤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진정시키려는 의지 같은 게 밴 음성으로, 그는 MJ에게 쓴 편지를 낭독한다. 그건 5년 만에 프랜차이즈에 복귀한 배우가 관객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처럼도 들린다. 과거가 어떠했든지 간에 일단은 오랜만이라고 손을 흔드는 태가 난달까. 홀랜드의 피터에게는 언제나 예의 가뿐함이 있었다. 신체적으로 그럴 뿐 아니라 천성적으로도 비장미 따위는 키우지 않아 왔다. 그럼에도 피터 파커인 동시에 스파이더맨인 청년이 어느새 낙하의 감각에 익숙해졌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브랜드 뉴 데이’에서 홀랜드는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는 대부분의 순간에조차 전에 없던 침착함으로 본분을 다한다. 자신이 쏜 거미줄로 몸을 지탱해온 히어로답게.
‘브랜드 뉴 데이’의 차분한 기조는 로맨스에서도 유지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의 커플을 떠올리게 하는데, 연인이었던 이들이 특정 기술의 개입으로 기억의 불균형을 겪기에 그러하다. 다만 톰 홀랜드는 짐 캐리가 선보인 넓은 스펙트럼의 실연 연기와는 대비되는 길을 걷는다. 스스로 범인(凡人)이 아니라고 인지하는 남자는 여자의 세상에 자신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사실 또한 아프게 받아들인다. 남자를 못 알아보는 여자에게,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카페 손님의 자리로 돌아간다. 이때 홀랜드는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탄식에 가까워진 톤으로 커피를 주문한다. 애절할수록 절제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놀란 토끼 눈까지는 거두지 않는 찰나의 섬세함. 홀랜드는 스파이더맨의 마스크 아래에서도 그리 기민하게 반응해왔다고 관객을 설득하려 한다.

아버지 없이 왕이 되는
아이언맨 없이도 여기까지 온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자기 정체성을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로 ‘브랜드 뉴 데이’를 매조진다. “너는 스파이더맨이냐, 피터 파커냐”라고 질문하는 상대에게 둘 다 나라고 일갈하는 힘은 비로소 MCU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젖힐 홀랜드의 공력을 기대하게 만든다. 공교롭게도 올여름 홀랜드는 영화 ‘오디세이’에서도 유사한 상황에 처한 배역을 맡았다.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의 아들 텔레마코스 역으로 분한 홀랜드는 텔레마코스가 16세라 생각하고 임했다는 인터뷰로 또 한 번 온라인상에서 타박을 듣긴 했다. 신화의 설정상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위해 집을 떠난 지 20년이 넘은 왕이기 때문이다. 아무렴 텔레마코스가 16세라면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앤 해서웨이)의 아들일 수 없다!
나는 이번에도 홀랜드를 변호하고 싶다. 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나리오에서 해석한 텔레마코스는 16세 청소년과 다름없는 인물일 수도 있지 않겠나. 감독이 용인한 선에서 표현이 이뤄졌다면 그의 판단이 틀렸다고만 비난할 수는 없다. 대신 홀랜드가 그 판단을 어떻게 실현했는지 돌이켜 보는 게 더 흥미롭다. ‘오디세이’에서 텔레마코스의 활약은 미약하다. 스크린 타임 자체가 길지 않을뿐더러 극중 내내 엄마와 그의 구혼자들, 돌아오지 않는 아빠의 환영에 치일 뿐이다. 그런 인물에게 일말의 카리스마를 심어두는 것이 얼마나 우스울지 계산한 것처럼, 홀랜드는 내내 입꼬리를 단속하며 진지한 체라도 해야 하는 어린 왕자를 구현했다. 제 곁에 없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할 때의 표정만이 순수하게 깨끗했다. 결국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와 재회하고, 왕위까지 물려받는다. 앞서 등장한 영웅들의 투구에 비하면 어딘지 허술한 디자인의 금관을 쓴다. 홀랜드는 몇 초에 불과한 그 대관식에서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는다.

아버지 없이 왕이 된 남자의 곤란함.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만 같은 단순함. 지금 톰 홀랜드라는 배우가 내포한 가뿐함에서는 그런 체취가 난다. ‘오디세이’와 ‘브랜드 뉴 데이’에서 홀랜드가 체현한 캐릭터들은 각각 오디세우스와 아이언맨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그들의 권위까지 물려받지는 못했다. 전대의 갑작스러운 공백으로 방황을 겪는 와중에 책임만 늘어난 셈이다. ‘오디세이’에서는 그 극복 과정의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홀랜드가 ‘브랜드 뉴 데이’에 이르기까지 피터 파커이자 스파이더맨으로서 살아온 10년의 세월만큼은 미덥다. 그는 자신의 과제를 의식하되 고압적인 남성상을 반복하지 않는 쪽으로, 부족한 구석을 동료로 채우는 쪽으로 나아갔다. 특히 ‘브랜드 뉴 데이’에서 진 그레이(세이디 싱크)와 나눈 진심 어린 대화는 그가 왜 성장의 아이콘으로 각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실수해봤기에 생기는 아량, 유치해봤기에 가능한 성숙이 그 장면의 피터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홀랜드를 보는 관객의 눈에도 장착될 필터가 아닐까. 이제 막 30대가 된 그를 두 편의 영화에서 확인한 며칠은 무더운 이 계절 극장에서 누린 드문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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