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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김효연’은 어떻게 효리수를 ‘진짜’로 만들었나
소녀시대의 20년이 다시 쓰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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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SM 엔터테인먼트

“우리 곧 있으면 20주년이잖아. 20주년에 나도 뭔가를 한 방하고 싶거든. 태티서가 있으면 약간… ‘효리수?’”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 속 페이크 다큐멘터리 ‘가짜 김효연’의 경쟁 구도로부터 소녀시대의 새로운 유닛 효리수가 등장했다. 2025년 9월 24일 공개된 이 영상이 화제를 모을 때만 해도 이 설정은 유튜브에서의 꽤 유쾌한 콘텐츠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만드는 이들과 받아들이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메인 댄서 효연이 보컬 라인 티파니에게 위기의식을 느끼느냐고 묻는 장면은 한없이 진지해 웃음을 자아냈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효리수의 데뷔 싱글 ‘Skibidi’로 현실이 됐다. 단순히 재미를 위하는 것처럼 보였던 콘텐츠가 오랫동안 활동해온 상징적 그룹 멤버들의 새로운 활동 방식으로 확장된 셈이다.

표준 계약 기간, 이른바 ‘마의 7년’을 넘어 활동을 이어가는 베테랑 아이돌의 과제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발굴하는 데 있다. 보컬, 퍼포먼스, 예능 담당 멤버의 캐릭터가 굳어지고 함께 쌓은 기억이 단단한 만큼 전에 없던 모습을 만들고 설득하기가 나날이 어려워진다. 지상파 방송 예능이나 음악 기획만으로는 쉽게 풀어내기 쉽지 않은 과제다. 하물며 소녀시대처럼 20년의 역사를 앞두고 있으며, 오늘날 활동하는 모든 다인원 K-팝 걸그룹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효연은 ‘가짜 김효연’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역할 놀이를 펼치며, 그동안 굳어진 수식과 세간의 이해를 허물어뜨린다. 데뷔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치 있는 입담과 호쾌한 태도로 활발히 소통해온 효연이기에 개개인이 넘치는 화려함으로 눈부시게 빛나던 소녀시대 안에서도 독보적인 친근함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런 면모는 효연이 MBC가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의 주연으로 낙점돼 선후배 아이돌과의 친근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자 실제 그의 성격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녀시대라는 브랜드를 확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엄연히 대본이 존재하는 설정과 연기의 세계 가운데서, 한 곡의 파트를 나눠 가져야 하는 그룹 활동에 대해 대중이 으레 상상하는 긴장은 웃음으로 바뀐다. 효리수의 시작을 알린 콘텐츠에서 효연은 태티서 중에서도 메인 보컬 태연의 파트를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으며, 티파니 앞에서 용감하게 노래를 부른다. 이 모든 것이 과장된 설정이라는 규칙이 있기에 같은 무대를 완성하던 동료를 경쟁 상대로 지목하고 더 많은 파트를 가져가겠다는 솔직한 욕망을 표출할 수 있다. 티파니는 그 말을 받아주다가도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냉정한 발성 코칭을 진행한다. 

효리수 활동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유리와 수영은 효연이 제안한 기획에 합류하면서도 주도권까지 순순히 양보하지는 않는다. 프로듀싱, 보컬, 퍼포먼스 등 무대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효연과 이에 질 수 없는 유리, 수영의 옥신각신 다툼이 이어진다. 효리수라는 이름 역시 채널 팬들을 대상으로 한 메인 보컬 투표에서 효연이 승리하며 센터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룹 이름으로 정해졌다. 이처럼 K-팝 산업의 그룹 활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역할의 배분과, 그에 대해 대중이 상상하는 긴장은 ‘가짜 김효연’에서 과장된 경쟁으로 재현되며 뜻밖의 재미를 유발한다.

효리수는 가짜와 진짜의 경계에서 처음부터 신선한 서사를 쌓아왔다. 효연과 유리, 수영은 소녀시대의 기존 유닛 태티서를 뛰어넘기 위해 비주얼적과 음악적 방향 모두에서 차별점을 찾고 프로듀서에게 어필하려는 역량을 과장되게 표현한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할지 짐작하면서도 한 번 더 받아치면서 각자의 말에 끼어들고, 서로의 과거를 지적하면서 새 유닛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우당탕 펼쳐진다. 걸그룹 멤버들에게 으레 요구되는 겸손과 화합의 태도는, 소녀시대라는 이름값과 산전수전 다 겪은 멤버들의 태도 앞에 무의미하다. 이들은 욕심을 적당히 감추거나, 칭찬 앞에 겸손하거나, 동료와의 친근함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 대놓고 중심을 차지하고 싶어 하고 상대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자신감을 거두지 않는다. 평소라면 편집되거나 길게 설명해야 할 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상관없다. ‘가짜 김효연’은 “현실과 관련이 없으며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허구를 자처하는 세계이기에 이야기의 확장 가능성은 더 무궁무진해진다. 그룹의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역할에는 익숙하지만 주인공으로는 나서지 않았던 멤버들은 ‘6세대 신인 걸그룹’이라는 설정 아래 스스로 파트를 나누고 센터를 정하며, 곡을 고르고 퍼포먼스를 맡아줄 전문가들을 섭외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음악 방송 CP에게 헬리콥터 등장 신을 요구하거나, 이성수 SM CAO에게 타이틀 곡 ‘Skibidi’ 및 다른 데모 곡을 받아오는 과정은 소녀시대가 쌓아온 시간과 경력에서 비롯된 자산이다. 동시에 효리수는 까마득한 후배 그룹 하츠투하츠에게 오늘날 신인 아이돌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바이럴 쇼츠 촬영 방법을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력 면에서는 이미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베테랑 멤버들이 장진영 SM 전속 보컬 트레이너와 댄스팀 바타와 함께 새로운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신인의 의욕과 경력자의 익숙함이 부딪치는 가운데 나이나 경력을 아예 지우는 ‘부캐’가 아닌, 현실에 뿌리를 두고 서사를 확장하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유튜브가 있다. 기성 방송보다 더욱 진솔하고 날것의 표현을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서 장기적인 시리즈를 제작하며 대중의 반응을 미리 확인하고 더 재미있는 기획을 설계한다. 의도하지 않은 댓글과 반응으로 의견을 보태는 시청자는 완성된 기획의 관객이면서, 한창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원이 된다. 그렇게 시청자의 반응과 함께 확장된 효리수의 서사는 마침내 실제 음악 활동으로까지 이어졌다.

효리수 프로젝트는 영상의 성공을 음악으로도 이어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가 오랜 시간 주력으로 활용해 온 하우스 비트 기반의 ‘Skibidi’는 효연과 유리, 수영의 구분되는 목소리 톤을 간결한 랩과 최소한의 가창만으로도 선명하게 표현한다. 소녀시대의 ‘I GOT A BOY’를 연상시키는 음악 장르를 결합하고 구분되는 지점마다 담당 멤버를 바꿔 무대의 맛을 살리는 연출도 재현했다. 하우스 파트를 장악하는 멤버가 효연과 수영이라면, 힙합 비트에서 스냅백을 쓰고 전환을 소개하는 멤버는 유리다. SM 초창기의 SMP와 2010년대 SM의 하우스 사운드가 소녀시대라는 역사 속에서 익살스럽되,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다인원 그룹 체제에서 전면에 나선 적이 드물던 효리수의 무대는 신선하다. 동시에 약속된 익숙함도 있다. 위댐보이즈가 안무 제작에 참여한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흰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멤버들로부터 ‘Gee’의 소녀시대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센터를 두고 다투던 멤버들은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완벽한 합을 선보인다. ‘Skibidi’와 함께 발표한 ‘Lowkey In Love’는 더욱 확고한 개성을 각인시키는 곡이다. 경쾌한 브라스와 리드미컬한 그루브가 돋보이는 뉴 잭 스윙 댄스 팝은 다가오는 소녀시대 20주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동시에, 소녀시대에 활력을 불어넣은 새로운 유닛의 자축 곡으로도 유효하다. 

K-팝의 역사가 쌓이고 아이돌의 활동 수명이 길어지면서 20주년, 30주년을 맞이하는 아이돌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신인만이 누릴 수 있는 풋풋한 감성만큼이나 견고한 서사의 힘을 고민하는 사례가 많다. ‘효연의 레벨업’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긴 호흡으로 개인에게 집중하면서 후자를 명확하게 구현해낸다. 그 결과, 효리수는 2026년 소녀시대가 전설로 기억되는 동시에, 현실에서 계속 이야기되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효리수가 성공적으로 음악 방송 데뷔를 마친 후 공개된 ‘효리수 데뷔 프로젝트’의 마지막 화에서 고된 스케줄에 지친 효연은 소파에 누워 깜빡 잠이 든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된 유닛 활동이 소녀시대 자매들과 함께하는 진지한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다해 임했던 지난 활동이 꿈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여기서 제일 많이 발견한다.”라는 효연의 소감처럼, 그룹 활동에 언제나 진심이었던 멤버가 아주 조금의 거짓이라는 자유 안에서 내년 20주년을 맞이하는 소녀시대를 다시 뛰게 할 힘을 불어넣었다. 동고동락한 시간이 만들어낸 ‘가짜 효리수’와 소녀시대 효리수.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어떤가. 효리수와 소녀시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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