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는 2003년부터 방송 중인 미국의 유명 심야 토크쇼다. 이 쇼에는 독특한 여름 전통이 있다. 진행자 지미 키멜이 휴가를 떠나는 동안 배우, 코미디언, 뮤지션 등 유명 인사가 돌아가며 ‘게스트 호스트’로 진행석에 앉는 것이다. 게스트 호스트는 오프닝 독백부터 인터뷰까지 지미 키멜의 역할을 그대로 맡는다. 올해는 7월 6일부터 8월 27일까지 24개 에피소드를 게스트 호스트가 진행했다.
그중 마지막 네 에피소드, 8월 24일부터 27일까지의 진행자는 컨트리 가수 젤리 롤이었다. 그의 출연 소식은 의외라는 반응을 낳았다. 심야 토크쇼의 오프닝은 그날의 시사 뉴스를 소재로 농담을 던지는 자리다. 반면 젤리 롤은 기독교 신앙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사냥과 시골 생활을 즐기는 컨트리 스타다. 많은 사람은 그를 장르의 전형적인 생활 양식을 대변하는 인물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그의 농담은 일부 컨트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반응의 핵심은 재미있다, 재미없다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 쪽 아니었나?’에 가까웠다. 결국 그는 마지막 방송에서 18분에 이르는 독백으로 응답했다. 지난주까지 모두가 자신을 한쪽 진영의 사람으로 여기더니 이제는 정반대 진영의 사람으로 본다고 농담처럼 말했고,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토록 애썼는데 오히려 그 노력 자체가 하나의 입장이 됐다고 했다. 이 독백이 화제가 된 이유는 단지 대중음악가가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설명하고자 애썼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소동이 잊힌 질문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진짜’ 컨트리 가수란 무엇인가?
컨트리 음악에는 남부, 시골, 노동 계급 같은 배경이 진정성을 뒷받침한다는 오래된 믿음이 있다. 그 연장선에서 소도시, 픽업 트럭, 사냥 같은 현대적인 단어는 풍경 묘사를 넘어 피아를 식별하는 표식처럼 읽힌다. 그 반대편에는 물론 대도시와 엘리트 문화가 놓인다. 젤리 롤의 일주일이 화제를 모은 이유다. 사람들은 그의 출신과 생활 양식을 보고 그의 생각까지 이미 안다고 여겼다.

하지만 젤리 롤의 이력을 돌이켜보면, 그는 컨트리 음악의 전형적 이미지에 부합하면서도 어긋난다. 그의 노래를 지탱하는 것은 10대 시절부터 반복된 수감과 중독, 그리고 회복의 경험이다. 그는 음악을 통해 끊임없이 두 번째 기회를 강조한다. 그는 2025년 12월 테네시 주지사로부터 사면을 받았고, 2026년 2월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컨템퍼러리 컨트리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그는 래퍼로 경력을 시작해 컨트리로 넘어온 아티스트다. 장르 바깥에서 들어온 그가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장르 아티스트로 받아들여진 과정은, 진정성이 출신보다 이력과 신뢰에서 비롯됨을 증명한다.
이처럼 컨트리의 문화적 코드는 태생적, 자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학자 리처드 피터슨은 음악 업계가 컨트리 음악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힐빌리나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다듬어왔다고 분석했다. 달리 말하면 진정성은 노래나 가수에게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의 관계에서 합의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젤리 롤은 현재 가장 보편적인 진정성 기준의 바깥으로 향한다. 그는 진정성의 근거를 문화적 기호에서 삶의 이력으로 옮겨 놓았다. 젤리 롤은 혼자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2023년 8월,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무명 가수가 숲속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투박한 영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올리버 앤서니의 ‘Rich Men North of Richmond’였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그는 낮은 임금과 긴 노동 시간, 먼 도시에서 내려진 결정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한 피로를 토로했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로 데뷔했다. 해당 차트에 처음 진입한 아티스트가 1위로 데뷔한 첫 사례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곡이 인기를 얻자 여러 진영이 이 노래를 자기 쪽 이야기로 해석하고, 자기 주장에 이용하고자 했다. 이에 올리버 앤서니가 직접 영상을 올려 양쪽 모두에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노래가 특정 정파가 아니라 양쪽 모두의 정치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정치적 위치에 대해서는 “한가운데”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올리버 앤서니에게 귀를 기울인 것은 그의 출신이나 직업 때문만이 아니었다. 노래에서 배어 나오는 피곤함이 진짜 생활에서 나온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누군가가 노래를 자기 진영의 깃발로 쓰려는 순간 오히려 흔들릴 위험에 처했다. 올리버 앤서니가 그 해석을 거부한 것은 정치적 선택이라기보다, 자기 노래의 원래 자리를 지키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그리고 3년 뒤, 젤리 롤이 비슷한 자리에 섰다.
젤리 롤의 마지막 독백에 대한 가장 복잡한 반응은 컨트리 동료에게서 나왔다. 젤리 롤과 다른 생각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존 리치는 젤리 롤이 팬을 잃을 위험을 알고도 입장을 밝힌 것이고, 적어도 젤리 롤은 자신이 말하는 그대로의 사람인 것 같다고 평했다. 동의가 아닌 인정이다. 올리버 앤서니와 젤리 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미국의 시골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들이 진짜로 들린 이유는 그 이미지 때문이 아니었다. 노동과 고난, 추락과 회복이라는 구체적인 경험이 노래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자신의 노래와 말이 누군가의 깃발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오늘날 음악과 언행은 알고리즘을 타고 몇 분 만에 퍼진다. 전체 맥락보다 강렬한 하이라이트가 먼저 도착하고, 사람들은 노래를 듣기도 전에 그 가수가 어느 쪽에 서 있는지 묻는다. 이런 환경에서 시골과 도시라는 단순한 분류는 가장 빠른 해석 도구가 된다. 하지만 그 분류로는 올리버 앤서니의 숲속 영상도, 젤리 롤의 농담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젤리 롤이 ‘지미 키멜 라이브!’를 진행하던 그 주에 세상을 떠난 돌리 파튼은 두 가지 관점이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젤리 롤은 방송 중 돌리 파튼을 추모하며 그를 두고 “모든 사람이 좋아한 마지막 미국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돌리 파튼은 무대 위에서 과할 정도로 화려한 페르소나를 선보이면서도, 그것을 자신이 먼저 농담의 소재로 삼는 등 솔직하고 믿을 수 있는 아티스트로 받아들여졌다. 요컨대 진정성은 출생 증명도 패션도 아니다. 자기 삶에서 나온 말을 하고, 그 말을 다른 사람의 목적에 내어주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결국 컨트리가 더 넓은 청중에게 닿는 길은 더 좋은 노래를 쓰는 것만큼이나, 진정성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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