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그러니까, 장기하가 이제 와서 첫 정규 음반을 냈다고? 첫 EP인 ‘공중부양’ 이후로 4년, 개인 명의로는 무려 18년 만에, ‘산산조각’이 발매되었다. 이 두 음반명은 지금의 장기하가 놓인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기도 한다. 10년의 보람찬 활동 끝에 장기하와 얼굴들을 해체한 뒤, 두문불출하진 않으나 듬성듬성하기는 했던 그의 행보는 여러 청자에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상일 테니까. ‘산산조각’도 청자들에게 공중 부양하듯 다른 무엇과 상관없이 붕 떠 있는 감각을 전달한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음반은 오히려 장기하가 솔로 활동 동안 거쳐온 경로와 적용해온 방식들이 하나로 수렴한 결과물이다. 그러니, 그의 알쏭달쏭한 2020년대 상반기에 산산이 흩어진 ‘산산조각’의 조각들을 찾아 그럴싸하게 말이 되도록 엮어봤다. 물론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토킹 헤즈의 콘서트 영화 제목을 빌려 ‘의미를 그만 만들라(Stop Making Sense)’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 ‘상관없는 거 아닌가?’ (2020)
2020년 가을에 출간된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첫머리에 놓자. 얼굴들이 공식 해체한 이듬해인 2019년, 장기하의 지난 10년을 맺는 기점인 이 책에서는 앞으로의 활동을 위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으니. 서문에서부터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고 썼듯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뚜렷한 의미를 만들기보다 떠오르는 화제에 관한 생각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골칫거리로 삼아 씨름하게 되는 문제들 중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고도 썼듯이, 이 책에서 장기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을 정말 신경 쓰지 않고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도록 글쓰기의 힘을 빌린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그의 언급처럼 국소성 이긴장증에서 ‘싸구려 커피’의 깜짝 인기까지, 장기하의 본격적인 경력이 시작될 때부터 함께였으니까.
이를 위한 여러 방법 중 그가 고른 것은 아무래도 덜어내기인 듯하다. 밴드 활동을 마치고 솔로 활동을 앞둔 시점에서 얼굴들의 다섯 정규 음반을 (적어도 2집 이후부터는) “불필요한 것들을 줄여나가는 과정”, 정확히는 “소리는 줄이고 여백은 늘리기 위해 노력”을 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던 것처럼. 그리 따지자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 또한 장기하가 나중을 위해 지난 시간을 덜어내려는 책일 테다. 덜어내다 못해 채널까지도 홀로 덜렁 남긴 ‘mono’마저 ‘별거 아니라고’라고 끝냈듯. 어떤 독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책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말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2020년의 장기하는 상관과 의미의 무게를 더욱 덜어내기를 원하는 것 같다. “아마 솔로 1집이 될 다음 음반에서는 더욱 여백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감하면서.

그래 봤자 얼마나 가겠어 - ‘공중부양’ (2022)
그렇게 발매된 장기하의 첫 EP ‘공중부양’은 그가 오랫동안 갈고 닦은 덜어내기의 극치이자 종점이었다. 음반 소개문에서 밝히듯 “디딜 땅을 잃은 채 둥둥 뜬” 삶의 음악을 만들고자, 록 밴드 형식을 고수할 필요마저 없어진 그는 디딜 소리일 베이스를 대담하게 빼버렸다. 박수진의 평처럼 “대중음악이 지닌 골격을 뭉뚝하게 만들고 정제된 사운드로 여백의 여백을 남”기는 덜어내기 이후 남은 건 의미나 내용으로부터 닻을 올려 유유히 부유하는 말맛이다. 중력에 휩쓸리지 않게 그가 택한 방법은 ‘부럽지가 않어’에서 능청맞게 써 먹는 지연으로, 첫 소절에서 할말을 꺼내놓고 끊임없이 부정과 첨언을 덧붙여 말뜻을 고정하길 미루는 대신 그만큼 말맛을 키우는 식이다. 발매 일자를 주문처럼 외는 예고 싱글 ‘2022년 2월 22일’부터 신곡 홍보에 열중하기보다 그저 같은 소리가 여섯 번씩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어감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덜어내기를 위해 ‘공중부양’이 택한 다른 방법은 샘플링으로, 절단면이 두드러지게 잘게 끊는 작법은 ‘얼마나 가겠어’에서는 건반과 기타에, ‘부럽지가 않어’에서는 장기하 본인의 목소리에까지 적용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곡은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다. 소리꾼 이자람의 발성이 조각나 튕겨대는 동안, 짜증이 섞인 투로 곡명과 똑같은 문장을 읊는 장기하의 목소리는 너무 많이 덜어낸 EP에다가 호통을 치거나, 자기 바람보다 덜어내기가 잘되지 않아 투덜거리는 듯이 들린다. 소리를 이만큼까지 덜어냈다면, 더 이상 덜어낼 게 있을까? ‘부럽지가 않어’의 방송 무대에서처럼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올라도, 언젠가는 다시 닻을 내리고 땅을 디뎌야 하는 법. 이제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공중에 떠 있던 게 급격한 속도로 지면에 닿으면, 산산이 부서지지 않겠는가.

뭐라도 할라면 하긴 하겠지만 - ‘밀수’ 음악감독과 ‘해 / 할건지말건지’ (2023)
KBS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40년 만의 비행’에 올라 ‘산꼭대기 올라가’를 부르며 연초를 열었던 장기하는, 연말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축하 공연으로 오를 뿐만 아니라 영화 ‘밀수’의 음악감독으로 수상까지 하며 2023년을 의미 깊게 닫았다. 음반 단위의 발매작이 없음에도 이 해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공중부양’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1970년대가 배경인 ‘밀수’에는 감독인 류승완이 미리 선곡한 당대의 가요들이 있었고, 장기하의 역할은 곡의 분위기와 물론 영화의 장면에도 어울리게 사이키델릭과 펑크를 쫄깃한 연주 곡으로 뒤섞어서 덧붙이는 후작업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미 틀이 짜인 제한 속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격이다. ‘산산조각’이 그의 자작 시를 바탕으로 모래내거동수상자들이 제작한 무성 단편 영화를 제한 틀로 삼은 후, 그에 딱 맞춰 아홉 곡을 지어 붙여 완성됐듯.
장기하의 음악적 뿌리이기도 하는 1970년대풍 그룹사운드로 오랜만에 복귀한 만큼, 그 영향은 그해 발매된 싱글 ‘해 / 할건지말건지’에서도 분명히 들린다. 당시 리뷰를 인용하면, “끊임없이 유동하는 이 말들을 언제나 뜻보다는 소리로 흘려보내온 능숙한 장기”는 록 밴드 봉제인간으로 활동하는 동료들이 보탠 현란한 연주 덕에 더욱 극단화되었다. ‘공중부양’이 하늘의 조각 구름처럼 둥둥 떠 있다면, 이 두 곡은 ‘해!’라는 근본적인 명령어와 ‘할 건지 말 건 지?’라는 애매모호한 지연 사이의 긴장을 타고 태풍 같이 달려간다. 조사와 어미를 끊임없이 변형하는 노랫말의 의미상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강약과 장단을 오락가락 전환하며 오만 잡것이 일어나는 사운드의 풍경은 ‘공중부양’의 베이스 없는 사운드와 대조적이다. 전작의 지향을 연장하면서도 그 음향은 부정하는, 곧 소리를 너무 많이 덜지 않으면서도 상관없는 것들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려도 - 비비 ‘밤양갱’ (2024)
2024년의 가요이자 한국말 노래라 할 만한 비비의 ‘밤양갱’이 장기하의 작사·작곡·편곡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을 땐 놀라울 수 있으나 듣다 보면 자연스레 납득될 것이다. 왈츠풍의 밀고 당기기에 맞춰 비음과 유음으로 흘러가는 말맛은 그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부드럽게 벼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니. 마미손·이수호·혁오·머드 더 스튜던트 등 장기하의 2020년대 협업 대부분이 그저 말맛만 살린 낭독자와 가까웠던 것에 비교하자면, ‘나란히 나란히’의 짝꿍으로 쓰여 주인 없이 떠돌다가 발매된 ‘밤양갱’은 꽤 뜻깊은 곡일 테다.
그러나 ‘밤양갱’이 정말로 값진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비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빌렸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모습들을 진짜 자신마냥 연기해온 비비가 뛰어난 표현력으로 부르는 답가는 그간 자기 자신이기에만 충실했던 장기하의 반대편에 놓인다. 협업에서 장기하가 비비에게 배운 방법이 있다면 이러한 자기 연출, 잠깐만 나 아닌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는 노력은 협업뿐만 아니라 연기에서, 이별에서도 특히 강하니. ‘나란히 나란히’의 화자가 “정말로 네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볼 걸 그랬다며 후회하고 ‘밤양갱’의 화자는 자신이 바라는 게 너무나 많은 게 아니라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라 말하듯, 두 곡의 상황은 무엇보다도 오해에서 비롯했다. 오해란 무언가를 잘못 아는 것이고 잘못 알기란 모르느니만 못하니, ‘밤양갱’은 비비가 귀엽게 부르다가도 실망을 담아 날카롭게 쏘아붙이듯 “나라는 사람을 몰랐던” 너를 겨냥하는 곡이다. 그런지라, 장기하가 본인의 목소리로 ‘밤양갱’을 부르는 모습은 헤어진 연인의 어긋난 심정을 각자의 입장으로 연기하다가 ‘산산조각’의 ‘비디오 뮤직’에서처럼 둘로 조각나 말싸움하는 것 같이도 들린다.

네가 난지 내가 넌지 여기가 어딘지 아무것도 상관없는 - ‘하기장기하’ (2025)
장기하가 거의 자기 자신을 연기하듯이 출연했던 영화 ‘바이러스’가 ‘밤양갱’처럼 떠돌다가 늦게나마 정식 공개된 2025년, 제3회 최인호 청년문화상이 그에게 시상되었다. 이 경사에 대해 “제게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셨다면, 그건 분명 있다는 뜻이라 믿”는다는 동시에 음악을 하려고 했던 데에는 “그다지 큰 뜻은 없었”다고 밝히는 그의 소감은 그 대신에 “음악이 품은 ‘말’”로 향했다. 뜻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고, 그저 소리로만 남을 수도, 음악으로 꾸밀 수도 있는 말. 그의 말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려는 해석들과 달리, 장기하는 경력 내내 제 말에 뜻을 덜어내기를 추구했다. 그리고 이제는 ‘공중부양’처럼 음향을 최대한 비우든 ‘해 / 할건지 말건지’처럼 의미를 최대한 비우든, 달리 덜어낼 것조차 없게만 느껴진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24년 연말 공연이자 이듬해에 라이브 음반과 실황 영상으로도 공개된 ‘하기장기하’는 음반 소개문에서 쓰듯 “노련한 디제이”처럼 그때까지 장기하의 경력 전체를 조각조각 잘라 “물 흐르듯 연결되”는 한 덩어리의 장관으로 이어 붙였다. 15년가량 동안 각기 다른 정도로 말뜻과 말맛을 조정한 곡들이 이제 장기하의 이름과 새로운 세션의 연주로 통일된 균형을 잡는다. ‘하기장기하’라는 제목은 사실 공연 현장을 117자로 묘사하는 말장난이지만, 말놀이를 좀 더 해보자면 그의 이름을 뒤집은 ‘하기’라는 단어는 ‘하다’라는 동사를 명사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장기하는 ‘하기장기하’에서 ‘장기하하기’를 택한다. 얼마든지 공중 부양을 할 수도 있고, 얼마든지 산산조각날 수도 있고, 그만큼 다시 땅을 디디고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방법으로. 30분짜리의 단편 영화에 맞춰 모든 곡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산산조각’의 구성도 바로 이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아 - ‘산산조각’(2026)
이렇게, ‘산산조각’은 상관없는 것을 덜어내고 공중 부양하다가 산산조각이 난 장기하를 다시 하나의 덩어리로 이어 붙인 음반이다. ‘밤양갱’처럼 연애담으로 읽힐 만한 노랫말은 둘로 조각난 장기하끼리 대립하는 첫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너와 나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가 흘러나올 때부터 대놓고 자기 자신의 분열과 통합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인터뷰에서도 강조하는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 구조’다. 두 명의 장기하가 티격태격하다가 자리를 바꿔 원상 복구하는 영상과 ‘나뭇잎이었네’와 ‘해, 해, 해, 해, 해였네’에서 돌고 도는 계절을 타고 마지막 곡이 첫 곡에 붙는 음반은 일종의 폐쇄 회로를 만든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게 돌고 돈다고 여길 때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니, 이런 루프도 어쩌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든 통제하려는 일환일지도 모른다. 음악이 가장 잘하는 게 그것이기도 한 만큼.
음반을 세 곡씩으로 쪼갤 때 중심에 있고 제일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한순간에 몽땅’~‘내 건데’~‘너나 나나’ 또한, 다시금 연애담에 빗대고 (특히 ‘한순간에 몽땅’에서) 음향을 뒤흔들며 통제 불가능한 것에 관한 불안을 다룬다. 그 결론이자 타이틀 곡인 ‘너나 나나’에서 제안하는 해결책은 ‘공중부양’처럼 모든 의미를 덜어내고 붕 뜨기보다 너든 나든 완전히 똑같거나 다르지 않다는 점을, 그러니 스스로가 산산조각 나도 상관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로 그래야 나와 그리 똑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무언가가 기꺼이 되어 볼 수가 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산산조각’은 장기하의 음악적 여정을 예시 삼아, 우리에게 스스로를 덜어내고 다시 이어 붙이는 방법을 전해주는 음반이다. 그리고 하늘에서의 공중 부양과 땅에서의 산산조각을 거쳐 이를 터득한 2026년의 장기하는, 언제나처럼 제 갈 길을 별일 없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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