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오아시스는 어떻게 모든 세대의 현재가 되었을까
시대를 초월하는 낙관이 오늘의 청춘에게 닿기까지
Credit
글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Oasis X

젊은 세대가 옛날 노래를 듣는다는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2022년 여름, 케이트 부시의 1985년 곡 ‘Running Up That Hill’은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에서 인상적으로 쓰이며, 37년 만에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케이트 부시도 소감에서 쇼를 사랑하는 젊은 팬들이 새로운 반응을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오래된 곡이 숏폼 챌린지나 TV 쇼 삽입을 계기로 차트에 오르는 현상은 스트리밍 시대의 부수적인 효과다. 스트리밍은 모든 시대의 음악을 같은 진열대에 올리고, 바이럴은 그중 하나를 집어 숫자로 돌려준다. 다만 여기서 소비의 단위는 ‘노래’이고, 그 노래는 대개 원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다. ‘기묘한 이야기’의 시청자는 1985년의 케이트 부시가 아니라 맥스의 테마를 들었다.

오아시스는 이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아시스는 2009년에 해체했고, 2024년 8월 재결합을 발표하기까지 15년 동안 새 음악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재결합 발표 직후인 2024년 9월,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가 30주년 재발매로 30년 만에 영국 앨범 차트 정상에 다시 올랐고, 해당 주간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과 베스트 컴필레이션 ‘Time Flies… (1994–2009)’까지 톱 5에 들었다. 한 곡이 아니라 디스코그래피 전체가 움직였다는 뜻이다. 2025년 투어가 시작되자 스포티파이에서 글로벌 스트리밍이 320% 증가했고, 같은 해 오아시스를 새롭게 듣기 시작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Z세대였다. 스트리밍의 접근성과 바이럴의 화제성만으로는 CD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한 밴드의 카탈로그가 15년 동안 살아 있었던 이유를 답할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을 짚을 수 있다.

첫째, 오아시스의 인기는 적어도 영국에서만큼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해체 이후로도 앨범 차트에 수시로 재진입했다. 특히 2017년 1월부터 현재까지는 500주 이상 차트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중 ‘Definitely Maybe’도 끊임없이 차트를 드나들었다. 재결합 10개월 전에는 1990년대 앨범의 영국 스트리밍 순위에서 두 앨범이 1, 2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Be Here Now’도 18위였다. 영국의 1990년대 밴드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해당 리스트의 40개 앨범 중 영국, 아일랜드 아티스트는 11팀, 앨범은 14개다. 오아시스 다음에 영국 아티스트를 찾으면 14위까지 가야 한다. 2024년 8월 ‘레딩 페스티벌’ 마지막 날, 리엄 갤러거가 ‘Definitely Maybe’ 30주년을 맞아 앨범 전체를 그대로 부른 무대의 관객은 대부분 그 앨범이 나올 때 태어나지도 않은 이들이었다. 리엄 갤러거는 며칠 전 중등교육 자격시험(GCSE) 성적표를 받은 10대 관객들을 “착한 애들”이라고 불렀다.

둘째, 부모 세대의 취향이 전해지는 현상이다. 2025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재결합 투어의 젊은 관객을 다룬 기사는 그들 상당수가 부모를 통해 오아시스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취향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 집 안에서 흐르던 음악은 ‘옛날 노래’라는 딱지 없이 그냥 음악으로 들어온다. 그들 중 일부는 1996년 오아시스가 이틀 동안 25만 명을 모은 전설적인 넵워스 파크 공연 이야기를 곁들여 들었을 것이다. 최근 젊은 창작자 다수가 부모님이 듣던 음악을 언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모 세대의 취향은 잠복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전달이 강요가 아니라 노출이라는 점이다. 아이는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 그래서 그 발견은 자기 것이 된다.

발견과 상속의 차이는 재결합 투어 티켓 전쟁 때 선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영국 소셜 미디어에는 15년을 기다린 원조 팬이 ‘Wonderwall’만 듣고 싶은 20대에게 표를 빼앗긴다는 농담이 돌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2025년 재결합 투어의 한국 공연 예매자 중 10~20대가 60% 이상, 30대까지 넓히면 90%를 넘었다. 10대(8%)가 40대(5%)보다 많았다. 다만 한국의 경우, 부모 세대의 추억보다 국내 음악가들의 커버가 젊은 세대의 발견을 돕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젊은 청자에게 오아시스는 집 안의 스피커보다 좋아하는 음악가의 플레이리스트를 거쳐 도착한다.

그렇다면 왜 오아시스인가? 가장 큰 조건은 시대를 초월하는 전달력이다. 우선 입구가 넓다. 2026년 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선수들과 관중은 승리할 때마다 ‘Wonderwall’을 함께 불렀다. ‘NME’가 “1995년 이후 태어난 영국인이면 ‘Wonderwall’과 ‘Don’t Look Back in Anger’ 가사가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고 썼던 대로다. ‘Wonderwall’은 기타 연습 곡으로 너무 많이 연주되어 ‘Anyway, here’s Wonderwall’이라는 놀림 섞인 밈까지 생긴 곡이다. 정말 다른 것은 그다음이다. 오아시스의 영국 최다 스트리밍 곡 순위에서 3위는 싱글로 나온 적 없는 ‘Champagne Supernova’, 5위는 ‘Whatever’의 B-사이드 ‘Half the World Away’였다. 또 다른 B-사이드인 18위 ‘The Masterplan’, 19위 ‘Acquiesce’, 21위 ‘Talk Tonight’ 아래에는 싱글 차트 1위 6곡이 있다. 오아시스의 히트곡이 입구라면, 청자는 깊은 안쪽까지 들어간다. 안쪽의 방들도 입구만큼 잘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서가 더해진다. 맨체스터 노동 계급 출신 형제는 ‘Rock ’n’ Roll Star’에서 아무것도 없을 때 품는 근거 없는 확신을, ‘Live Forever’에서는 가진 것 없이도 삶을 긍정하는 낙관을 노래했다. 이 자신감은 불안이 기본값이 된 지금 세대에게 오히려 낯설고 귀하다. 두 형제는 나이가 들어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이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팝스타와 달리 ‘멋진 삼촌’ 같은 동경과 친근함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모든 말이 조심스러운 소셜 미디어 시대에 그들의 거침없음은 퇴행이 아니라 해방으로 읽힌다. 멋은 낡고 늙는다. 태도는 영원히 젊다.

이 가치가 소리를 넘어 스타일이 된 것은 놀랍지 않다. 2025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투어에 맞춰 협업 컬렉션을 냈고, 트랙슈트와 버킷햇 같은 1990년대 룩이 다시 등장했다. 음악만큼이나 영상 매체의 접근성도 커졌다. 투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오아시스: 돈 룩 백 인 앵거’는 9월 극장 개봉에 이어 10월 9일 디즈니+로 공개됐다. 이제 누구나 손안에서 2025년의 스타디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들 중 많은 이가 2027년 투어를 기다릴 것이다. 모든 세대에게 오아시스는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간 속에 자기 방식으로 들여놓는다. 오아시스는 가장 오래 기억되는 밴드가 아니라, 가장 자연스럽게 현재형으로 남은 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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