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치이카와’의 가혹하고 다정한 세계
노동과 불안 사이에서 서로를 돌보는 작은 존재들
Credit
글이자연(‘씨네21’ 기자)
사진 출처nagano / 2026 Chiikawa the Movie Film Partners

작고 동그란 몸에 커다란 눈. 짧고 서툰 말투. 치이카와와 친구들이 사는 세계는 얼핏 평화로운 동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귀여운 존재들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고단하다. 풀을 뽑아 돈을 벌고,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 시험을 치른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괴물을 토벌해야 한다. 노동은 생존의 조건이고 위험은 일상의 일부다. 귀여운 외모가 노동으로부터의 면제권이 되지 않는 세계. 나가노 작가의 ‘치이카와’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정서는 바로 이 불균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작품의 매력을 단순히 ‘귀여운 외모와 잔혹한 현실의 반전’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발칙한 세계에 우리가 건네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왜 오늘날의 관객들은 이토록 연약하고 고단한 존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가.

귀여운 얼굴을 한 노동자들
‘치이카와’의 세계에는 노동이 존재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거대한 서사는 없다. 캐릭터들은 아침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일하러 나간다. 보수를 받아 먹을 것을 구하고, 더 나은 조건을 얻기 위해 공부한다. 이곳의 경제 활동이란 인간 사회를 축소한 우화처럼 작동할 뿐이다. 풀 뽑기는 반복적인 생계 노동이고 토벌에는 그만한 위험이 따른다. 심지어 자격증은 노동의 기회를 구분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한다. 캐릭터들이 일할 자격을 얻기 위해 계속해 시험을 준비하는 구조는 오늘날의 취업 시장과도 부쩍 닮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치이카와’가 이 세계를 특별히 부당한 것으로 선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동의 규칙은 안정적으로 안착해 있고, 캐릭터들은 그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부지런히 찾아 나간다.

심지어 노력과 보상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일한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특히 시험을 둘러싼 에피소드에서 ‘치이카와’의 눈물은 개인의 부족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드러낸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치이카와’는 경쟁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작품은 제도의 불합리함을 직접 고발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감각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기 전에 이미 두렵고 지쳐 있는 상태. 때로는 수치심마저 느낀다. ‘치이카와’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회 구조를 정교하게 재현해서가 아니라, 그 구조 속에 놓인 존재들의 감정을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붙잡기 때문이다.

귀여움은 왜 불안을 증폭하는가
보통 귀여움은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몸집과 무해한 표정은 위험으로부터 떨어진 안전한 세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치이카와’에서는 바로 그 특징이 불안을 증폭한다. 무서운 존재와 마주했을 때 캐릭터들은 용감한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겁에 질려 떨거나 울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관객이 이들의 처지를 더욱 위태롭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너무나 연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귀여움은 현실을 부드럽게 포장하는 장식이 아니다. 오히려 강인함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취약함을 가시화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치이카와’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영웅이 아닌, 두려운 마음을 안고 다음 날을 맞이하는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존재에 가깝다. 실패하면 울고, 놀라면 도망치고, 작은 성공에 크게 기뻐하는. 이 세계에서 감정을 능숙하게 통제하는 일은 성숙함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동시에 이러한 표현을 무조건 해방적인 것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고통이 귀여운 이미지로 변환되는 순간, 현실의 부조리 역시 소비하기 쉬운 감정이 될 위험이 있다. 노동의 불안정성과 경쟁의 압박은 그대로다. 관객은 캐릭터의 눈물에 공감하고 잠시 위안을 얻은 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치이카와’가 보여주는 취약함은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인 동시에 그 사회를 견디게 하는 감정적 완충 장치일 수 있다. 이 양면성이야말로 작품을 단순한 힐링 콘텐츠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패해도 곁에 남는 친구들
‘치이카와’의 세계에도 버티기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떤 목표를 위해 버틸 수 있을까.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그늘 아래에서도 햇살을 찾아내는 우정을 말한다. ‘치이카와’와 하치와레, 우사기 세 캐릭터는 성격도 능력도 다르다. 치이카와는 쉽게 겁먹고 잘 우는 반면, 하치와레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친구를 격려하는 데 능숙하다. 우사기는 종종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이들은 서로를 닮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 채 그저 일상을 공유할 뿐이다.

특히 ‘치이카와’의 우정은 상대의 실패를 대하는 방식에서 선명해진다. 시험에 떨어진 친구에게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훈계하지 않고 상대방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곁을 지켜준다. 이 세계에서 친구란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이끄는 조력자가 아닌, 경쟁의 결과와 ‘무관하게’ 관계를 지속하는 존재다. 누구나 일정한 성취를 요구받지만, 우정만큼은 그 성취를 자격 조건으로 삼지 않는다.

그럼에도 친구들의 다정함이 노동과 경쟁의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위계 질서, 시험의 당락과 경쟁은 ‘치이카와’를 지탱하는 기본 질서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시험은 계속되고 토벌의 위험도 사라지지 않는다. ‘치이카와’의 위로가 지닌 한계이자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약속 대신 당장 오늘을 살아낼 수 있게 만드는 작고 구체적인 행위들. 함께 음식을 먹거나 친구의 기쁨을 축하하는 일. 두려운 순간에 서로를 찾아가는 마음.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이 세계의 중심을 이룬다.

낙원에서도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치이카와’의 세계관은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에서 한층 선명해진다. 원작의 장편 에피소드 ‘세이렌 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어느 날 치이카와와 친구들은 특별한 섬으로 초대하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간단한 토벌만으로 평소의 100배에 달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사실상 무료라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일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섬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주민들을 위협하는 세이렌이 있다. 기대했던 휴식은 예상치 못한 토벌로 바뀌고 만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을 낯선 섬으로 이끈 동기가 모험심이나 정의감이 아니라 더 나은 보수와 휴식의 약속이라는 사실이다. ‘치이카와’의 세계에서 낙원은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아니다. 조금만 일해도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는 곳이다.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조차 노동의 언어로 표현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약속 뒤에는 또 다른 위험과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마주하는 세계의 잔혹함은 이처럼 현실의 경제적 논리와 맞닿을 때 더욱 날카로워진다.

작품의 흥행은 이러한 세계관이 소수 팬덤의 취향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2026년 7월 개봉해 9월 20일까지 흥행 수입 158억 4,000만 엔, 관객 1,085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도 9월 30일 개봉해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어쩌면 국내에서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라는 이름으로 캐릭터 상품과 팝업스토어를 통해 친숙해진 존재들이기에, 극장에서 훨씬 어둡고 복잡한 이야기를 편하게 펼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정함만으로 불합리한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런 것이 가능한 세계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이 작은 존재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강해서가 아닐 것이다. 강하지 않아도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끝내 보여주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음에도 이 세계는 묵묵히 다정하다. 서로의 연약함을 끝내 외면하지 않기에 이 ‘귀여움’은 현실 한가운데 자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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